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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Sep 09. 2023

땅 - 초보수사(2)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22)

바그다드, 1243년 9월 29일     

 

데르비시가 되는 건 쉽지 않다. 모두가 나에게 경고했던 바다. 하지만 거기까지만 얘기해줬지, 데르비시가 되기 위해서는 지옥을 다녀와야 한다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내가 여기 온 후로 나는 내내 개처럼 일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온몸이 쑤시는 근육통과 발바닥이 욱신거리는 고통 때문에 잠들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일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비참한 꼴로 산다는 걸 누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설령 누가 알고 있다고 해도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 얻으려는 열망은 강할수록 더 멀어지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내 이름조차 모른다. ‘신입 초보 수사’ 라고 부르거나, 내가 지나가면 뒤에서 속삭이는 말로 이렇게 부른다. “연갈색 머리의 꼬맹이.”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주방장의 감시하에 부엌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 남자의 가슴엔 심장이 없고 대신 돌이 들어앉아 있다. 그는 데르비시 집회소의 주방장이 아니라 피에 굶주린 몽골 부대의 지휘관 같았다. 나는 그가 어느 누구에게도 상냥하게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웃는 법도 모르는 게 아닐까 싶다. 

한번은 데르비시 어르신 한 분에게 물어보았다. 초보 수사면 누구나 다 주방장 밑에서 일하는 견습을 거쳐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모두가 다는 아니지. 몇몇 사람만 그렇게 하는 거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왜? 바바자만은 왜 나한테 다른 초보 수사들보다 더 혹독한 고통을 겪게 하는 걸까? 나의 자아(Ego)가 다른 사람보다 더 크기 때문에 길들여지려면 훨씬 더 강한 훈련이 필요한 것일까? 

매일 아침 나는 가장 일찍 일어나서 근처 개울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사람이다. 그다음 난로에 불을 피우고 넓적한 참깨 빵을 굽는다. 아침 식사로 내놓을 수프를 준비하는 것도 내 책임이다. 오십 명의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욕조만한 가마솥 안에 모든 재료를 넣고 요리해야 한다. 게다가 다 먹고 나면 그 거대한 솥을 문질러서 씻는 건 나 말고 누가 하겠는가? 동틀 때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나는 바닥을 걸레질하고, 표면이란 표면은 모조리 깨끗이 닦고, 계단을 청소하고, 마당을 쓸고, 장작을 패고, 그리고 남는 시간엔 낡아서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에 엎드려 광을 낸다. 마말레이드를 만들고 매운 랠리쉬 소스를 만드는 것도 나다. 당근 피클을 만드는 것도 나고 스쿼시를 만드는 것도 나다. 피클을 만들 때는 정확한 양의 소금을 넣어서 달걀이 떠오를 정도로 소금물 농도를 맞춰야 한다. 더 넣거나 덜 넣었다간 주방장은 발작을 일으키면서 피클 항아리를 다 깨부순다. 그러면 나는 전부 다 치우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것에 한술 더 떠서, 나는 매일 아랍어 기도문을 외워서 의무적으로 암송해 보여야 한다. 주방장은 나보고 큰 소리로 기도문을 읊으라고 해놓고 내가 한 글자라도 틀리거나 빼먹지 않는지 검사한다. 요컨대 나는 기도하고 일하고, 일하고 기도한다. “네가 어렵고 힘든 부엌일을 잘 견딜수록, 그만큼 더 빨리 성숙하게 될 거다.” 나의 고문관은 이런 논리를 편다. “네가 요리하는 법을 배우는 동안 너의 영혼도 함께 익어가는 거야.”

“하지만 이 시험을 얼마나 오래 치러야 하는 거예요?” 한번은 내가 이렇게 물었다.

“천 일 하고도 하루 더.” 그가 대답했다. “천일야화(千一夜話)의 이야기꾼 세헤라자데가 그렇게 오랫동안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냈다면 너도 그만큼은 견딜 수 있는 거 아니겠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내가 그 수다쟁이 세헤라자데와 눈꼽만큼이라도 공통점이 있기나 한가? 게다가, 그 떠버리 여자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벨벳 쿠션에 기댄 채 발가락을 비비 꼬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지어내 가지고 잔인한 왕자에게 달콤한 포도와 함께 상상력 부스러기를 먹여준 게 전부다. 전혀 힘든 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 여자한테 만일 내가 하는 일의 반만 시켰어도 그 여자는 일주일도 못 버텼을 것이다. 누가 날수를 세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센다. 천 일 하고도 하루를 채우려면 앞으로 624일 남았다. 

