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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Sep 10. 2023

땅 - 샴스(5)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23)

바그다드, 1243년 9월 30일 


이른 새벽녘, 바람과 싸우며 나는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렸다. 뒤를 돌아본 것은 딱 한 번이었다. 데르비시 집회소는 떨기나무와 뽕나무 수풀 속에 감추어진 새 둥지처럼 보였다. 바바자만의 슬픈 얼굴이 잠시 내 눈앞을 어른거렸다. 그가 나를 걱정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나는 사랑을 위한 내면의 여정에 오른 것이다. 그 길에 어떤 해로운 것이 끼어들 수 있겠는가? 내가 따르는 열 번째 규율은 이러하다.  

“동쪽이든 서쪽이든 남쪽이든 북쪽이든 별 차이가 없다.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든, 모든 여행은 내면의 여행이 되도록 하라. 너의 여행이 내면을 향한다면, 세상 전체, 그리고 그 너머까지도 여행하는 것이다.”

앞으로 내게 어려운 일들이 닥칠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콘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운명이 어떤 것이든 나는 기꺼이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수피(Sufi)로 훈련받았기에 장미와 함께 가시도 받아들이고, 아름다움과 함께 역경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또 하나의 규율을 기억한다. 

“산파는 알고 있다. 고통이 없이는 결코 아기가 나오는 길이 열리지 않으며, 고통이 없이는 엄마가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마찬가지로,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려면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데르비시 집회소를 떠나기 전날 밤, 나는 내 방의 창문을 모두 열어서 어둠의 소리와 냄새가 안으로 스며들도록 했다. 흔들리는 촛불 옆에서 나는 내 긴 머리를 잘랐다. 묵직한 머리카락 뭉텅이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모두 깎고 눈썹까지 말끔히 밀어버렸다. 다 끝내고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니 훨씬 밝고 젊어 보였다. 털이 없어진 내 얼굴에는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함께 지워져 있었다. 과거도 미래도 없고 오로지 현재만이 영원히 봉인되어 있었다. 

“여행이 벌써 당신을 바꿔놓고 있군요.” 내가 작별인사를 하러 그의 방으로 들어가자 바바자만이 이렇게 말했다. “아직 여행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네,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사랑의 규칙 40가지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 사랑의 탐구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사랑을 추구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성숙해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구도자라고 할 수 없다. 사랑을 탐구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모두 변화되기 시작한다.”   

옅은 미소를 띠며 바바자만은 벨벳으로 감싼 상자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 은으로 만든 거울, 실크 손수건, 작은 유리병에 든 연고. 

“이것들이 앞으로의 여정이 도움이 될 겁니다. 필요할 때 쓰십시오. 만일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면, 이 거울이 당신 안의 내적 아름다움을 보여줄 겁니다. 당신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럴 땐 이 실크 손수건을 보면서 당신의 순수한 마음이 얼마나 깨끗한지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 연고는 상처를 치료해줄 겁니다. 마음의 상처와 몸의 상처 모두.”

나는 받은 물건을 하나하나 소중히 쓰다듬어 보다가 상자를 닫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  다음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새들이 지저귐과 함께 새벽의 여명 속에서 나뭇가지에 작은 이슬방울들이 맺힐 때, 나는 말에 올라타서 콘야를 향해 출발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신성한 영이 나를 위해 준비한 운명을 믿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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