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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Jan 10. 2024

화롯불과 홍시

홍시를 보니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창문이 열리더니  홍시가 훅 들어온다.  이게 뭐지? 알고 보니  언니가 두고 간 것이다.

베란다로 통하는 부엌문으로 가끔 우렁각시처럼 먹을 것을 두고 간다

시골 사는 조카가 보내준 장두감이  홍시가 되자 부엌 창문 열고 두고 간 것이다.

살짝 얼어서 아이스크림처럼 차고 달달한 홍시를 먹고 나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사과가 귀하던 시절 다행히 우리 마을은 감나무가 제법  있었다.

우리 집 마루에서 바로 보이는 감나무 밭에는 여러 종류의 감이 있었다.

뾰쪽 감, 넓적 감, 대봉, 물감 등 종류가 많았다. 그중에 제일 값이 많이 나가는 게 대봉이고 넓적 감이다. 봄이 되면 앙상한 나무 가지에 연한 나뭇잎이 삐죽삐죽 나오기 시작했다.

초가지붕 위로 앙상하게 뻗었던 나무 가지에도 연두 잎이 수를 놓았다.

잎이 조금씩 넓어지면 감꽃이 연한 주황색으로 피었다. 감꽃이 떨어지면 떱떱한 맛이지만 심심풀이 먹거리가 되었다. 바람이 불어 감꽃이 많이 진 날에는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녔다. 여름이 되면 벌써 감이 굵어졌다. 가끔 벌레 묵은 감 떨어져서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개미가 줄을 서서 떼로 몰려와서 감 주위를 맴돌았다. 며칠 지나면 땡감도 익어서 벌써 단 맛이 돌았다. 그 단 맛에 개미가 줄을 서서 온 것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아니지만 ‘사라호’라는 태풍이 우리나라를 강타하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빗물이 찬 빈 항아리에 감이 떨어졌다. 며칠 지난 후  물속에서 우려진 감을 주어 먹고 오빠는 탈이 났다. 먹으면 토하고 배속에서 창자가 꿈틀거리면 자지러 지게 울어댔다고 한다. 며칠 고생하다 도시로 나가 대학병원에 입원시켰다. 수술 마친 의사 선생님께서  까만색 공을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랍게도 감이 뭉쳐서  창자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갈라서 보여주는데 바늘귀만큼 주황색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간만의 차이로 살아나서 기적이라고 했다.

엄마는 백세가 되었을 때도 그날이 마치 어제인 듯 하마터면 니 오빠를 그때 잊을 뻔 봤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감은 풍요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가을이 되면 주렁주렁 열린 감이 학자금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했다.

토요일만 되면  절구통 위에 걸려있는 감나무 밭 열쇠를  들고 가면 배불리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봄에는 딸기 조금 지나면 울타리로 쳐놓은 곳에서 주황색으로 산딸기가 열렸다.

여름에는 감나무가 햇볕을 막아  까맣게 익지 않았지만 포도가 제법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렸다. 여름이 무르익어가면 감도 제법 커가고 벌써 벌레가 먹은 것들은 홍시가 되었다.

그때부터 벌레 먹은 곳만 떼어내고 먹어도 단맛이 다.   

   



나락 가실 끝내고 그때부터 감 따기 시작이다. 높은 곳에 매달린 감은 장대 끝을 벌려서 가지를 꺾기도 했다. 일하는 삼촌들은 망태 하나씩 허리에 차고 원숭이처럼 올라갔다. 탐스런 감을 뚝 뚝 따서 망태에 가득 차면  새끼줄로 매달아서 내려 보내주었다.

미리 홍시가 된 감은 우리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흠집이 없는 홍시는 시장에 내다 팔고, 단단한 감은 공판장으로 나갔다. 초가집 지붕 위에도 주렁주렁 열린 감이 꽃처럼 피었다.

서리 두어 번 맞고 나면 들 감을 땄다.

수분이 많은 감이라 썩기 쉬웠다.

 오랫동안 두고 먹기 위해 곶감으로 말리기도 했다. 꼬챙이에 꽃아서 말린 감이라고 해서 '곶감'이라 불렀고. 감을 쪼개서 말리는 '감고지' 즉 '감말랭이'도 있었다. 지금처럼 약이 흔하지 않았던 때라 가끔 아이들이 설사하면 '곶감' 다려서 먹였다. 타닌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설사를 멈추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밤 새 눈이 내려 집집마다 흰 눈을 가득이고 있는 지붕 위에 참새가 날아갔다. 눈이 내리고 난 후 매서운 추위가 찾아왔다. 이때가 신나는 날이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냇가도 흰 눈이 덮이고 얼음까지 얼었다. 창의력이 뛰어난 시골 남학생들은 판자로 자작 스케이트를 만들어서 겨울 내내 즐겼다. 오빠도 만들기 선수이다. 오백 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거북선을  보고 나무 도시락과 이쑤시개를 이용해서 만들어냈다. 그러니 스케이트쯤은 얼마나 잘 만들었겠는가?  엉덩 방아를 찧어가며 옷이 젖는 줄도 모르게 스케이트를 탔다.

때가 돼서 물기 가득한 스케이트를 들고 집으로 오는 중에 떨어진 물방울이 고드름이 되다. 시린 손 호호 불며  동네 할머니 사랑방이 된 안방문을 열어젖혔다.

곰방대로 쑤셔 넣은 ‘봉초’를 태운 연기가 굴뚝처럼 쏟아져 나왔다. 방 한가운데 보물처럼 놓인 화로에서는 홍시가 놋그릇에서 짐을 내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제사 때 쓰려고 시렁에 올려 둔 감이 홍시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추운 날씨에 얼어버리자  혀를 몇 번이고 차셨다. 제사상에도 놓을 수 없으니 우리들 차지가 된 것이다.




하루 종일 비가 오다 눈이 내렸다.

오늘 같은 날은 화롯불위에 올려진 홍시가 짐을 내던 날이 유난히 그립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 때문에 울먹일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잘 부르지 못한 나훈아의 ‘홍시’를 흥얼거려 본다.

엄마 기일이 이번주 토요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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