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 청소부 Oct 03. 2021

행복한 청소부

   영국 어학연수를 계획하면서 유학원에다 두 가지를 부탁했다. 한국 학생들이 없는 곳이면서 식사가 제공되는 곳이어야 한다고. 그러나 도착해보니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한국인 학생이 꽤 많았다. 식사는 제공되지 않았고 기숙사에 있는 공동주방에서 각자 요리해서 먹어야 했다. 이메일과 전화로 항의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생각지도 않은 식비가 들면서 할 수 없이 파트타임 잡을 알아보았다. 영어도 잘 못하는 데다 한국 나이로 서른다섯인 나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두 달쯤 지나서야 자신의 일자리를 나에게 넘겨주겠다는 한국 학생이 나타났다. 그녀는 시내에 있는 보험회사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었다. 주중 저녁 두 시간씩 일하면 한국 돈으로 삼십만 원 정도 받았다. 이 정도면 부족한 식비는 해결될 것 같았다. 처음엔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아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주저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내 외곽에 위치한 기숙사에서 보험회사가 있는 시내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기숙사와 학교만 오갔던 나는 버스를 이용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 일찍 기숙사를 나섰음에도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시간표를 확인해보니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한 시간 후에나 도착할 예정이었다. 수중에 가진 돈으로 택시 타기엔 부족했고 나는 첫날부터 지각을 면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막 나오려 했다. 결국 삼십 분을 지각했다. 매니저가 인상을 쓰자 변명도 못하고 내가 맡은 8층으로 급히 뛰어 올라갔다. 해야 할 일은 직원들의 자리마다 돌며 쓰레기통을 비우고, 청소기로 바닥을 밀고, 먼지를 닦아내고, 끝으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쓰레기통을 비우려 보니 자리마다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 묶음이 있었다. 그것들까지 다 치워내느라 두 시간은커녕 세 시간 걸려서야 겨우 청소를 끝냈다. 첫 출근 스트레스에다 예상보다 많은 업무량으로 완전 녹초가 돼버렸다. 앞날이 막막했다. 다음날이 되어 매니저에게 두 시간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항의를 했더니 그는 "왜 시키지 않은 일까지 했어요?"라고 말하며 쓰레기통 외의 비닐봉지는 다른 이가 처리할 일이었다고 했다. 내가 헛일을 한 것이었다.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기숙사 앞 버스 정류장에 서는 거의 모든 버스가 시내를 경유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알려준 한 번호의 버스만을 기다리고 있던 거였다.


