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닝겐=사실상 최악의 리스크

by 전병조

투자의 본질, 권리의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을 알게 된 우리의 의도는 장기투자입니다. 그런 목적에 부합하는 준비물로서 훌륭한 기업과 경영진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문제는 투자자 자신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다름 아닌 바로 제가 사실상 최악의 리스크입니다. 인간은 투자에 적합한 동물이 아닙니다. 인간이 가진 그 어떤 기관도 그처럼 극도로 복잡한 행동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두뇌가 있지 않냐고요? 혹시 뇌에 대해서 잘 아세요? 어떤 도구를 쓰기 전에 그것의 한계를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도파민에 절어버린 현대인의 두뇌라면 특히나 더 그렇습니다.


흔히 우리가 뇌의 주요 기능이라고 믿는 학습은 도파민에 주로 제어됩니다. 이 호르몬은 성공적인 행동을 기억하게 하고, 동시에 학습 의욕에도 관여합니다. 그래서 미지의 자극을 기대할 때에도 분비되는데요. 몇 만 년 전과 달리 현대에는 손에 넣기 어려운 미지의 자극이 거의 없습니다. 쉽게 많이 가질 수 있게 된 탄수화물, 술, 담배, 상업적 성인물처럼 정보도 그렇습니다. 더 짧은 음악, 더 짧은 글, 더 짧은 영상. 우리 중 다수가 도파민에 중독된 이유입니다.


저도 주식을 처음 접할 때 주가 차트를 시도 때도 없이 열어봤습니다. 가격은 초 단위로 움직입니다. 도파민이 가장 좋아할 먹잇감이죠. 얼마나 오를지(보상) 혹은 떨어질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쉼 없이 뇌에 쾌락을 주입합니다. 이런 중독은 금단 증상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디톡스가 안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마치 저탄수화물 식단처럼요. 그런데 전 또 다른 무서운 경험도 했습니다. 투자 경험이 조금 쌓이자 주가를 확인하고픈 충동이 더는 생기지 않더군요. 다시 차트를 열어보는 빈도를 늘렸습니다. 저에게 통제력이 생긴 줄 알았거든요. 놀랍게도, 저는 생초보 시절처럼 다시 도파민에 중독됐습니다.


문제는 가격 변동을 보노라면, 하지 않아도 될 생각과 행동이 튀어오른다는 겁니다. 우리는 움직이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붙잡으려는 충동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사냥꾼의 후손이잖아요. 부모님 댁 텔레비전 앞에서 채널을 휘적거리다가 우연히 낚시 방송에서 멈춘 적이 있었는데요. 플라스틱 미끼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물 속에 넣고 당기면 마디로 연결된 몸체가 유선형으로 움직이는 미끼요. 냄새도 나지 않고 먹을 수도 없는데 움직인다는 이유만으로 물고기는 그걸 뭅니다. 영문도 모르고 덥석 문 뒤에는 아차 싶기야 하겠죠. 돌이킬 수 없습니다. 영락없이 저와 똑같아 보였습니다. 아, 이놈의 뇌, 이놈의 진화. 이런 ‘덩어리’를 데리고도 장기투자라는 의도를 달성하는 게 쉽기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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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라는 건 위로이면서 동시에 경고입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물러날 것을 이를 악물고 명령합니다. “넌 위험하잖아!” 라고요. 비유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멀어져야 합니다. 제 투자에 대한 자신의 위험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더 수월한 리스크 관리는 차라리 제가 가까이 다가서는 걸 막는 데에 있습니다. 당장 얻을 수 있는 것들에게서 심리적 거리를 확보하세요. 이런 권유의 과학적 근거들을 세 가지만 공유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베버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자극의 변화를 언제나 동일하게 느끼지 못합니다. 알아차리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변화는 이전에 주어졌던 자극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이는 시간 감각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두 명의 투자자가 있습니다. 조급해 씨와 김딴짓 씨는 포트폴리오가 똑같습니다. 급해 씨는 주식 차트를 매일 매순간 들여다봅니다. 반면 딴짓 씨는 맨날 업무와 취미 그리고 모임과 여행으로 바쁩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똑같은 세월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급해 씨는 하루가 10년이고요, 딴짓 씨에게는 몇 달도 쏜살처럼 흘러갑니다. 즉, 가까운 관심을 갖고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하세월입니다. 찰리 멍거가 투자자의 기다림을 “페인트가 마르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같은 고통”으로 묘사한 것처럼요.


