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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Mar 24. 2024

나를 위한 기록_슬픈 척하지 않기로 했다

아빠를 떠나보내는 방법

https://blog.naver.com/youme7802/223363003173

기록을 하지 않으니 시간이 사라졌다.

사라진 2개월을 더듬어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아빠를 떠나보냈고,

아빠를 잘 보내는 방법으로 나만을 위한 기록을 남긴다.


(이 글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 기록입니다.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록이에요.

그래서 블로그가 아닌 브런치로 옮겨왔어요.

아빠에 대한 기억을 생각이 흐르는 대로 적을 거고,

저는 크리스천이라 신앙적인 이야기도 많을 거 같아요.

혹시 불편하실 분은 이 시리즈는 넘어가주세요. )






아빠의 죽음


달리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이별

떠나다

.

.

현실이 되고 보니 이런 감상적인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죽음.

처음 경험해 보는 새로운 사건.


이름을 알 수 없는 이 느낌과 감정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나 슬퍼해야 하는지

얼마나 울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다.

계속 울거라 생각했는데

잘도 웃고, 밥도 먹고, 잠도 잔다.


'아빠가 돌아가신 거 맞아?

슬픈 척을 해야 하나?'


그런데 아니었다.


불현듯 울음이 터지면

놀이공원에 엄마 잃은 아이처럼 주저앉아 울고 만다.

그런 거였다.


일부러 슬픈 척하지는 않기로 했다.

애쓰지 않아도 웃다가도 금방 눈물이 나고 마니까.


그저 이 감정의 이름을 찾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아빠를 잊지 않기 위해

또 아빠를 잘 보내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연명 치료를 중단합니다


2월 28일.

담당교수님과의 가족 면담.

그동안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면담이 있었지만

이번 면담은 미룰 만큼 미룬 이야기를 꺼내려나 보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직접 들어야 준비를 할 수 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교수님 주위로 둘러앉은 가족들 사이로 조용히 걸어가고,

간호사가 빠르게 의자를 끌어다 주었다.


지나친 배려를 보니

간호사는 어떤 말을 하려는지 아는 것 같다.

마른 체구에 흰 가운을 입고 앉아있는 교수님의 손이

눈동자와 같은 속도로 가늘게 흔들린다.

나는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걸까.


1시간 동안 교수님은 아빠의 상태를 이야기했다.

그 간의 노력도 후회도 섞여있었다.

의사로서의 의학적인 이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안타까움을 담은 말소리에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마음이.

그 일로 힘들 가족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다.



"여기서 더 연명치료를 하면 아버지 몸은 더 힘드실 거예요.

지금도 면역력이 없으니 패혈증이 오고 가고.

약으로 버티고 있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랬다.

아빠의 몸에 붙은 욕창 보호 밴드가

빠르게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고.

입 안에 출혈도 멈추지 않아 딱지를 만들며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연명치료를 멈추면 1~2주 안에 돌아가실 거 같아요.

제가 치료한 환자이니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보내드리고 싶어요."


정확히 이 말이었는지는 모르지만

1~2주 남았다는 것.

이 병원에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3월 1일

서울대학병원 10층 10동.

무균 병동.

면회를 할 수 없어 불안하다.


예약해 뒀던 미용실을 갈까 말까?

일단 가보자.

뒤로 갈수록 더 못 갈지도 모르니.


불안함은 무언가를 하게 한다.

주로 내가 한다기보다는 누군가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긴 머리를 짧게 잘라달라고.

펌도 염색도 다 해달라고.


쓱~~~

머리카락이 잘려나가고

펌을 위해 약을 바르고

롤을 뒤로

하나


전화가 온다.

막냇동생이다.


날이 유난히 좋았다.

3월 첫날인데 벌써 봄이 온 것처럼 미용실로 창밖이 기분 좋게 맑았다.


"아빠의 혈압이 떨어지고 있어.

병원으로 서둘러 와야 할 거 같아.

이러다 다시 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잠시의 정적.

"머리 하려면 얼마나 남았지요?"

"한 시간 반이요."

"풀어주시겠어요? 아빠가 위독하시다고..."

당황한 미용실 언니가

급하게 말던 롤을 풀었다.


"다행히 아빠가 괜찮아지시면

내일 오겠지만

못 오게 되면 어쩌지요?"


자르다 만 머리카락.

말다 멈춘 뒤통수.

사방이 어수선한 모습이 딱 내 마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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