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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밤토끼 Aug 08. 2023

우산에 유별난 사람

고장 난 우산 7년 만에 고친 이야기

내가 다니던 중학교 근처에는 백화점이 있었다. 더운 여름 하굣길에는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친구들과 백화점 1층을 한 바퀴 휘~ 도는 것이 일상이었다. '쌈지'가 잡화계를 휩쓸고 있던 시절, 검은색 원단에 진회색 파이핑이 둘러진 3단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2만 원 중후반의 가격이었던 쌈지의 3단 우산은 나의 첫 번째 '소소한 사치'였고, 취향을 반영한 첫 번째 생활용품 구입이기도 했다. 중학생이 3만 원에 가까운 우산을 샀으니 엄마와 친구의 핀잔이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 그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내가 그 우산을 정말 오래 사용했다는 기억은 선명히 남아있다.


한두 번은 쌈지에 A/S를 요청했고, 쌈지가 문을 닫은 후에는 동네 어딘가 우산을 고쳐주는 곳을 찾아 수리를 한 후 사용했다. 쌈지 우산과 이별을 고하게 된 것은 우산천이 접히는 부분이 낡아 우산 안으로 빗방물이 똑똑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산 하나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첫 번째 직장을 다니는 동안 사용했으니 나 자신이 조금 신통하기도 했다.


'기왕이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사서 '오래 사용하자'는 나의 소비스타일은 쌈지우산이 출발점이었던 듯하다. 쌈지우산을 보낸 뒤 totes(토스)라는 브랜드의 우산을 몇 차례 A/S와 수리 후 사용하다 역시나 우산 안으로 빗방물이 똑똑 떨어져 이별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유별난 우산 사랑을.


우산 잃어버리는 법이 없으니까!!

예쁜 것을 좋아하고 기왕이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구입해 오래 사용하자는 소비원칙은 우산에도 예외가 없었다.


우산을 잃어버리는 법이 없고, 몇 번을 고쳐서라도 끝까지 사용한다는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 핸드메이드 우산 브랜드 Londonundercover의 장우산을 직구했다. 왠지 핸드메이드 우산은 내가 죽을 때까지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야 본전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은 가격이기도 했다.


키가 작은 나에겐 제법 큰, 그리고 조금 무거운 우산을 비가 오는 날이면 신나게 들고나갔다. 그런데 웬걸?! 우산 보관이 미흡했는지 우산살의 가장 얇은 부분에 녹이 슬어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뚝 끊겨버렸다. 직구를 하는 바람에 국내에서는 브랜드 A/S가 불가능했고, 우산수리점 몇 곳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각 수리점이 갖고 있는 우산살 사이즈와는 맞지 않아 고칠 수가 없었다.




2015년에 고장 난 우산을 몇 번의 이사에도 버리지 않은 인내의 결과였을까. 얼마 전 드디어 우산수리가 가능한 곳을 알게 되었다.  


서울 방산시장에 위치한 연흥사. 사이즈에 맞는 우산살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고쳐준다고. 내 우산은 맞긴지 30분만에 수리가 끝났다. 어디가 교체된 것인지 티가 나지 않을 정도.


전화로 수리 가능여부를 확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연흥사를 방문했다. 우산을 고쳐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지만 작은 상점 안 벽에는 우산 수리를 부탁한 사람들의 사연 있는 메모지가 여러 장 붙어있었다. 어디서나 살 수 있고, 쉽게 잃어버리기도 하는 물건이 우산이다 보니 '나 너무 유난인가' 싶기도 했는데 전국 여기저기서 모여든 소중한 우산과 우산에 유별난 사람들을 보니 반가웠다.  


7년을 고장 난 상태로 있던 우산은 30분 만에 수리가 끝났다. 내 우산은 받침살 끝부분에 녹이 생겨 똑 끊겨버린 상태였다. 수리가 끝난 우산은 어디가 교체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끔히 수리되어 있었다.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산수리 장인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 억울할 정도.

 

집으로 돌아와 우산꼭지의 녹을 제거하고, 늘어난 우산띠도 교체해줬다. 말끔해진 우산을 보며 이것이 이렇게 뿌듯할 일인가 싶지만 과도하게 뿌듯해!


집으로 돌아와 지저분한 부분을 닦아주고, 우산띠 기능을 상실한 늘어난 고무줄도 교체했다. 말끔해진 우산을 보니 7년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우산수리와 고무줄 교체 비용은 새 우산 하나 살 정도의 가격이었지만 오랫동안 버리지 못한 우산에 대한 나의 집착과 애정에 비하면 적은 비용이었다.




그리고 연흥사로부터 '우산 잘 사용하는' 팁을 듣게 되었다.

바닥에 놓인 상태에서 우산을 살짝 벌려준  후 활짝 펼칠 것(수동 우산의 경우)

   - 오므려져 있던 우산살을 한 번에 펼치면 우산살에 충격이 간단다. 그러니 한 번에 펼치지 말라고.

우산짚기는 금지(장우산 해당)

  - 우산을 지팡이 사용하듯 땅바닥을 탁탁 짚으면 우산대에 충격이 가해진단다. 나무로 된 우산대는 쪼개질 수 있고 이런 경우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연흥사의 당부는 우산에 유별난 나에겐 아주 반가운 정보였다. 그 동안은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우산 말리기'만 알고 있었으니.


오랫동안 보관하면서 천색이 변해버렸지만 최근의 폭우에 걸 맞는 크고 단단한 우산이 생겼다. 장우산이니 잃어버릴 일은 더 만무하지 않을까?!


일상생활용품인 우산을 대하는 연흥사의 자세를 보며 관찰과 관리가 동반된 물건은 소모품 이상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올해 나에게 가장 큰 기쁨과 웃음을 준 것이 우산수리였으니 물건을 관찰하고 관리하는 행위는 '내 삶을 돌보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번에 수리한 우산은 쌈지우산 보다 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기왕이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소비해야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소비원칙을 고수하게 하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의 놀라운 폭우로부터도 나를 조금 더 지켜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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