둘째는 마시멜로 테스트입니다. 실험 자체는 워낙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는데요. 내용을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교훈이 있습니다. 자기통제력을 발휘한 아이들은 다양한 기술을 선보였는데요. 눈을 감거나 외면하기, 심지어 노래를 부르고 상상하고 놀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악한(?) 연구진은 심지어 아이들에게 마시멜로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들려줬습니다. 놀랍게도 자극의 특성에 따라 절제력도 달랐습니다. 달콤하고 쫀득하다는 감각적인 특성에 노출된 그룹은 충동에 취약했는데요. 반면 하얗다, 작다와 같은 중립적인 정보는 아이들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연구팀은 심리적 거리감이 충동과 절제 사이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믿게 됐습니다.


셋째는 뇌가 ‘미래의 자아’를 느끼는 방식입니다. UCLA의 할 허시필드 교수는 우리 뇌의 작동에 대해 주목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뇌가 몇 년 뒤의 자신을 생각할 때 마치 남인 것처럼 반응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fMRI 장비로 내측 전두엽피질을 스캔했는데요. 자신과 가족, 친구, 가까운 이웃을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입니다. 일정 수준 먼 미래를 생각할 때, 뇌는 그 자신에 관해서조차 불을 꺼버렸습니다. 여기에서도 심리적, 정서적 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깝다는 느낌을 미래로 옮겨주자 반응도 달라졌습니다. 허시필드는 10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쓰거나 AI로 합성된 ‘늙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이런 피험자들은 대조군에 비해 저축 비율을 더 할애하고 식단도 건강하게 구성했습니다. 현재 양보해야 할 비용을 더 기꺼이 감수하려고 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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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가 바로 정확히 그런 일입니다. 당장 차지할 수도 있는 기회와 자원을 양보하고 미래의 자신과 나누는 전략입니다. 그걸 비교적 잘 해내려면 투자자의 관심이 현재와 보상에 쏠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간이 뻑뻑하지 않습니다. 달콤하고 쫀득한 충동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미래의 나를 후회로부터 지켜줄 수 있습니다.


후회, 저도 그 녀석을 안다면 좀 아는데요. 꿈꾸던 대학입시에 한 차례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슬픔이나 실망보다 지배적이었던 감정이 후회였습니다. 내가 조금 덜 놀고 더 실력을 쌓았더라면. 시간을 돌릴 수 없다는 물리 법칙을 잘 아는 만큼 고통은 더 깊었습니다. 그 늪에서 헤어 나왔을 때, 다시는 후회할 순간을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한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유명인을 나중에 또 알게 됐습니다. 이동국 선수는 프로축구 공격수입니다. 월드컵 출전과는 유난히 인연이 없기도 했지요. 대신 그는 프로팀 팬들의 사랑 속에 축구선수로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는 자주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는 미래에서 지금을 생각해 본다”고 인터뷰 했습니다.


우리 시선은 늘 현재, 발밑을 향해 있습니다. 그러면 투자는 매번 참고, 견디고, 비용을 치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됩니다. 그 열매는 남이나 다름없는 미래의 내가 홀랑 가져가고요. 하지만 현재로부터 거리를 벌리고 초점을 미래로 가져가면 다릅니다. 복리로 성장하는 보상은 이미 약속되어 있습니다. 물론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요. 미래의 우리들로서 투자는,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결정을 과거 매순간의 자신에게 위임하는 겁니다. 그토록 바꾸고 싶었던 과거로 놀랍게도 돌아온 셈입니다. 그래서 투자는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배당과 잔여재산의 시나리오도 현재 가치로 할인해 오는 거고요.


‘수학’을 아는 ‘인간’. 장기투자라는 의도를 실행하려면 반드시 둘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김딴짓 씨가 될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소개해 드릴 내용이 하나 더 있습니다. 훌륭한 기업과 경영자의 동료가 되는 이 게임의 세계관, 바로 유한 게임과 무한 게임입니다. 혹시 그거 아세요? 우리는 사실 플레이어이면서 동시에 관객입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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