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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17. 2024

천천히 스며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계절

연애

서민선 지음 / 232쪽 / 16,800원 / 머메이드



“결혼할 때 내 시어머니는 75세였다. 결혼 전 상견례 때 처음 뵈었던 그분은 키는 작지만 고집 있고 강단 있어 보였다. 예쁨받고 싶었다.”


예쁨받고 싶었다! 책방에 놓인 이 책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문장이다. 시누이 다섯인 7남매 집 막내며느리로 ‘낯선 여행길’을 떠났던 서른 살 새댁. 예쁨받고 싶었던 마음 뒤에는 ‘시댁 식구를 예뻐하리라!’ 이 마음이 이미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을까. 환대받고 싶은 이가 먼저 환대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것이 인생이다. 그 첫 마음은 수시로 좌절되고, 시험에 들고, 고꾸라져 어느새 ‘남의 편’ 세계와 내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서민선 작가의 데뷔작 『연애』는 그 지점에서 싹을 틔웠다. 여느 집처럼 갈등이 생겨났고, 서운한 감정이 쌓일 때마다 현명하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작가. 그래서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단다. 마음을 다스리고자 써온 이야기가 모이는 사이 어머니는 아흔을 넘어섰고, 고등학생 아들을 둔 며느리는 마흔여섯이 되었다. 쓰다 보니 어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는 작가에게 어머니는 ‘인연이 맺어준 사랑’이었고, 어머니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며느리의 오랜 꿈을 이뤄준 뮤즈가 되어주셨다.


부모와 자식은 어떤 인연일까?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저마다 인생의 다른 계절에서 만났지만, 우린 서로의 계절에서 함께 웃고 울고 또 배운다. 부모의 앞선 시간은 자식에겐 최고의 유산이다. 부모의 삶이 저물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부모가 정성을 다했을 그 ‘돌봄’을 자식이 이어간다. 애틋한 도돌이표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힘들어서 못 살겠어. 너무 아퍼…. 너무 아파서 그만 살고 싶으시다니, 나는 그저 어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눈물이 났지만, 나는 어머니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같이 울 수는 없었다. 왠지 나도 함께 울면, 어머니가 절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그리고 안아드렸다.” (101쪽) 


여기저기 아프고 약해진 어머니를 돌보던 며느리에게 어느 순간 찾아온 감정은 ‘애틋함’이었다. 책에서 이런 애틋함을 만날 때마다 난 한참을 쉬어 가야 했다.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서다. 이제 들을 수 없는 말들이 오갔던 순간이 있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이 많은 어머니의 진솔한 말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적어 내려간 2장 ‘영영 남을 어머니의 말들’은 읽는 내내 큰 위안이었다. 우리들의 엄마는 밥으로, 또 이렇게 말들로 기억되나 보다. 


요즘 손님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며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을 향한 연서예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려는 고백이기도 하고요.” 

오랫동안 있었던, 지금도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이어질 수많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 가운데 흔치 않을 이야기일 수 있다. 어쩌면 ‘내 이야기’라며 반색할 이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떤가. “천천히 스며들어 깨닫게 되는 마음, 그것은 사랑”이라니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스며들어볼 일이다. 가족 한 명 한 명의 계절마다 나는 어떻게 스며들 수 있을까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만한 인생이지 않을까.


이은형_뜻밖의 여행 책방지기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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