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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자냥 Nov 23. 2021

삶의 쾌락이냐, 명성이냐

서머싯 몸, <케이크와 맥주>




어제도 맥주를 마셨고 오늘도 숙취에 시달린다. 그런 아침에는 오늘만큼은 퇴근 후 맥주를 마시지 말아야지, 하는데 집에 도착할 때쯤엔 어김없이 편의점에 들러 맥주 4캔 또는 6캔을 주섬주섬 담고 있다. 그러면서 딱 2캔만 마셔야지 다짐하지만 밤 11시를 넘길 즈음에는 빈 맥주 캔이 모조리 찌그러진 채 식탁 위에 뒹굴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또다시 숙취에 시달리며 생각한다. 아, 이렇게 순간의 쾌락에 지고 마는 한심한 인간이라니! 어쩜 그리 매 순간 쾌락에 지고 마는가?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는 바로 이렇게 삶의 쾌락과 즐거움에 몸을 던지는 이들의 이야기로, ‘케이크와 맥주’는 셰익스피어의 <십이야>에 등장한 관용구로 물질적 쾌락, 또는 삶의 유희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작품 시작은 처음부터 그런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첫 문장은 이렇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집에 전화를 걸어 찾는 사람이 출타 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중요한 용무인 양 들어오는 대로 전화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면 그 용무란 것은 전화를 받은 사람보다 전화한 사람에게 더 중요한 일이기 마련이다.’ 작가인 ‘나(어셴든)’는 이 메시지가 그다지 반갑지 않다. 누군가가 뭔가를 부탁하려는 전화이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전화를 건 이는 어셴든의 동료 작가 ‘로이’인데, 이어서 이어지는 그에 관한 묘사를 읽노라면 로이는 당대 명성을 쌓은 유명 작가이지만, 인간적으로나 작가 개인으로서나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임이 드러난다.

로이에 견주면 그리 유명하지도, 명성을 크게 누리고 있지도 않은 어셴든은 대체 그가 자신을 왜 찾는지 궁금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목적이 있다. 최근 세상을 떠난 유명 작가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전기를 쓰게 된 로이는 어셴든에게 그에 관한 정보를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노년에 이르러 거장으로 칭송받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사실 어셴든은 드리필드가 무명이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던 것이다. 로이의 요청에 어셴든은 자연스레 옛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 작품의 재미는 ‘나’의 회상, 즉 열여섯 소년 시절에 한 마을에 살면서 가깝게 지내게 된 에드워드 드리필드와의 일화를 지켜보는 일에 있다. 특히 드리필드의 부인 ‘로지’는 그 추억을 한결 풍요롭게 만들어주는데, 그녀야말로 삶의 유희와 쾌락에 온몸을 던진, ‘케이크와 맥주’의 철학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살아간 인물이다.

빅토리아 시대 끝 무렵, 사회 변동이 심하던 이 시기에 신분 이동도 심해, 신흥 부르주아들이 전통 신사 계층에 편입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셴든이 사는 ‘블랙스터블’의 상류층(귀족)들은 이런 변화가 달갑지 않다. 성직자인 어셴든의 숙부와 귀족 가문 출신인 숙모는 특히 더 그렇다. 이런 마을에 어느 날 드리필드와 그의 아내 로지가 이사를 온다. 그런데 이들은 이 보수적인 마을에서 너무나 튀는 존재이다.  드리필드는 가난한 집안 출신인 데다 소설가라고는 하지만 이렇다 할 명성도 없이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있는, 한마디로 블랙스터블의 고귀한 사람들이 보기엔 형편없는 집안 출신의 형편없는 인물인 것이다. 한 술 더 떠 그의 아내 로지에 대해서는 온갖 소문이 자자한데, ‘펍’에서 일하던 여성이라느니, 마을의 누구와 내연 관계였다느니 등등 이 보수적인 동네 사람들에게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결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종자들이다. 숙부와 숙모는 당연히 어셴든이 이 비천한 자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아직까지 계급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선을 간직하고 있던 어셴든 그 자신도 그들과  어울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연히 ‘자전거 사건’을 계기로 그들 부부와 인사를 하게 되고, 두 부부는 그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온다.

