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점 이야기
요안나 올레흐 글 / 에드가르 봉크 그림 / 이지원 옮김 / 60쪽 / 21,000원 / 사계절
아이와 함께 쇼핑몰에 있는 장난감 가게에 갔다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큰 글씨로 표기된 ‘남아 장난감’ ‘여아 장난감’ 코너가 있었기 때문이다. 놀이를 할 때 성별이 중요한 것이 아닐 텐데. 어떻게 분류되어 있는지 살펴봤다. 남아 쪽에는 무기류, 무선조종 자동차, 공룡, 블록이 있었고, 여아 선반에 배치된 것은 아기 돌보기, 주방 놀이, 유아 화장품, 인형이었다.
유럽, 일본 등 해외에서는 아이들 장난감에 성별 제한을 두지 말자는 ‘젠더 프리’ 시대가 열린 지 오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인 것일까. 어떤 여자아이가 공룡을 갖고 싶어 할 때, 젠더 프리의 세상에 산다면 거리낌 없이 공룡을 품에 안을 테지만 한국에서는 ‘나는 여자니까 여아 쪽을 가봐야겠다’라고 선택을 변경할 수도 있다. 남자아이가 아기 돌보기 놀잇감을 만지작거릴 때, 어른들이 뒤에서 각각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아기를 잘 돌보는 것은 모두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일이지’ 혹은 ‘그런 건 여자애들이나 갖고 노는 거야. 제자리에 둬’ 어린이들이 설레고 행복해하는 공간에 이러한 심리적 제약이 있어도 되는 걸까. 성별로 인한 가르기는 장난감 고르기의 문제에서만 갸우뚱하면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 걸까.
“두 점이 살았어요. 하나는 분홍 하나는 파랑이에요. 사람들은 분홍 점이 귀엽고 얌전하다고 칭찬했고 파랑 점은 힘세고 용감하다고 칭찬했어요.”
『두 점 이야기』는 오랜 시간 다른 가치관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두 성별의 삶을 간결한 그림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이전 작품 『평등한 나라』에서 분홍 곰과 파랑 곰을 등장시킨 비유적 서사와 시각적 표현으로 구조적 성차별에 대해 잘 설명한 바 있다. 『두 점 이야기』는 『평등한 나라』보다 확실하고 직접적인 돌직구를 던지는 방법을 택했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통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테네는 고대 민주주의 투표의 시초 형태를 가졌지만 투표권이 성인 남성으로 제한적이었다. 투표하는 사람을 점으로 나타냈을 때 100개의 점 중 100개가 파랑 점이었다고 그림책은 말한다. 이렇게 세계에 존재해 왔던 성차별의 단면을 단순한 도형들을 조합하여 설명하고자 했다. 사용된 색도 분홍, 파랑, 검정, 회색, 흰색뿐으로 복잡하지 않다.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이미지는 이 책만의 특별한 부록을 더한 후에야 진실을 보여준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때로는 뾰족한 언어와 도구가 있어야 우리 삶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음을.
성숙한 시민이라면 꼭 알아야 할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을 응시하도록 돕는 시각적 설계. ‘민주인권그림책’ 시리즈 중 하나라 더욱 반갑다. 여기서 문제. 1970년 스위스에서 투표의 권리가 있는 사람 중 몇 퍼센트가 남성이었을까? 파랑 점은 100개 중 몇 개일까? 『두 점 이야기』를 열어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서현주_성인지감수성 성교육 활동가, 『오늘의 어린이책 1, 2, 3』 공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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