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다르게 배운다
이수인 지음 / 292쪽 / 17,800원 / 어크로스
“높은 확률로 지적장애, 행동 문제, 자폐의 위험이 있음.” 낯선 땅에서 낳은 첫아이. 이런 진단을 받았다면 보통 청천벽력이라는 말로 그 충격과 좌절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 책에는 비탄도 오열도 없다. 신생아 집중치료실 인큐베이터 옆에서 사전을 찾아가며 희귀질환에 대한 논문을 읽던 엄마는 의사와 대화를 나누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게임 같은 교육용 앱을 만들어보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토도수학이며 에누마라는 회사다. 토도수학은 20개국 애플 앱스토어에서 교육 부문 1위에 올랐고, 1,000곳이 넘는 미국 초등학교에서 학습 도구로 채택하는 등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는 앱 제작, 창업과 회사의 성장 과정, 함께 일한 사람들의 면면이 촘촘하고 생생하게 담겨있다.
둘째 아이는 토도수학 앱으로 하나, 둘, 셋 수 세기를 배우고 셈하기를 익혔다. 토도수학을 만든 에누마 이수인 대표의 책이라니 앙증맞던 네다섯 살 때 아이 모습과 깔끔하고 귀여운 토도수학 앱 화면이 나란히 떠올랐다.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 참 귀했다. 아이는 매일매일 아니 매 순간 새로이 배우며 자란다. 성장의 과정은 경이롭다. 부모가 된 덕에 한 몸처럼 아이 곁에서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십여 년이 흘러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토도수학은 그리운 마음으로 떠올려도 현실은 갑갑하다. 지금 온 세상의 부모들은 스마트폰을 든 아이들과 대치 상태다. 자기 자신도 손에 든 폰을 내려놓지 못하니 이율배반인 상황에서 폰에 빠진 아이의 생활을 걱정한다. 얼마 전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청소년인 대규모 딥페이크 사건도 있었다. 초등학교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디지털은 유용하나 지나치게 매력이 넘쳐서 문제다. 빠져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저자의 말처럼 디지털 네이티브, AI 네이티브로 자라는 아이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미리 겁먹고 두려워서 숨어버린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 이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헤쳐갈 배움의 태도를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 이 책 자체가 ‘이수인’이란 사람의 배움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유전 증후군을 가진 아이의 엄마이자 실리콘밸리의 CEO로 처음 겪는 일, 잘 모르는 것들 앞에서 그가 도전하고 배우며 나아간 과정은 차분하면서도 거침없다. 어렵고 괴로운 일들은 많았겠지만 휘둘리거나 징징대지 않고 자신만의 경쾌한 리듬으로 헤쳐온 것이 느껴진다.
원고에 대해 남편이 ‘반성문’이냐고 했다는데 정말 책에는 수많은 실수, 빗나간 예측, 잘못된 결정들이 가감 없이 적혀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 잘못을 잘 인정하는 사람, 거기에서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 무엇보다 계속 배우는 사람의 성장기를 기분 좋게 읽었다. 책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 다르게 배운다. 배움의 속도도 방식도 다르다. 모두가 스스로의 배움을 제대로 알고 각자에게 맞는 도구와 방식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만들어져서 배움에 소외되는 이가 없을 때까지 저자의 도전이 계속되길 바란다.
덧붙여 에누마는 2019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대회에서 우승했다. 상금 1,500만 달러가 걸린 아동 문맹 퇴치 대회다. 대회 기간은 무려 5년.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이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비교될 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IT 강국 한국의 힘은 빠른 인터넷 속도가 아니라 눈앞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패기에 있다.
이소영_책방 마그앤그래 대표, 『화가의 친구들』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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