십 대 소년이었던 어셴든은 처음에는 드리필드 부부를 보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다. 보수적인 세계관에 물들어 있었기에 그들 부부의 기행(?)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그의 눈에 드리필드 부부는, 해도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어 보이며, 모든 일에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거리낌이 없다. 이런 그들의 태도는 끊임없이 그를 민망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는 이 자유로운 부부와 가까이 지내면서 자신이 속한 블랙스터블의 모순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블랙스터블 사람들은 ‘가식이 가득한 삶’을 살았으며 ‘체면이라는 가면’(100쪽)을 쓰고 살았던 것이다. 드리필드 부부를 통해 얻은 이런 깨달음은 훗날 작가가 되는 어셴든에게 여러 모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는 저 ‘로이’처럼 무분별하게 명성과 성공만 좇는 인물은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작가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어셴든은 이제 거장이라 불리는 드리필드에게도 조금은 냉소적인데, 그가 읽기에 그의 소설은 지루하기 짝이 없으며, ‘너무 긴 데다 무딘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려 동원한 멜로드라마적 사건들도 시시’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는 진실성이 있으며 최고의 작품에는 생동감이 어려 있고, 불가사의한 개성도 느껴진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드리필드가 거장으로 칭송받게 된 데에는 그가 아주 오래 살았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초창기에 드리필드는 문단에서 겨우 인정받는 정도였다. 일류 비평가들은 그를 칭찬하면서도 미적지근했으며 젊은이들은 그를 마음껏 씹어댔다. 재능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했지만 그가 영국 문단의 거목 중 하나로 우뚝 설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가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이하자 ‘문단에 파란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드리필드가 명성을 얻은 까닭은 ‘단지 오래 살았기 때문’이라는 이 냉소적인 시각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아마도 서머싯 몸 그 자신의 생각이 아닐까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작가들은 왜 나이가 들어 갈수록 존경을 받는지 나는 오랫동안 의구심을 품어 왔다.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읽은 책들은 화려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는 해마다 높아진다.(<케이크와 맥주>, 144쪽)



<케이크와 맥주>는 어셴든과 드리필드 부부의 일화를 지켜보는 재미만큼이나 작가들의 삶과 명성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드리필드’의 전기로 다시 한번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려는 꿈에 부푼 로이는 있는 그대로의 드리필드를 그리기보다는 자기 입맛에 맞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윤색된 이미지의 드리필드를 그리고자 한다. 때문에 어셴든이 들려주는 추억 속의 드리필드, 그러니까 서민적이고 평범하고 자유분방한 그의 모습을 불쾌하게 여기면서 그런 일화는 과감히 무시한다. 예컨대 싸구려 펍에서 보드빌을 부르는 드리필드,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절의 습관 때문에 ‘고기와 채소를 먹고 나서 빵 조각으로 접시를 싹싹 닦아 먹는 버릇’이 있는 드리필드, 돈 문제에 부도덕했던 드리필드, 아랫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서 이상한 즐거움을 찾는 ‘결점’을 지닌 드리필드, 목욕을 싫어하던 드리필드 등등은 로이가 절대로 그리고 싶지 않은 ‘거장’의 모습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런 드리필드의 모습은 유명 문인, 거장 작가로서 지켜야 할 품위에 어긋나며, 득이 될 일이 없다. 게다가 드리필드의 두 번째 부인인 ‘에이미 드리필드’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드리필드 전기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 나가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첫 번째 부인 로지를 완전히 지워버리거나 드리필드를 망치는 데 일조한 여자로 만들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런데 로지는 정말 드리필드를 망친 악녀였을까? 두 번째 아내, 에이미 드리필드가 말한 것처럼 도덕적, 신체적 경제적으로 모든 면에서 로지는 남편 에드워드 드리필드에게 대단히 해로운 영향을 끼쳤을까? 로이와 에이미의 말처럼 로지는 ‘지적으로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편보다 열등’한 여자였으며 드리필드는 첫 번째 결혼에서 ‘아주 불행’했을까? 그러나 어셴든은 로지에 관한 이런 그들의 평가에 씁쓸하지만 조용히 미소 짓는다. 자신이 보아온, 직접 느꼈던 로지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이들도 로지에겐 분명 결점이 많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솔직함과 자유분방함, 어린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활력이 에드워드 드리필드를 훌륭한 작가로, 하층민의 삶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그려낸 능력을 지닌 작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 줬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드리필드의 모든 명작이 로지와 함께 살던 시절에 탄생했다는 사실이 그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로지가 떠난 후, 후견인인 트래퍼드 부인을 만나 그녀의 ‘관리’ 아래 명성과 성공을 얻은 드리필드. 그러나 그의 작품은 물론 그 자신도 생기와 개성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면, 작가에게 아니, 한 인간 개개인에게 명성과 성공, 그리고 삶의 즐거움과 쾌락은 과연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서머싯 몸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편의점에 들러 맥주 4캔을 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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