맨 처음 40일 동안 내가 겪은 시험은 누울 수도 없고 일어설 수도 없이 작은 공간에 갇혀서 내내 무릎 꿇고 앉아서 지내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뭔가 다른 음식이 먹고 싶거나 편하게 다리를 뻗고 싶거나, 아니면 어둠이나 외로움이 두려워지거나, 신께서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여자의 몸이 자꾸 떠올라 몽정을 했다면, 천장에 달린 작은 은종을 울려서 영적인 도움을 구하라고 명령받았다. 나는 결코 종을 울리지 않았다. 나한테 전혀 딴생각이 들어오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차피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에 딴생각도 좀 했다고 뭐가 그리 큰 문제겠는가? 

격리기간이 끝나자 나는 다시 주방장에게 고통받기 위해 주방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정말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내가 주방장을 욕하기는 하면서도 그를 결코 거역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타브리즈의 샴스가 이곳에 온 그날 저녁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 저녁, 무작정 달려 나갔던 나를 주방장이 결국 붙잡았을 때, 나는 태어나서 가장 혹독하게 매를 맞았다. 내 등짝을 내리치는 버드나무 몽둥이가 계속해서 부러져나갈 정도였다. 그런 다음 주방장은 내 신발을 바깥쪽으로 향하도록 문 앞에 놓음으로써 이젠 내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분명한 암시를 주었다. 데르비시 집회소에서는 결코 누군가에게 데르비시가 될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해주거나 나가라고 내쫓지 않았으며, 대신 스스로 조용히 나가게끔 만들었다. 

“우리는 네가 그럴 마음도 없는데 억지로 데르비시로 만들 수는 없다.” 주방장은 선언했다. “당나귀를 시냇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지. 당나귀 스스로가 자기 의지를 갖고 있어야만 해. 그 외엔 다른 방법이 없어.”

물론 그건 나를 당나귀 취급한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난 벌써 이곳을 박차고 나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타브리즈의 샴스 때문에 그러지 않은 것이다. 그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난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샴스 같은 사람은 내 평생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다. 심지어 주방장조차도 그를 존경했다. 이곳에서 나의 롤모델이 될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초라하고 나이 든 스승님이 아니라, 위엄과 매력과 어디에도 구속됨 없는 자유를 지닌 오직 한 사람, 샴스 뿐이었다. 

그렇다. 샴스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를 만난 후, 나는 나 자신을 온순한 데르비시로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지낸다면 나는 당당하고 확고하며 자주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기 때문에 가을이 되어 샴스가 이 집회소를 아주 떠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도 그를 따라 떠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바바자만을 만나러 가니, 그는 등잔불 옆에 앉아서 고서(古書)를 읽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일로 왔느냐?” 나를 바라보는 것조차 힘겹다는 듯 그는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가능한 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타브리즈의 샴스가 떠난다고 들었습니다. 그와 함께 가고 싶습니다. 그분도 길동무가 필요할 거예요.”

“네가 그 정도로 그 사람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구나.” 바바자만은 수상쩍어하며 말했다. “아니면 혹시 너에게 주어진 주방일의 의무를 피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 너의 견습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너는 데르비시가 되려면 한참 멀고도 멀었단다.”

“어쩌면 샴스와 같은 분과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이 저의 견습 과정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제안하는 것이 뻔뻔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어쨌든 말을 하기는 했다. 

바바자만은 시선을 내리깔더니 사색에 잠겼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가 나의 오만방자함을 꾸짖고 주방장을 불러 나를 더욱 철저히 감시하게 할 거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쓸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도 너의 천성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길로 들어선 일곱 명의 초보수사 중에 한 명만 남게 되었구나. 내가 느끼기엔 너한테는 데르비시가 맞지 않는 것 같아. 너에게 주어진 운명은 다른 곳에서 찾는 게 좋겠다. 샴스를 따라가는 것에 대해선 그에게 직접 물어보려무나.”

이 말을 끝으로 바바자만은 다소곳하고 익숙한 고갯짓으로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나는 서글프고 소심해졌지만, 한편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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