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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Mar 21. 2024

시어머니 되고 보니 (다섯 번째)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을까?


가오리 네가 올 때가 됐는디 안 온다. 아침밥을 드시다 말고 시어머니께서 대뜸 말씀하셨다.

가오리네가 누구래요? 응 이맘때쯤 여수 돌산에서 서대랑 가오리 말려서 오시는 분이 계셔 형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시어머니는 아침 밥상 물리자마자 점심 준비를 하셨다.

안동네 미나리꽝에  그미나리가

나불나불 올라왔더라

'미나리가 몸에 좋단디' 사가지고 오마하고 대문을 나가셨다.

아침 설거지 마치마자 벌써  여린 미나리를 한 소쿠리 옆에 차고 들어오셨다.

아이! 연탄 불 위에 물 올려놔라 점심에 오징어 데치고 미나리랑  무쳐야겠다. 어머니는 미나리를 한 움큼 잡아서 대충 훌훌 털면서 어찌께 연한지 다듬을 것도 없다 하셨다. 수도  손잡이 잡고  펌프질 하자 콸콸 쏟아진 이 시원하게 쏟아졌다. 

씻을 것도 없다마는 거마리가 있을랑가 모르것다 하시며 부지런히 손놀림 하자 주름진 손에 물결이 하얗게 부서졌다.



펄펄 끓는 물에 미나리를 살짝 데쳤다. 미리 삶아 놓은 오징어랑 고추장, 고춧가루, 식초, 설탕, 마늘 넣고 버물려서 마지막 통깨 뿌려서 내놓은 미나리 무침이 푸짐했다.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가까운 초등학교에서는 음악소리가 들렸다. 바삐 점심 밥상을 차리자 시숙님과 조카들이 학교  점심시간에 맞추어 들어왔다. 농협에서 근무하는 형님도 뒤따라 들어오셨다.

 한상에 둘러서 식사하고 있는데 독아집 할매! 잘 계셨능게라이 하시며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얼굴이 반쯤 가린 채 들어오시는 분이 계셨다.

양조장을 옛날 어르신들은 독아라고 불렀다.

 

우리 시어머니는 앞일을 아시는 분일까? 아침에 이야기하던 가오리댁이 오신 것이다.  아이고! 가오리네 올봄에는 못 볼 줄 알았드만 어서 오게! 오서 오게!  하시며 반가이 맞이하셨다. 나는 가오리 댁이 친척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봄만 되면 마른 가오리, 서대, 멸치, 미역 등을 가져와서 이 동네 저 동네 다니시며 팔로 다니신 분이셨다. 물건이 다 팔릴 때까지 우리 집에 짐을 풀고 어머니랑 한방에 주무신 지가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었단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셨던 어머니께서는 누구라도 오시면 같은 방에서 주무셨다.


그런데 시골도 점점 광주리 장사가 사라져 가던 때인데 가오리 댁은 봄만 되면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생선을 팔다 보니  가오리댁이라고 택호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해년마다 봄만 되면 서너 차례 큰 짐을 머리에 이고 오셨다.

생선 팔고 나면 현금을 주는 집도 있었지만 주로 쌀, 콩, 깨 등이었다. 곡물을 차곡차곡 모았다가 한 보따리 만들어서 머리에 이고 다시 돌산으로 가셨다. 며칠 후 다시  부각 부칠 자반을 가져오셨다.

시어머니께서는 큰 살림을 하셨던 분이라 가오리 댁이 처음 가져온 마른 생선은 항상 한꺼번에 다 구매했다. 쪄서 먹으면 가시가 커서 살 발라 먹기가 좋았고 비린내가 별로 나지 않고 맛이 담백했다. 양념장을 만들어서 찍어 먹어도 좋았다.  

    


몇 칠전 언니가 마른 생선을 가져왔다. 그중에 서대가 몇 마리 들어 있었다.

서대를 보자  이맘때쯤 봄기운이 가득 찼던  시댁 마당이 눈에 어른거린다. 백목련이 먼저 피고 나중에 잣 목련이 피었다. 바람에 목련꽃잎이 댓돌에 떨어졌다.

꽃잎을 밀어낸 자리에는 파란 잎이 올라왔다. 서향은 향기가 멀리 퍼져 우리 집 골목에 들어서기만 해도 그 향기에 취했다. 식당 방 앞에 건정하게 서있는 라일락도 오밀조밀한 꽃망울이 터져 향기가 그득했다. 봄이 되어 꽃이 피기 시작하면  바로 앞에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우리 집으로 꽃구경 오셨다.


뭐가 그리 바쁘셨는지 육십이 되자마 서둘러 이 세상을 떠난 시숙님께서 몇십 년 동안 손수 가꾸었던 정원이었다. 담벼락에 머위순도 파릇파릇 올라와 이맘때쯤에는  데쳐서 된장에 무쳐 먹으면 쓴 기운이 입안을 감돌아 잃었던 밥 맛이 다시 돌았다.

집 뒤뜰에도 작약과 목단이 줄지어 있었다. 안방 뒷문을 열면 텃밭에 심어놓은 파란 마늘잎과 조화를 이루며 작약과 목단이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아들, 며느리랑 함께 저녁을 먹었다.

흔하지 않은 생선을 보자 비린내도 안 나고 맛있네 엄마! 무슨 생선이래요?

할머니께서 좋아하셨던 '서대'라고 해

주로 가을에 서해안에서 많이 잡힌다고 하드라 박대하고도 좀 비슷하지

    

시어머님은 자식 사랑이 남달랐다.

초 봄에 추위를 뚫고 나온 돌미나리

건강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 새벽에 나가셔서

체취해 오셨다. 깨끗하게 씻어서 확독에서

찧어  즙을 내어 시숙님께 드렸다.


섬으로 전근 가신 시숙님이 걸려서 항상 별미를 드실 때는 섬인디 맛난 것이 있을랑가 모르것다 먹기 좋아하는 아들 셋 데리고 어찌 살고 있는지 혀를 끌끌 차셨다.

그때마다 섬에는 생선도 많이 나고 먹거리가 더 풍성해요 했지만 항상 걸려하셨다.

시집간 딸도 사위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이웃들에게 자랑을 자주 하셨다.

그런데 고명딸이 큰 며느리가 되어서 말끝을 흐리고 혀를 끌끌 차셨다.

저희 부부는 사업에 실패했으니 날마다 형님들 앞에서 자들은 워찌게 살끄나 걱정이 대단하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어머니만의 방법으로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셨다.

이 아들 걱정을 내 눈앞에 있는 아들이나 며느리들에게 하소연하셨다.

그러다 보니 어느 자식만 편애한다는 오해가 있었다.  

나도 아들이 오면 딸 걱정을 하고 딸 앞에서는 아들 걱정을 하며 넋두리를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앗차! 하며 현재 내 눈앞에 있는 자녀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을까? 옛 속담이 “시어머니 되고 보니”  새삼 가슴에 와서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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