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토카레바, <빅토리아 토카레바 단편집>
사람에게는 꿈이 중요하다 말한다. 어린 시절에 꿈에 대해 질문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답하는 아이가 이런저런 자기의 꿈을 밝히면 질문한 어른의 상당수는 그 꿈에 대해 평을 덧붙인다. 그 꿈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꿈도 크다, 아니 어린아이가 너무 꿈이 작잖아. 요즘 애들은 꿈도 참 현실적으로 꾼다 등등. 크면 커서 문제, 작으면 작아서 문제란다. 그런 어른도 정작 어린 시절에는 남들이 보기에 참 이루기 어려울 것 같은 꿈을 꾸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자기의 능력과 한계를 깨닫고는 꿈을 조정하고, 줄여가면서 ‘현실’이라는 틀에 맞춰 살게 된다. 그러면서 그 꿈 자체를, 아니 그런 꿈을 꾸었던 그 옛날의 자기를 잊고 먹고사는 일에 몰두해 나날이 살아가기 바빠진다. 나 또한 그런 아이였고, 그런 어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단편집을 읽고 있다. 두 번째 작품 <없었던 것에 대해>는 실현 불가능한 꿈과 그 꿈의 좌절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디마’의 어린 시절 꿈은 남들과 조금 다르다. 디마는 호랑이를 키우고 싶어 한다. 어느 날 아빠가 여섯 살 난 디마의 손을 잡고 동물원에 데려가 호랑이를 보여 준다. 호랑이의 푸른 눈에는 수직의 눈동자가 있고, 코의 검은 피부 주위로는 까만 동그라미가 퍼져 있다. 그리고 머리 위로는 이등변삼각형을 닮은 두 귀가 돌출해 있다. 디마는 호랑이를 보자마자 깊은 감동을 받고 아빠에게 조른다. “아빠, 나 호랑이 갖고 싶어.”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빠에게 또다시 조른다. “호랑이 갖고 싶어. 우리 집에서 살 수 있게.” 그런 디마에게 아빠는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집에서는 개나 고양이가 사는 거야. 호랑이는 집에서 살지 못해.”
대부분의 아이라면 자라면서 호랑이를 왜 집에서는 키울 수 없는지 알게 되고 자연스레 그 꿈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런 꿈 자체를 어린 시절의 귀여운 일화쯤으로 치부하게 된다. 그러나 디마는 달랐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의사가 된 디마는 남들이 생각하기엔 버젓한 직업을 가졌지만 현실에 딱히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호랑이를 갈망한다. 사람들은 위급한 상태에 처하면 디마를 집으로 호출한다. 그들은 디마의 왕진을 매우 기뻐하지만 상태가 좋아져 디마가 그들을 떠나는 즉시 그를 완전히 잊고 만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그와 같다.’ 디마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직업은 전혀 창조적이지 않고, 환자들은 무례하기 짝이 없다. 그런 데다가 집에서는 엄마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잔소리를 한다. “넌 어릴 때부터 주변머리라곤 없었어. 다른 애들이 간단하게 다 하는 망나니짓도 할 줄 몰랐지. 지금도 너는 그래. 나태한 인간들도 다 가진 꿈도 간단하게 꾸지 못하잖아. 너한테는 아무것도 없어. 앞으로도 절대. 아무것도 없을 거다.”
나태한 인간도 다 가진 꿈조차 간단하게 꾸지 못한다고 구박받는 디마. 그에게는 그래도 호랑이를 키우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남들은 상상조차 잘하지 않는 원대한 꿈이 있지 않은가? 술집에서 자기 신세를 한탄하던 그에게 누군가 조언한다. 동물원으로 가보지 그래요? 거기라면 호랑이 한 마리쯤 살 수 있지 않겠소? 디마는 드디어 자기 꿈을 실현하고자 행동으로 옮긴다. 그 어린 시절 동물원을 다시 찾은 것이다. 그런데 이 동물원은 어린 디마에게 줬던 감흥을 다시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20년 전에 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독수리 우리에서 독수리 자체만을 봤다. 그런데 이제는 ‘갇혀 있는 독수리’를 본다. 독수리 우리는 위로 열려 있다. 독수리는 머리 위로 하늘이 있으나 그곳을 향해 날아갈 수 없다. 날개가 꺾였기 때문이다. 독수리는 꺾인 날개를 늘어뜨리고 넓은 그루터기에 앉아 있다가 가끔씩 나무 장식 위를 걸어 다니곤 한다. 그런 나무 장식은 주방 가구점에서나 파는 것들이다. ‘갇혀 있는 독수리’를 보는 디마의 모습, 날개가 꺾였기에 하늘이 열려 있어도 그곳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독수리는 꿈은커녕 하루하루 소시민으로 살아가기 바쁜 디마, 그리고 현대인의 모습과 같다.
