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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Sep 11. 2022

특별한 추석 선물, 공모전 당선 글이 실린 책을 아빠께

글쓰기는 미래에 보내는 편지다

추석을 하루 앞두고 우편물이 배달되었다. 소포 봉투에 적힌 발신지는 종로구청. 만져보니 책이었다.

'종로구청에서 인천에 까지 홍보책자를 보내나?'

무심코 봉투를 뜯었다. 행복이라고 적힌 책 2권을 보는 순간 어떤 사라진 기억들이 순식간에 뛰어올라 퍼즐을 맞추면서 의식할 틈도 없이 수많은 감정들이 나를 흔들었다.


제1회 종로 전국 행복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행복



<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 책을 출간하고 아빠에게 참 미안했다. 자식 아픈 이야기만 가득한 책을 차마 아빠에게 드릴 수 없어 책이 출간되었다고 말만 했다. 엄마도 아빠도 보지 않기를 바랐다. 친정에 간 어느 날 아빠의 침대 옆 협탁에 반 펼쳐 엎어져있는 책을 보고 읽으셨구나 짐작만 했다. 그 뒤로도 책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딸이 작가가 되었다고 여기저기 자랑도 하고 싶으셨을 텐데 아픈 가족사 까발린 책을 차마 내밀수 없으셨겠지. 그 뒤로도 상처 이야기, 치유 이야기다 보니 아빠에게 내 글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이 추석선물처럼 내게 왔다.






작년 첫 책을 쓰면서 글을 연습할 곳이 필요했다. 공모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종로 행복 에세이 공모전'을 찾았다. 블로그에 썼던 아빠와의 보성 여행 이야기를 다듬어 제출했다. 결과는 입선. 수상 결과를 듣고 기뻐하고 다시 잊혔었는데 책이 되어 다시 내게 온 것이다. 분주하게 저녁상을 차리던 부엌에서 식탁의자를 빼 앉아 읽으며 올해는 보성에 함께 못 간 것이 내내 아쉬울 정도로 그때의 추억이 너무 소중했다.


마지막 글.

가족.
어릴 때는 이해하기 힘들었고, 자라면서는 원망스러웠고, 결혼하고 나서는 나 살기 바빴다. 이제 아프다는 말씀에 시간을 함께하니 여전히 사랑만 받고 있는 나였다. 내리사랑을 이제 이해하는 걸 보면 참 철 늦게 든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이해합니다.
괜찮습니다.


'아빠에게 이 말을 선물로 드려야겠다.'

용돈이 든 봉투를 책에 끼워 아빠에게 특별한 추석 선물을 드렸다.


글은 미래에 보내는 편지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진짜 그랬다. 과거의 글이 나와 아빠에게 편지가 되어 돌아왔다.

'이 글이 언젠가 아빠를 다시는 볼 수 없어 그리워하고 있을 미래의 나에게 또 다른 편지가 되어 전해지겠지.'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또 나를 붙잡아 이 순간으로 데리고 갈까.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듯 전문을 다시 띄워 보낸다.






코로나로 시작된 '삼대 행복 가족 여행'



여름휴가는 물 건너갔구나.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세 아이와 지쳐가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딸, 초등학교 4학년 아들, 6살 유치원생의 ‘건강 상태 자가 진단’으로 열 체크를 하며 아침이 시작된다. 아침밥을 먹이면서 출근 준비를 하다가 점심밥을 식탁 위에 차려놓고 막내를 둘러업고 집을 뛰쳐나온다. 유치원에 내려놓고 출근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겨우 한숨 돌린다.      


전화가 울리면 긴장한다. “엄마 인터넷이 안 돼서 온라인 못 듣고 있어요.” “어머니, OO이가 수업에 안 들어왔어요.” 세 아이의 학교 알림과 학원 알림이 쉼 없이 울린다. ‘이번 주는 온라인 수업입니다.’‘목, 금은 등교 수업입니다.’‘학교 확진자 발생으로 오늘은 휴업합니다.’ 수시로 변하는 상황을 체크하다 결국 포기한다. 막내가 열이라도 나면 큰일이다. 직장에 사정하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며칠간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 발을 동동 구른다. 모두가 같은 상황이니 힘들다고 말할 수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1년 하고도 반을 버티며 2021년 휴가철이 다가왔다.     


숙박, 식당 모두 4명 제한이었다. 우리 가족은 5명인데 말이다. 직계가족이라고 하지만 5명의 이동은 쉽지 않았다. 휴가를 포기해야 하나. 아이들을 집에 가둬둘 수는 없었다. ‘아! 보성 시골. 시골집은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올라오시면서 아빠가 이따금 오고 가셨다. 인적도 드물고, 바닷가 바로 앞에 자리해서 문을 나서면 갯벌이었다. 사람이 붐빌 걱정도, 다섯 식구 오가며 눈치 볼 일도 없이 신나게 놀 수 있는 곳이었다. 마당에 텐트를 쳐주고, 수영장을 펴주면 되었다.    

