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장을 열 때마다 전국적인 폭설이 내린, 아주 오래된 하루가 떠오른다. 탈선으로 인하여 오랜 시간 지연된 무궁화호가 대전에 처음 도착했을 때 펼쳐진, 눈이 어른의 허리 높이까지 쌓였던 대전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설국(雪國)이었다. 20년도 더 지난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데에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눈을 보기가 힘들었던 유년시절 탓도 있겠다만 아마 기차만이 전달할 수 있는 독특한 정취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한 아이를 데리고 기차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을 하는 과정에서, 그 오래된 기억을 다시 살려내보고자 했던 나의 열망이 담기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분명하다. 아이가 어린 탓에 이번 여행의 기억은 오직 나에게만 불완전하게 남을 가능성이 크지만, 어느 정도 머리가 큰 아이에게 들려줄 우리만의 이야기가 하나 생겼음에 위안을 삼게 될 지도. 혹여나 아이가 이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면 기차의 왼쪽 창문으로 펼쳐진, 섬 한 점 없는 동해의 선명한 수평선을 아주 오래 시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이는 쉼 없이 뒤편으로 흘러 들어가는 창문 밖의 세상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광활한 논과 거대한 시멘트 공장과 제철소의 굴뚝들. 물이 귀한 화산섬에 태어난 탓에 보지 못한 낯선 세상은 설국처럼 자연이 빚어낸 찰나의 걸작은 아니었겠다만 그 나름대로 신선한 탓에 볼 맛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살의 호기심이란 그다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고 아이는 금세 쪽잠에 빠져들었다. 아빠의 팔을 하나를 끌어당겨 베개 삼은 채.
아이를 깨운 것은 기차의 진동도, 팔에 쥐가 난 덕에 흘러나온 아빠의 신음소리도 아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울음소리, 바로 4호차를 가득 채운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외침이었다. 기차의 절반을 차지한,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아이들이 만들어낸 한 호흡 쉬고 훅- 치고 들어오는 목소리는 재즈의 스윙 같았달까? 중앙통로에서 만난 아이들은 저마다 알고 있는 노래를 처음 보는 친구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 다른 노선과는 달리 동해선 KTX-이음은 유아동반칸이 4호차에 있으며 복도에는 기저귀 교환이 가능한 수유실이 있다.
하나, 둘 심지어 아이 셋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는 엄마들은 3분에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많은 엄마들이 피곤해 보였고 때론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쏟아지곤 했다. 아이가 좁은 통로를 막을까 봐, 혹여나 주변 사람들이 인상이라도 찌푸릴까 봐. 조금 전에 한 아이의 울음소리에 어떤 어른이 역정을 내서였을지도 모른다. 울던 아기를 데리고 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소리를 지르듯이 대화를 해야만 했고,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동남아시아 출신의 이민자 같았다.
내가 설국으로 떠올리는, 어린 시절의 무궁화호는 영화 <설국열차>의 마지막 칸 정도는 아니었지만 더러웠고 시끄러웠다. 승객들은 일행끼리 좌석을 돌려 마주 보며 웃고 떠들며 무료한 시간을 버텨냈고, 심지어 기차에서 처음 본,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친분을 쌓아 올린 승객들끼리 좌석을 돌려 잠시나마 길동무가 되곤 했었다. 반면에 2026년의 KTX는 아주 깨끗하고 칸마다 1개의 창과 블라인드, 옷걸이까지 있으며 무선 충전기와 와이파이는 물론이고 화장실은 반딱반딱 광이 나고 좋은 냄새까지 풍긴다!
슈뢰딩거가 우려했던 지지대를 잃은 도덕적 명령의 방황(1950년대 제기한 문제 이긴 하다만)은 통합과 화합의 균열에 대한 우려였지만, 현시대의 도덕이란 타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겨누다가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향해 겨누는 하나의 총구가 되어버렸다. 우리 모두가 미세 플라스틱 따위의 어떤 생리적 원인으로 인내심의 역치가 낮아진 탓일까? 교차로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기득권 정당들의 혐오 표현과 어린이집 아이들의 낮잠을 깨우는 유치한 CM송을 덧붙인 선거 방송은 허용하는 우리가, 주변의 가장 약한 자들 앞에선 엄중한 독재자의 수하나 다름없는 비-인간적 재판관이 되어버린다.
지구는 뜨거워져가는데 우리는 차가워진다. 아이러니한 항상성이다. 아, 항상성이 아니라 열역학 제 2법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