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는 이름의 두 가지 편견

by RNJ
가방과 아들


여행 가방


"남자들은 좋겠다! 가방 하나 들고 다니면 되니?"


오랜 친구들이 봇짐 하나 들고 전국을 쏘다니던 나를 보자마자 인사보다 먼저 내뱉은 말이다. 이전 직장에서 1박 2일로 단체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남자 강사들의 숙소는 그야말로 무소유의 실천이었다. 잠바 주머니만 가득 채워 온 대여섯 명의 남자는 자신의 소중한 소유물을 하나씩 내어놓았고 샴푸 2개와 풋로션 1개, 드라이기 하나와 수건 3개를 나눠 사용하여 품앗이-오병이어의 기적을 실현시켰었다.


물건을 잘 사지 않는 사람이, 그다지 사고자 하는 것이 없는 여행길을 떠난다면 오는 짐과 가는 짐이 모두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두 남자는 백팩 하나에 일주일치 짐을 모두 쏟아부었다. 딱 하나, 부피가 제법 큰 아이의 기저귀나 물티슈가 문제였지만 여행지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기로 하였다. 카메라도 넣었고 심지어 책도 한 권 넣었다. 등에는 가방을, 가슴팍에는 아이를 올려두니 기막힌 균형이 이루어졌다.


계속해서 차단기가 내려가는 오래된 펜션은 창문을 열어놓으면 파도 소리가 생생히 들릴 정도로 바다에 들러 붙어 있었다. 가방을 방에다 던져놓고 아이와 함께 바다를 걸었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엉터리로 대강 지어서 알려주었다(타요 별자리, 뽀로로 운하 등등). 아이는 모래사장 위에 버려진 낡은 어선 위에 올라타려고 용을 썼고, 거센 바람 탓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해변엔 갈매기가 뿌려놓은 하얀 똥과 깃털이 뒤섞여 흩날렸다.


샘솟는 해방감! 우리는 내일까진 만날 일 없는 오랜 피로감을 황량하기 짝이 없는 해변 위에 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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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실과 기저귀 갈이대


'여성 보호자를 위하여 남성 보호자의 출입을 자제해 주세요.'


기차에서 내린 우리 부자는 역내 수유실 앞에서 멀뚱멀뚱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 화장실에 가보았지만 기저귀 갈이대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아파 주변 병원에 대한 평판을 찾고자 했을 때 고급(?) 정보가 죄다 맘카페에 있는 덕에 접근을 좌절당한 경험을, 아마 주양육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아빠라면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이다. 용기를 내어 수유실 문을 당겼, 문은 잠겨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나를 뒤흔들었던 고민은 무용한 것이었다.


아이가 지금의 반절을 살아냈을 때, 우리 가족은 간사이 지방을 여행하고 있었다. 여러 관광지에 가족-화장실이 존재했고 남자 화장실에서도 기저귀 갈이대를 종종 찾아볼 수 있었는데.... 엄마도 없이 아빠와 단 둘이 여행하고 있는 어린아이를 기이한 존재로 바라보던, 짧은 대화에 격려를 남기고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은 '엄마 없이 아이가 자요?'같은 질문 이상의 고단함이 우리 앞날에 산재함을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가방은 대합실에 던져두고 기저귀를 입에 물고 남자 화장실에서 아이와 아크로바틱 쇼를 벌일 때는 뭐랄까, 삶의 부조리함을 논하는 폐병쟁이 철학자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율신경계가 방광의 과도한 팽창을 뇌로 전달할 때, 아이를 젠다이 선반 위에 올려두고 후다닥 볼 일을 해치운다. 아이는 이런 나를 보며 낄낄 대며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편견 속에 감추어진 절반의 진실을 마주할 때마다 웃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란 웃음으로 넘쳐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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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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