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08. 2019
꽃나무들 / 조태일
헐벗을 날이 오리라
바람부는 날이 오리라
그리하여 잠시 침묵할 날이 오리라.
겨우내
떨리는 몸 웅크리며
치렁치렁한 머리칼도 잘리고
얼어붙은 하늘 향해
볼 낮이 없어, 피할 길이 없어
말없이 그저 꼿꼿이 서서
떨며 흔들리리라.
푸름을 푸름을 모조리 들이마시며
터지는 여름을 향해
우람한 꽃망울을 준비하리라.
너희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너희들은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고
너희들은 형님을 형님이라 부르고
너희들은 누나를 누나라 부르고
동생을 동생이라고 처음 부르던
이땅을 부둥켜 안고,
결코 이 겨울을 피하지 않으리라
결코 이땅을 피하지 않으리라.
이 곳 말고 갈 수 있는 땅이
어디 있다더냐.
헐벗을 날이 오더라도
떨 날이 오더라도
침묵할 날이 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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