  

보성 시골


명절이면 차 뒷자리에 4남매가 꽉 끼어 앉아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달려 시골에 가곤 했다. 어릴 때는 그렇게도 가기 싫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때의 추억이 나를 단단하게 했다. 시골 논두렁, 산을 넘어 놀러 갔던 학교, 집 앞 갯벌, 반딧불이 잡고 놀던 일, 추수가 끝나 쌓인 볏짚 위에서 미끄럼 타던 일, 쥐불놀이 타는 냄새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게잡이 좋아하는 녀석들이 종일 신나겠구나.’     


아빠에게 연락했다.

“아빠, 저희 여름휴가로 보성 시골집 가려고요.”

“언제 가니? 아빠도 가야 너희 맛있는 것도 해주고, 재밌는데도 데려가지.”


시골에 간다는 말에 아빠가 더 들뜨셨다. 아빠는 작년에 “골수형성 이상 증후군”이라는 일종의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혈소판이 스스로 생성되지 않는 병이라 수술을 할 수 없었다. 일상을 살아야 하지만 지혈이 안 되고, 면역력이 없어서 작은 사고가 병에도 돌아가실 수 있는 병이었다. 코로나로 보호자의 병원 출입이 어려워 혼자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입원 퇴원을 혼자 감당하셨다.


입원이 길어지면 병원 앞마당으로 소풍을 갔다. 김밥, 과일, 아빠가 좋아하는 수육을 사서 병원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손주들은 잔디를 뛰어다니며 놀았고, 지켜보는 할아버지는 흐뭇했다. 할아버지는 병원 매점에서 9명 자식, 손주들 아이스크림을 링거 걸이 선반에 가득 담아 나오셨다. 퇴원하고 심심하셨을 텐데 손주들까지 시골에 간다니 맛있는 것도 먹여주고 놀아주고 싶으셨나 보다.


    

길이 잘 나서 4시간 30분 만에 남해 끝 보성 시골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이틀 전에 오셔서 집을 청소해 두셨다.


“할아버지~!!”

“어서 온나.”



“아빠! 게 잡으러 가요.”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출동한 남편과 두 아들은 한참 후에 게, 소라, 망둥어 새끼들을 잡아 왔다. 아들들은 쉬지 않고 떠들었다.

“엄마, 게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 큰 바위를 들면 거기서 막 기어 나와요. 다리를 잡으면 안 되고 몸통을 잡아야 해요. 알았지요?” 마스크 벗고 신나게 뛰어다니니 얼마나 신이 났을까.     




저녁이 되어 마당에 숯불을 피웠다. 아빠가 새벽에 막 잡아 올린 해산물을 사다 놓으셨단다. 장어, 문어, 전어였다. 현지에서 먹는 해산물은 신선하고 고소했다.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아이들 배가 불룩 나왔다.


 



“바다에 불꽃놀이 하러 갈까?”

하늘에 피어오르는 불꽃에 아이들이 팔짝팔짝 뛰었다. 할아버지와 손주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애들아! 할아버지랑 사진 찍자.”

손을 잡고 재미있는 포즈로 사진을 찍으니 할아버지도 웃고, 손주들도 웃고.      




거실에 텐트를 치고 잠이 들었다. 최고의 첫날을 보낸 아이들은 깊이 잠들었다. 아침 해가 뜨겁다. 부엌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요란하다. 매콤한 된장 냄새도 난다. 아빠가 분주하다.


“뭐 하세요?”

“최고의 보양탕 끓이고 있지.”


커다란 냄비에 고추장, 된장 풀어 진한 국물 한가운데 커다란 문어 대가리가 둥둥 떠 있었다. 그 주위를 바닷장어 두 마리가 감싸고 있었다. 소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양파도 하나 넣었다.


“간 좀 봐라.”

“뭔가 부족한데요.”


잠깐 냉장고에 간 사이 아빠는 하얀 가루가 든 봉지를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MSG. 미원이었다. 전라도 음식 감칠맛의 비밀인가. 맛은 훌륭했다. 문어는 간이 배어 쫄깃하고, 장어는 구수하고, 소고기는 담백했다. 손주 사랑 가득 담아 쌀밥 한 공기 가득 퍼주었다. 보양탕도 가득. 2그릇을 비운 것을 보고서야 만족한 듯 남은 음식을 드셨다.



“엄마! 할아버지 시골 진짜 좋다.”     



가족.

어릴 때는 이해하기 힘들었고, 자라면서는 원망스러웠고, 결혼하고 나서는 나 살기 바빴다. 이제 아프다는 말씀에 시간을 함께하니 여전히 사랑만 받고 있는 나였다. 내리사랑을 이제 이해하는 걸 보면 참 철 늦게 든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이해합니다.

괜찮습니다.


코로나로 시작된 가족 여행이었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충전했으니 다시 잘 살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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