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인과의 대화가 불현듯 생각난다. 내가 쓴 에세이에 대한 피드백을 부탁하면서 "형, 형이 봤을 때 이거 객관적으로 어떤 것 같아?"라는 말을 무심코 내뱉었다. 이에 "개인에게 물어봐 놓고 어떻게 객관적인 피드백을 바라냐?"라는 핀잔 섞인 답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사소한 대화 하나가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것은 쓴소리를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개인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명제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그 후에도 몇 차례 곰곰이 생각해 봤기 때문이다.
'개인은 완벽히 객관적일 수 없다'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상황과 환경이 때때로 개인에게 객관적인 시선을 갖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는 마케터에게도 찾아온다. 대표적인 경우가 광고 성과를 분석할 때이다.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결괏값을 매우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나는 '과학자가 핵을 다루듯 섬세하게'라고까지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숫자 하나에 완전히 다른 결과나 나올 수 있고, 자릿수 하나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실수로 인한 오류는 발견하기만 하면 고치면 된다. 그러나 진짜 시련은 칼끝이 나를 향했을 때 다가온다.
'불법이 아닌 편법.' 살다 보면 종종 들을 수 있는 이 말이 양심적 차원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상황과 비슷할까? 프로세스 상에 문제는 없으나 마음 한편에 남는 왠지 모를 찝찝함. 오류를 바로잡았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내 개인적 바람이 1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상황. 개인은 완벽히 객관적일 수 없다는 핑계로 덮어두다가도 생각날 때마다 양심의 거울을 꺼내어 되돌아보게 되는 그런 상황.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아도 자취를 감추지 않는 불쾌한 기분의 연속.
양심의 거울을 꺼내어 되돌아보게 되는 그런 상황 :: Photo by Fares Hamouche on Unsplash
내가 예민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는 예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무딘 것보다는 낫다. 광고 성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오류를 발견한다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하며 빠르게 수정한다. 하지만 반대로 나의 성과에 불리한 오류를 발견한다면 '이게 정말인가?' 하며 숫자 하나 고치는데도 심사숙고하게 된다. 이것은 객관적인 자세가 아니다.
인정을 받으려는 것과 불이익을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마케터라면 그 본능의 결과가 팀을 불행하게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양심적인 마케터인가? 누구도 본인을 대신해서 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없다. 혹여나 양심에 거슬리는 행동을 했더라도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다. 그래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가지고 다시 한번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