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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Feb 06. 2024

평문이 밭 가는 길

어머니는 가셨어도 메밀묵은 남았네

     

강원도 사시는 사돈 어르신께서 도토리 묵 가루를 보내주셨다. 가끔 쑤어먹는 도토리 가루는  마른 상태에 따라 물과 도토리 가루 혼합하는 비율이 다르다.  종이컵으로 도토리 묵 가루 다섯 개 물 네 컵 혼합하 거의 농도가 맞았다.  


주걱으로 위아래물이 지지 않도록 잘 저어주기만 하면 된다. 물이 적으면 농도가 빡빡해서 주걱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때 물을 부어 주면서 누그름하게 될 때까지 쑤면 된다.

뽀글 짝  뽀글 짝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빗방울  쏟아진 것처럼 파장이 솥단지 안에서 일었다. 알맞게 끓여진 묵을 사각 용기에 식용유 살짝 붓고 퍼 담았다. 한 밤 자고 일어나면 탱글 탱글하고 야들 야들하게 굳어있었다. 도토리 묵가루 만드는 과정에서 무슨 차이라 있는 것일까? 썰어놓은 도토리묵이 몽클몽클대자 군침이 돌았다.  양념장을 찍어 먼저 맛을 보니 쌉싸름한 맛이 혀끝에서 감돌았다. 바로 도토리 묵은 이 맛이다! 지막 한 점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전라도 지방에서도 메밀묵을 많이 쑤어서 먹었다.

오일장 가신 엄마가 해질 무렵까지 오지 않자 마중 나갔다. 기다리다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여름에 파종한 메밀이 어느새 꽃망울이 터져 있었다. 섬진강 언덕에서 바라보는 메밀꽃이 처음 꽃으로 보다.

이효석 씨의 표현처럼 '소금을 뿌린 듯이' 지천에 펼쳐져 있었다.

진한 들깻잎 주섬주섬 따서 코끝에 살랑거리다가 메밀밭으로 달려가서 꽃잎을 땄다.

섬진강 가까이에 있는 평문이 밭에는 봉평 못지않게  메밀을 많이 심었다.

꽃이 지고 까맣게 씨가 야물어질 때 거두어서 햇볕에 말렸다가 서늘한 도장방에 보관했다.

제사, 설이 돌아올 때 항상 메밀묵을 쑤었다.

메밀을 깨끗이 씻어서 물을 붓고 확독에서 보리쌀 가는 것처럼 갈았다.

껍질이 벗겨지고 하얀 액체가  나오기 시작하면 체에 바쳐서 껍질을 걸러냈다.

드문 드문 껍질이 갈려서 거뭇거뭇하게 보인 액체를 솥에 붓고 주걱으로 저어가며 묵을 쑤기 시작했다. 무쇠 솥에 거의 찰랑거린 묵은 혼자 쑤기 힘들었다. 이때는 할머니께서 부지깽이로 타고 있는 나무를 살살 저어가며 불을 땠다. 누구름 하게 다 끓여지면 장독 뚜껑에 퍼 담았다. 솥단지에 붙어 있는 아직 굳지 않는 묵은 퍼서 할머니 밥상에 올랐다.

어린 시절에는 미끈둥한 메밀묵을 무슨 맛으로  어른들이 좋아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 들자 어 시절 묵을 쑤느라 아침부터 확독에서 메밀을 갈던 때가 도토리 묵을 쑬 때마다 생각난다. 메밀묵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한 가지씩 가지고 있다.

도시와 시골의 차이점은 있지만~

옛날 도시에서는 겨울철 밤이 깊어 갈 때 골목마다 누비며 “메밀묵 사려”  외치던 고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시골에서는 사랑방에서 가마니 짜거나 새끼 꼬면서 제사 지내는 집에 단자 갔다.

우리 동네는 거의 뉘 집이 오늘 제사라는 것을 다 알았다. 동네 청년들이 모여서 제사가 끝날 시간쯤에  “단자 왔소”  큰소리로 외치면  제사 음식을 골고루 담아서 주었다.

 그 음식을 단자음식이라 불렀으며 사랑방에 모여서 떡과 전, 메밀묵을  나누어 먹곤 했다.

설음식에도 빠질 수 없는 게 메밀묵이다.



이제는 평문이 밭도 묵혀진 땅이 많아  명절에도 메밀묵 맛볼 기회가 없다.

그런데 코로나로 발이 꽁꽁 묶이기 전  설이 돌아오자 막내 오빠 집으로 내려갔다. 마침  새돔 당숙모님께서 어머니 드리라고 음식을 가져오셨다. 상보를 여는 순간  다른 음식보다 메밀묵  먼저 눈에 띄었다.

양념장을 만들자마자 식구들이 한 자리에 앉아서 다 먹었다. 입이 까다로워서 어린 시절 손도 대지 않았던 메밀묵을 바쁘게 떠가는 모습을 본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아이가 참말로 요상흐다 어찌 니가 메밀묵을 다 묵냐?”  




이제  묵을 쑤시던 어머니는 가시고 소금을 뿌려놓은 듯 메밀꽃이 피던 평문이 밭도 사라졌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한번 가보고 싶었던 봉평이다.

어찌 알았을까?

자녀들이 이번 설에는  여행을 가자고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댁이나 친정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비록 지금 메밀꽃은 볼 수 없지만 그곳에 가면 메밀묵은 맛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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