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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Jan 02. 2023

땅 - 샴스(3)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11) 

사마르칸트 외곽의 여관, 1242년 3월 


여관 위층에는 외로움과 피곤에 절은 열댓 명의 여행자들이 눕자마자 잠들어 제각기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비어있는 내 보료까지 맨발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땀과 곰팡이로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보료 위에 누워 어둠 속에서 그날 일어난 사건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어떤 신성한 징후를 목격했던 건 아닐까 숙고해보았지만 나의 무지, 혹은 성급함 때문인지 산만해지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환상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늘 신에게 이야기했고 신은 나에게 응답해 주었다. 어떤 날은 내 존재가 속삭임처럼 가벼워져서 천국까지 오르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고, 그런가 하면 땅 속 깊이 들어가 밤나무와 참나무 아래 숨겨진 거대한 바위 밑 흙냄새에 온통 잠기기도 했다. 가끔씩 나는 식욕을 잃었고 며칠 동안 계속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나는 이런 일들이 전혀 무섭지 않았지만, 다만 언제부턴가 남들에게는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것을 몸소 배웠다. 

처음으로 나의 환상을 왜곡한 사람은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나는 열 살 무렵부터 나의 수호천사를 보기 시작했는데, 순진한 어린 소년이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다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삼나무 상자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그의 뒤를 이어 목수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내가 수호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아버지는 싸늘하게 말했다. "그건 네 엉뚱한 상상일 뿐이야. 남들한텐 말하지 마라. 마을에서 한 번 더 말썽을 일으키는 걸 우린 원치 않는다, 알겠니?"     

며칠 전에 이웃 사람들이 나의 부모를 찾아와서 내가 이상하게 행동하면서 자기네 아이들을 겁주고 있다고 항의를 했기 때문이다. 

"네가 왜 이러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너는 그저 네 엄마나 나처럼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걸 왜 받아들이지 못하니?" 아버지가 물었다. "모든 아이들은 부모를 닮게 돼있어. 당연히 너도 그렇고."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의 부모를 사랑하고 또 그들의 사랑을 갈구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나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에게 있어 그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다른 자식들과는 다른 알에서 나왔나 봐요. 나를 그냥 닭이 잘못 알고 키운 물오리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평생을 닭장 안에서 지내도록 운명 지어진 사육닭이 아니에요. 아버지는 물을 무서워하지만 나는 물속에서 생기를 얻어요. 아버지와 다르게 난 헤엄을 칠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 헤엄을 칠 거예요. 드넓은 대양은 나의 고향이죠. 아버지가 나와 같이 살고 싶다면 바다로 오세요.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내가 가는 길을 방해하지 말고 닭장으로 돌아가세요."

아버지의 눈이 커졌다가 금세 작아지면서 멀어졌다. "벌써부터 아버지한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보니..." 그는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네가 컸을 때 너의 적이 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 참 궁금하다." 

내 부모에게 그토록 굴욕감을 주고도 환상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내 눈앞에 나타났다. 오히려 더 매혹적이고 강렬해져 갔다. 나는 부모님을 불안하게 만들고 속상하게 한 것에 대해 죄스러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도 그 환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고, 진실을 말하자면, 설사 없애는 방법을 알았다 해도 없애지 않았을 것이다. 멀지 않아 나는 집을 영원히 떠났다. 그때부터 '타브리즈'는 너무도 순수하고 섬세해서 혀 위에 올리자마자 녹아버릴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한 단어가 되었다. 그곳에 대한 나의 기억은 세 가지 향기를 불러낸다 : 잘린 생나무, 양귀비씨앗빵, 부드럽고 포슬포슬한 눈의 향기. 