  두 시간 동안 매뉴얼대로 일하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동료가 팁도 알려줬다. 쓰레기통을 비우다 보면 가끔 타블로이드 잡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잘 챙겼다가 청소 비품실에서 읽으며 쉬는 시간을 가지라는 거였다. 온 사방에 카메라가 설치되어있는데 괜히 문제를 일으킬 것 같아 영어 공부도 할 겸 잡지를 챙겨 퇴근 후에 읽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매니저가 호출했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그러는지 의아했다. 그는 나에게 시간과 담당 구역을 바꿔준다고 했다. 기존 저녁 시간을 오후로 구역도 1층으로 변경되는 것이었다. 사실 저녁 시간에 일하는 게 꽤 불편했다. 밤늦은 시간에 일이 끝나 기숙사로 돌아가면 씻고 바로 잠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후 시간이라면 학교 수업 끝나고 나서 도서관에서 책을 좀 보다가 일하고 기숙사로 돌아가면 딱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흔쾌히 수락했다. 새로 바뀐 층은 일거리가 좀 더 많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파트타임 동료 중에는 한국에서 온 삼십대 초반의 연수생이 있었는데 그녀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보통 어학연수를 신청하면 최대 1년 학생 비자를 받는 데 운 좋게 2년을 받았다고 했다. 1년만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이곳 환경이 너무 좋아서 2년을 다 채우고 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녀는 연수비를 아껴야 했기에 아주 저렴한 숙소에 살았고 이곳에서 번 돈으로 식비를 해결해야 했다. 가난한 생활이지만 비자 문제만 없다면 영영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긴 나도 처음에는 이 일을 한심하게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기에 익숙해졌고 학교와 집만 오고 가는 일상에서 적당한 자극으로 느껴 좋았다. 게다가 내가 사는 리즈(Leeds)시는 영국에서도 도시 내 공원이 가장 많은 곳이라 정말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학생증이 있으니 박물관과 미술관 입장료는 무료였고 동네마다 도서관은 꼭 있었다. 마트에 가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하고 맛있는 다양한 식자재가 넘쳐났다. 몇 백 년 된 건물이 기본이고 옛날식 도로를 그대로 사용하기에 오랜 역사가 깃든 포석 위를 걷는 정취도 좋았다. 나도 비자 문제만 해결되면 그녀처럼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다는 제주도에서 온 내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삶이 무조건 다 좋은 건 아니었다. 인종차별과 빈부격차 등의 사회문제가 심각했다. 우연히 영국 남자를 만나 결혼한 한국 여성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가 하는 말이 인상 깊었다. 처음엔 국제결혼을 하고 무척 기뻤으나 시댁에 가면 심한 문화 차이와 은근히 무시하는 그들의 태도로 여간 상처받은 게 아니라고 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같은 나라 사람끼리 만나 사는 게 맘도 편하고 더 나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돈만 있으면 정말 남부럽지 않게 다 누리고 살지 않냐고 묻는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환경이 멋지다 해도 가난에 시달리며 비자 문제와 인종차별, 하류층 인생을 살면서 이 나라에서 평생을 보낼 순 없는 거였다. 학생 신분으로 일하니 청소부 일도 견디는 것이지 임시직을 전전하며 사는 인생이 평생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 멀리 앞을 내다보니 처음으로 내 고향이 그리워졌다.


  삼십 대 중반이 되도록 모아둔 돈이 없었다. 가진 돈을 모두 투자하여 무보수로 3년간 일한 곳이 망해버렸다. 거기다 부모님 모두 갑작스런 병환을 겪으면서 내가 전적으로 맡아 간병을 해야 했다. 체력은 바닥이 나고 마음의 상처가 터져 문드러지고 있을 때 아버지가 퇴직금을 털어 비용을 대줄 테니 어디든 가고픈 곳에 가서 쉬고 오라고 했다. 아픈 부모를 두고 떠난다는 것이 맘에 걸렸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떠나 온 곳이 영국이었다. 거기만 가면 어두웠던 과거도 다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어도 금방 배우고 남자 친구도 사귀고 직장도 구하고 말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이었다. 파트타임 잡이라도 구하지 못했다면 남의 나라에서 돈만 쓰고 오는 꼴이었다. 4개월간 번 돈이라 봐야 얼마 되지 않지만 일을 한다는 건 생산적인 에너지를 안겼고 그 돈으로 짧게나마 파리 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다.


  귀국을 앞두고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매니저가 상당히 아쉬워했다. 책임감 있게 일을 잘했다면서.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일을 좋아했다. 깨끗하게 닦인 세면대가 반짝이면 내 마음도 반짝였다. 청소하면서 내 마음도 함께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엔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전율이 느껴져 걸음을 멈췄다. 가슴이 벅차오르며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오래되어 이끼가 낀 낮은 돌담과 그 위에 솟아오른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 반들반들한 검은 돌이 촘촘히 박힌 보도. 어제도 그제도 걸었던 평소와 다름없는 길가였다. 이런 익숙한 길가에서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신비한 힘에 둘러싸여 나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고 있었다. 이 느낌이 너무 소중해서 이 장소를 절대 잊지 않도록 노트를 꺼내 들고 적어두었다.


  영국을 떠난 후 수없이 그날의 전율을 떠올렸다. 그날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이 글을 쓰며 서서히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어느덧 내 마음의 상처에 새살이 돋았음을. 좌절된 꿈, 헤매는 인내심, 어지러운 기억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음을. 

  비록 그곳에 머무는 동안 돈만 쓰고 영어도 그다지 늘지 않았지만, 다시 인생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탈로니아 찬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