디마는 동물원 관리소 원장과 이야기를 나눈다. 호랑이를 사고 싶다고. 그러나 원장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대꾸한다. 우리에겐 남는 호랑이가 없다, 그게 얼마나 비싼 줄 아느냐, 당신의 재력으로는 절대 호랑이를 살 수 없다 등등. 그러면서 서커스장 조련사에게 가보라고 권유한다. 그곳이라면 호랑이 한 마리쯤 팔지도 모른다고. 디마는 그의 권유대로 이번에는 서커스장을 찾아가 조련사를 만난다. 호랑이를 집에서 키우고 싶다는 디마를 조련사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한 소원도 다 있군요.” 그러고는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내과 의사라는 말을 듣자 자기 병에 관해 질문하기 바쁘다. 이때 서커스 조련사가 하는 말이 인상 깊다. “호랑이는 당신보다 내게 더 필요해요. 당신에게는 꿈이지만 내겐 생산도구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러운 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먹고사는 데 꼭 필요한 생산도구. ‘호랑이’ 대신 다른 말을 집어넣어도 될 것 같다. 조련사는 마지막으로 ‘두로프 우골로크’(학교나 공장에서 특별한 용도로 쓰이는 동물원이나 식물원)로 가보라고 제안한다. 디마는 또 그곳을 찾아가 보지만, 그곳 관계자는 이곳에 집토끼, 비둘기, 너구리는 있어도 호랑이는 없다 말하며 자리를 뜬다.
디마는 호랑이를, 그 꿈을 잊고 싶다. 뇌에 스위치가 있어서 스위치를 끄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디마는 호랑이 꿈을 포기하게 될까? 그런데 뜻밖으로 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디마에게는 어릴 적 친구인 ‘바샤’가 있다. 지질학자인 바샤는 얼마 전 시베리아 호랑이의 원산지인 ‘우수리스크’ 침엽수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곳에서 사라진 매머드 추골을 찾아냈는데, 그것 말고도 새끼 호랑이 암컷을 선물로 받아 온 것이다. 그의 아내는 그런 선물에 질색해서 새끼 호랑이를 정부에 무상으로 건네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성화했고, 드디어 디마에게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마침내 꿈이 실현된 것이다! 디마는 새끼 호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축하하고자 아래층 ‘레기나’를 찾아 보드카를 마시자고 제안한다. 그때 레기나의 대답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꿈을 위해서” 디마가 제안했다.
“그런 거라면 안 마실래요” 레기나가 거절했다
“그래도 꿈이 없다면 산다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그럼 꿈꾸세요.” 그녀가 말했다. “아무 말 안 할 테니”
새끼 호랑이를 드디어 집에서 키우게 됐으니 디마는 행복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디마와 달리 주변 사람들은 이 꿈의 실현이 못마땅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당연하다. 고양이도 개도 아닌, 호랑이지 않은가. 디마의 여자 친구 ‘랼랴’는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는 사람들은 호랑이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의 집에 오기를 거부한다. 디마도 호랑이도 똑같이 무서워한다. 디마와 함께 사는 엄마와 아빠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지루하지만 평온했던 일상은 무너졌다. 새끼 호랑이는 오줌을 아무 데나 쌌고, 자랄수록 고기 값도 많이 들었으며, 소파를 손톱으로 긁어대 엉망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이 모든 것을 참는다. 호랑이가 무섭기 때문에 호랑이를 다그치지 못하고 디마를 향한 잔소리가 더 늘어간다. 엄마의 끊임없는 비난을 들으면서 디마는 문득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 꿈이 이상한 게 아닐까? 잘못된 게 아닐까? 엄마의 말과 바샤의 아내 행동이 이치에 맞는 게 아닐까. 디마는 호랑이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그러니까 제 꿈을 다시 ‘없었던 상태’로 돌려놓고자 애를 쓴다. 그런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루었던 꿈을 포기하려고 마음먹고 괴로워하는 디마에게 릴랴는 다른 꿈을 가져보라고 조언한다.
다른 꿈을 가져 봐”
“하지만 그건 배신행위야!”
“뭐가 배신행위야?” “실현된 꿈은 이미 꿈이 아니야.”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호랑이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나의 가장 좋은 부분이 나한테서 사라지고 말 거야.”
“그렇지만 당신이 호랑이를 보호한다면, 그가 자라서 당신을 잡아먹겠지. 그럼 당신에겐 결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걸.”
실현된 꿈은 이미 꿈이 아니라는 말도, 그러니까 이제는 다른 꿈을 가져보라는 말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호랑이(꿈)’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가장 좋은 부분이 자기한테서 사라지고 말 거라는, 그건 배신행위라는 디마의 항변도 수긍이 간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이 호랑이를 보호한다면, 그가 자라서 당신을 잡아먹겠지. 그럼 당신에겐 결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걸.”이라는 랼랴의 말은 남들이 보기에 허황하고 무모한 꿈을 꾸는 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실제로 호랑이가 사라지고 난 뒤 이웃들은 디마에게 전보다 더 친절해진다. ‘대체로 사람들은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 디마는 자신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꿈을 잃은 디마는 술집에 앉아 우울한 얼굴로 옆에 앉은 사내에게 말한다. “엥겔스가 그런 말을 했다죠. ‘비극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건 바로 실현 불가능과 욕망의 충돌이다’라고 말이에요.”........ 나에게도 아직도 꿈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혹시 디마의 호랑이 같은 것은 아닐까..... 이 짧은 단편은 오늘 내게 많은 것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