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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Sep 13. 2023

땅 - 초보수사(3)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24) 

바그다드, 1243년, 9월 30일 

     

훔친 말을 타고 타브리즈의 샴스 뒤를 쫓아 나는 달렸다. 그가 알아채지 못하게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내 모습을 들키지 않고 계속 뒤따라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걸 곧 깨달았다. 샴스가 잠시 목도 축이고 여행길에 필요한 몇 가지 물건도 사기 위해 바그다드의 한 시장에 들렀을 때, 나는 그의 말 앞으로 가서 넙죽 엎드렸다.  

“아니! 연갈색 머리 꼬마야, 땅바닥에 엎어져서 뭘 하고 있는 거니?” 샴스가 깜짝 놀라 신기해하며 말 위에서 소리쳤다. 

나는 언젠가 봤던 구걸하는 거지의 모습처럼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움켜쥐고 목을 길게 빼면서 간청했다. “당신과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저를 데려가 주세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기는 하니?”

나는 멈칫했다. 그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아뇨,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의 롤모델이니까요.” 

“나는 항상 혼자서 떠돌아다녀 왔단다. 그리고 제안은 고맙지만 제자도 학생도 원하지 않아. 게다가 내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만한 사람이 결코 아니구나, 너한테는 더더욱 그렇고.” 샴스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너는 너의 길을 가거라. 하지만 앞으로도 네가 너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을 찾고 싶다면, 이 황금율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렴 : 이 세상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우주의 별보다 더 많은 수의 가짜 스승과 거짓 지도자들이 있다. 힘을 과시하며 권력을 쫓는 사람, 자기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고 외치는 사람을 멘토라고 착각하지 말아라. 진정한 영적 스승은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한테 집중시키지 않으며,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거나 지극한 존경을 바라지도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각자 그들 내면의 참된 본성을 깨닫고 경외하도록 도울 뿐이다. 진실한 멘토는 유리와 같이 투명하다. 신의 빛이 그를 통과하여 사람들에게 비추도록 할 뿐이다.” 

“제발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나는 애원했다. “이름난 방랑자라면 누구나 그의 여행길을 보조해줄 누군가를 한 명쯤은 데리고 다니지 않습니까? 견습생 같은 뭐 그런 거 말이죠.”

샴스는 마치 내가 한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듯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그의 턱을 쓰다듬다가, “나와 함께 가는 길을 견딜만한 힘이 너한테 있니?” 라고 물었다. 

나는 펄쩍 뛰면서 온몸으로 긍정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나의 힘은 내면에서 솟구치는 걸요.”

“좋아, 그럼, 너에게 첫 번째 과제를 주마 : 여기서 가장 가까운 술집으로 가서 포도주 한 주전자를 다 마셔라. 여기 이 시장통 안에서 너는 취하는 거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수없이 내 예복으로 마루를 문질러 닦았었고, 냄비와 팬을 모조리 광을 내서 마치 오래전 십자군이 도시를 약탈했을 때 콘스탄티노플에서 도망쳐온 공예장인이 손에 들고 보여줬던 베네치아 유리처럼 반짝반짝 빛나도록 만들었던 사람이다. 한자리에 앉아서 수백개의 양파를 썰거나, 엄청난 양의 마늘을 전부 쪽으로 갈라 껍질을 벗겨 다지면서, 그 모두를 영적인 성장이라는 명목하에 해냈던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득한 시장 한복판에서 완전히 술에 취한다는 건,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나는 겁에 질려 샴스를 쳐다보았다. 

“그, 그건 못해요. 만일 우리 아버지가 아시면, 제 다리를 분질러 놓을 거예요. 아버지는 나를 더 신실한 무슬림이 되라고 데르비시 집회소에 보냈지, 이교도가 되라고 보낸 건 아니거든요. 우리 가족이나 친구들이 저를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쏘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샴스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그 압박에 몸이 떨려왔다. 마치 예전에 문 뒤에서 그를 엿보고 있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그렇지? 그러니까 너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는 거야.” 그는 확신하며 말했다. “너는 나와 함께 다니기엔 너무 겁이 많아. 다른 사람이 너를 어떻게 보는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거기에 신경을 쓰지. 하지만 알아둬라, 네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한,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너는 결코 그들의 비판으로부터 놓여날 수 없을 거야.”

나는 샴스와 동행할 가능성이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나 자신을 변호했다. 

“당신이 일부러 나한테 그런 일을 시켜봤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술은 이슬람교도에게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잖아요. 내가 술의 유혹에 빠지는지 시험해보려고 한 줄 알았다구요.” 

“그런 짓을 한다면 사람이 신 노릇을 하는 격일 게다. 우리에겐 다른 사람의 독실함을 평가하거나 판단할 권한이 없단다.” 샴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절망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마음은 밀가루 반죽처럼 패대기쳐진 것 같았다. 

샴스는 말을 이어갔다. “너는 길을 떠나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 길을 가기 위해 뭔가를 희생하고 싶어하지는 않지. 돈, 명성, 권력, 부유함, 혹은 육체적 쾌락―그게 뭐가 됐든 자기 삶에서 반드시 붙들고 싶은, 바로 그것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해, 길을 떠나려면 그걸 버려야 한단다.” 

샴스는 말의 잔등을 툭툭 두드리면서 단호한 태도로 결론지었다. “내 생각에 너는 바그다드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가서 지내야 할 것 같다. 정직한 상인을 찾아가 그의 견습생이 되어라. 너는 나중에 훌륭한 상인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들어. 하지만 욕심을 부리지는 말아라! 자, 이제 그만 내가 떠나도록 허락해주면 좋겠구나.”    

이런 말과 함께 샴스가 내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넨 다음 말에게 박차를 가해 달리며 멀어져 갈 때, 그 천둥 같은 말발굽 아래로 세상이 미끄러지며 뒤로 밀려나는 것 같았다. 나는 급히 말에 올라타서 그의 뒤를 따라 바그다드 외곽까지 쫓아갔으나 그와 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더욱더 멀어져서 그는 마침내 아득한 곳의 한 점이 되어버렸다. 그 한 점이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나는 샴스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 눈빛의 무게를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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