그때부터 나는 방랑하는 데르비시가 되었다. 한 군데에서 하룻밤 이상 머물지 않았고 같은 곳에서 두 번 이상 연속으로 밥을 먹지 않았으며 매일매일 낯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배가 고프면 꿈을 해석해주고 몇 푼의 동전을 벌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동쪽과 서쪽을 오갔고 높은 데서 낮은 곳까지 신을 찾아다녔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찾기 위해,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을 찾기 위해 내 발걸음은 모든 곳을 향했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무역상들로 북적이는 대로를 따라가기도 하고 며칠 동안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는 잊혀진 길을 통과하기도 하면서 온갖 종류의 길을 걸었다. 흑해의 해안선에서부터 페르시아의 도시들까지,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부터 아라비아의 모래언덕까지 ; 카라반 숙소와 호스텔에 묵었고 ; 오래된 도서관에서 지식인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이야기를 들었고 ; 마드라사의 학생들과 만나 타프시르(꾸란의 주석서)와 논리학에 대해 토론했고 ; 사원과 수도원과 신전들을 가보았고 ; 운둔자들의 동굴에서 그들과 함께 명상을 하였고 ; 데르비시들과 함께 지크르(이슬람교 기도문) 암송을 했고 : 현자들과 같이 단식을 했고 이교도들과 어울려 식사를 했고 ; 보름달 아래서 샤먼들과 더불어 춤을 추었고 ; 그러면서 신앙과 종교와 나이와 직업을 망라하여 온갖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불행과 기적을 똑같이 목격했다. 

나는 가난에 찌든 마을을 보았고, 불타버려 검은 재만 날리는 들판을 보았고, 약탈당한 도시들의 강이 피로 붉게 물들고 열 살 이상의 남자들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한 참상을 보았다. 나는 인간이 지닌 극악무도함을 보았고 지극한 선도 보았다.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세상에 더 이상 없었다.   

그 모든 일들을 겪으며 나는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어떤 책에도 씌어있지 않았고 오로지 내 영혼에만 새겨진 것이었다. 나는 나만의 이 목록을 '이슬람 순회 신비주의의 기본 원칙'이라고 이름 지었다. 나에게 이것은 우주적인 보편으로서 신뢰할만하며 자연의 법칙으로서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이 원칙들은 또한 '사랑의 종교의 40가지 규칙'을 함께 구성하였다. 오직 사랑과 사랑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 규칙 중 하나는 이러하다.  

진실을 향해 가는 여정은 머리의 수고가 아니라 마음의 수고이다. 머리 말고 가슴을 나의 첫 번째 안내자로 삼아라. 가슴으로 나 자신(Ego)을 만나고 도전하여 자신과 싸워 이겨라. 진실로 나 자신을 알게 된다면 신을 알게 될 것이다. 

규칙들을 정리하여 40가지를 모두 완성하는 데에 수년이 걸렸다. 이제 다 끝냈으니 이 세상에서 남은 내 삶의 마지막 단계에 거의 도달했음을 느낀다. 최근 들어 그런 메시지를 주는 환상이 자주 나타났었다. 나는 죽음을 끝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시작한 작업을 완성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을 뿐이다. 내 가슴속에 쌓여있는 수많은 언어들과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지식을 스승도 아니고 제자도 아닌 누구에겐가 넘겨주고 싶었다. 나의 도반, 영혼의 길동무를 찾고 있었다. 

"신이시여." 어둡고 축축한 방 안에서 나는 속삭였다. "내 모든 삶을 바쳐 세상을 두루 다니며 당신의 길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고자 하였고 그들 안에서 신의 말씀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학자들의 상아탑에서 벗어나 별종들, 쫓겨난 이방인, 망명자들과 함께 지내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이제 저는 터질 것 같습니다. 제가 당신의 지혜를 올바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그럼, 당신의 뜻에 모든 것을 맡깁니다." 

내 눈앞에서 빛줄기들이 쏟아지면서 방 안이 환하게 밝아지고 잠든 여행자들의 얼굴은 맑고 파랗게 빛났다. 방안의 모든 창문이 바깥으로 활짝 열리고 돌풍이 불어 먼 곳의 어느 정원에서 백합과 재스민 향기를 실어온 듯 공기는 신선한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바그다드로 가라." 내 수호천사의 노래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그다드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게 무엇입니까?" 내가 물었다.

"너는 영혼의 길동무를 구하였다. 그러니 그를 만나게 될 것이다. 너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줄 사람을 바그다드에서 찾게 될 것이다."

나의 두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나는 알았다. 내 환상 속에서 본 그 남자가 바로 내 영혼의 길동무라는 것을. 조만간 우리는 만나게 될 운명이었다. 그를 만나면 나는 그의 다정한 갈색 눈동자가 어째서 영원한 슬픔에 잠기게 되었는지, 나는 무슨 연유로 이른 봄의 어느 날 밤 살해당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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