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시원하게 뻗어 흐르는 해안선을 바라볼 때 기체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아이는 본능적으로 아빠의 팔을 잡아 벌린 다음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한 제주에서 육지를 오가며 수십 차례 난기류를 만났음은 물론이고 고-어라운드까지 숱하게 겪은 나로서도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앞으로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상기시키는 이방인을 향한 낯선 대지의 경고처럼 느껴졌다.
아빠와 아들은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두 팔로 서로의 크고 작은 몸뚱어리를 강하게 붙들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우리는 꽤 자주, 바람과 비와 추위와 피로에 맞서 서로를 힘껏 끌어안아야만 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나는 만 2살 아들과 둘이서 부산까지 기차여행을 떠난다(아이의 동의는 미처 구하지 못했다만). 우리의 여행은 활강과 난기류의 연속이며 냉탕과 온탕으로 오가는 끝없는 방황과 모험의 여정이었다.
여행 둘째 날. 우리를 제주에서 양양까지 싣고 날랐던 비행기가 김포로 긴급 회항했다는 뉴스와 함께 수 일간의 결항 소식이 들려왔고 바로 그때, 봄마다 영동 지역을 뒤흔드는 매서운 바람의 존재가 오래된 기억 속에서 불씨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양간지풍(襄杆之風). 불길에 휩싸인 낙산사와 소방차. 전국에서 가장 습한 섬에서 태어난 아들은 건조한 공기 앞에서 계속해서 기침을 토해냈고 끊임없이 눈을 비볐다. 동해역에 도착한 부자는 미세먼지 경보와 황사 경보가 함께 내려진 붉고 누런 하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루만 늦었어도 시작될 수 없었던 여행은 언제나 난관을 둘러갈 여지를 남겨두었지만 결코 일찍이 우리에게 그 길을 내어 보이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잠들어있던 양양공항에 다시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동해선 개통 소식과 어린이집 방학이 겹쳐지는 순간에 어떤 운명이 한 부자의 발길을 강원도로 끌어당겼다. 아빠는 아이를 품에 들고 아이가 너무나 타보고 싶어 했던 기차에 몸을 실었다. 때론 아이와 함께 10km 정도의 적지 않은 거리를 묵묵히 걸었고 동해바다와 태백산맥을 양편에 두고 400km 가까이 이어진 철길에서 먹고 쉬며 쪽잠에 빠져들었다. <오디세이아>의 종착지가 평화로운 고향 이타카였던 것처럼, 우리 부자의 여행도 안전하게 제주도로 돌아옴으로써 마무리가 된다. 오디세우스와 마찬가지로 우린 돌아오기 위해 먼 길을 떠났던 것이다.
지난 기억을 되살리며 모니터 앞에 앉은 지금, 나는 다시 여행의 첫 순간으로 돌아가 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비행기와 아이의 팔을 따라 전해지던 두려움의 외침. 운명처럼 시작된 여행을 기록하는 지금 이 순간에 켜켜이 쌓인 피로감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익숙한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아들과 둘이 떠났던 여행을 아빠가 홀로 다시 한번 다녀와본다, 낯선 해안선에서 느낀 익숙한 바람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