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손편지를 읽는 사람들
카카오톡, 문자, 이메일, 온라인 롤링페이퍼 등 2021년을 사는 우리에겐 지나치다 싶을 만큼 다양한 소통 수단이 있다. 그래도 우리는, 손편지를 쓴다. 소중한 가족의 생일날, 사랑하는 이를 멀리 떠나보냈을 때, 연인과 기념일을 축하할 때.
우리는 언제 손편지를 쓸까. 필자는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 손편지를 쓴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장문의 카톡이나,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우는 긴 메일로도 마음을 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모니터 화면에 활자를 균일하게 입력해주는 타자와 달리, 다섯 손가락에 힘을 실어 한 자 한 자 눌러담은 글자엔 내용 이상의 마음이 담긴다. 이를 테면 편지지에 덧대진 수정테이프에서는 마음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를 찾아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 흔적이 보이고, 나풀나풀 흩날리는 필체에서는 바쁜 와중에도 꼭 손으로 마음을 전하려 했던 순수한 마음이 보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손편지에 어떤 내용을 적는가. 쑥스럽지만 필자는 편지에 주로 소박한 이야기를 담는다.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인지,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당신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등등.
문득, PM업무를 하며 매일 접하는 크라우드펀딩 스토리도 손편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커머스 상세페이지처럼 화려한 이미지는 없어도, 텍스트를 한 자 한 자 톡톡 쳐가며 완성했을 프로젝트 스토리를 읽다보면 손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편지를 통해 수신인에게 '난 요즘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해' 하고 전하듯이, 메이커분들도 프로젝트 스토리를 통해 당신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전한다. 스스로를 '신발 처돌이, 창업 처돌이, 디자인 처돌이'라고 소개한 트레드 앤 그루브는 스토리를 통해 폐타이어에 대한 그들의 지대한 관심을 진솔하게 전한다.
매년 순식간에 쌓여가는 폐타이어들이 고민이었어요.
끝나지 않는 폐타이어의 행렬을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어서
우리는 지금, 타이어 수제화를 만듭니다.
수많은 타이어가 쓰이고 있으니, 수많은 타이어가 버려지고 있는 건 공기처럼 존재하는 팩트다. 그럼에도 아무도 근황을 궁금해하지 않았던 폐타이어에, 트레드 앤 그루브는 진심이었다. 그들의 스토리를 읽으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 사람들, 폐타이어에 진심이구나.'
손편지에는 보내는 이가 어떻게든 열심히,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담긴다. 3년차 커플이라는 Joe와 Leah는 와디즈에서 음식물 쓰레기통이라고 믿기 어려운 귀엽고 세련된 제품을 선보인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야기한다.
우리 진짜 열심히 만들었어요
Joe says : 국내외 쓰레기통들을 모두 직접 사용해봤어요
소형 가구를 위한 정말 멋진 음쓰통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에, 이 중 무엇 하나 후순위로 두지 않고 제품을 구상했고, 국내외 다양한 쓰레기통들을 모두 직접 써보고, 사용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파악하는 것 부터 시작했습니다.
Leah says : 종량제 봉투에 딱 맞는 음식물쓰레기통을 만들었어요.
음식물 쓰레기통들은 하나같이 물을 기르는 양동이 구조인 점도 참 아쉬웠어요. 큰 머그컵 모양의 쓰레기통을 들고 분리수거장에 간다면 맨손으로 쓰레기 봉투를 만지지 않아도 되고, 남은 한 손으로 엘리베이터 버튼도 누르고, 카드키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죠.
상대는 내가 잘 사는지, 엉망으로 사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손편지에 자신의 근황을 적어내려간다. 그건 아마, 그대는 내가 손편지를 쓰고 싶어질 만큼 소중한 사람이니, 당신에게도 내가 소중한 사람일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만큼은 나의 근황을 궁금해 하기를 바라는 소망 말이다. 그러니 Joe 와 Leah도 서포터들에게 이 음식물 쓰레기통을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던 거다. 그 이야기를 서포터들이 진지하게 들어주리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필자는 편지를 마무리지을 때, 상대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지금 내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멋있다고 말해주는 니가 있어 큰 힘이 된다. 정말 고마워.
손편지와 마찬가지로, 메이커님들은 프로젝트 스토리에서 서포터분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악건성 + 민감한 피부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화장품을 공부하다 회사까지 차렸다는 함발라바 메이커님. 그는 hope26 크림으로 두 번째 펀딩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스토리에 서포터에 대한 고마움을 듬뿍 담았다.
서포터분들의 반응은 저희의 걱정과 염려와는 달리
hope26의 질감을 너무너무 좋아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hope26의 질감을 마치 기다리셨다는 듯이
만족도 5점 만점을 주신 29명의 평가는
hope26의 질감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아마도 메이커님은 자신이 만든 크림이 서걱거리고 '크림답지가' 않아, 시장에서 외면받지 않을까 걱정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서포터분들이 오히려 크림의 독특한 질감을 마음에 들어해 자신감을 얻었다는 거였다. 메이커님은 급기야 리워드의 질감을 키포인트로 내세우고, '셔벗 크림'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이 프로젝트를 읽으며 처음으로 '당신이 있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말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애틋한 감사의 표현임을 알았다.
손편지와 이메일은 글씨체 자체에서 이미 상당한 차이가 난다. 메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필자가 선택한 글씨체 그대로 텍스트가 이어지지만, 손편지는 같은 손가락으로 같은 단어를 써도 편지 첫 문장의 '안녕'과 마지막 문장의 '안녕'이 다르게 생기지 않았나. 그러니, 같은 디지털 활자로 쓰이는 커머스의 상세페이지와 크라우드펀딩 스토리가 이렇게 다른 건 꽤 놀라운 일이다.
덕분에 매일 다양한 프로젝트를 읽고 또 읽는 우리 PM들은 순간순간 손편지를 보며 일을 하는 기분이다. 어쩌면 우체부와 같은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 메이커가 서포터에게 담아 보내는 편지를 빠뜨리지 않고 조심조심 전해주는 사람이니. 하루하루 와디즈를 손편지처럼 진솔한 이야기로 채워주는 메이커님에게, 그리고 매일 편지를 읽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메이커님에게, 브런치 지면을 빌려 감사인사를 전한다. 비록 디지털 활자이긴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우리의 진심이 꼭 가닿기를 바라며. 메이커님의 프로젝트 스토리가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