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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Apr 10. 2024

모자 이야기  (고흥댁 이야기 여덟번째)

드디어 엄마가 모자를 썼다.


엄마! 이제 날씨가 추워져서 모자 쓰고 다니셔야 해

핑생 나는 모자 써본 적이 없다 부끄럭게 어쩌깨 모자 쓰고 다닌다냐이

안 쓸란다 동짓달 되면 섬진강 모래바람도 얼마나 쌔냐 그래도 핑생 모자 한번 안 써 받다 별일 있을 라디야 아침마다 주간보호 센터 다니시는 엄마 모자 씌우는 게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모자를 좋아하셨다.

시골에서 마음에 드는 모자가 없자 아들에게 연락 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모자를 사기 위해 이곳저곳 다니시다 백화점에 가서 구입했다.

양복 한 벌보다 비싼 모자를 사서 드리자 흡족해하셨다.

그 모자를 천국 가실 때까지 즐겨 쓰셨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모자를 즐겨 쓰는 편이다.

그래서 지금도 모자 파는 가게를 지나칠 때면 꼭 한 번씩 써보곤 한다.

같은 디자인이어도 색깔이 다르면 구매해서 적절하게 옷에 맞추어 쓰고 다닌다.

좋은 점 일단 햇빛 가리개로 좋다.

겨울에는 머리를 따뜻하게 보호해 주어서 좋다.

바쁠 때 외출할 일이 있으면 머리 신경 쓰지 않고 모자만 눌러쓰면 된다.

한편으로  멋을 내기에도 좋다.

다양하게 활용도가 많은 모자를 엄마는 왜 쓰지 않으려고 할까?

종손 집 맏며느리로 살면서 남들이 다하는 파마도 못하고 쪽을 지고 비녀 꽂고 살았던 분이시다. 칠십 세가 다 되어서 어린애 한 주먹도 안 된 쪽 찐 머리를 자르고 처음으로 파마를 하셨다. 달라진 자기 모습이 부끄러워서 거울을 보지 못했다.

 



주간 보호 센터에 가실 때도 화장대 앞에서 손녀딸이랑 같이 얼굴을 매만졌다.

나는 거울을 보면 지금도 부끄럽다.

근디 니기들은 어찌께 거울 봄서 화장 흐고 이리저리 얼굴을 치켜뜨고 그러냐 하셨다.

 그 속에는 부러움도 있었던 것 같다. 시집올 때 사 온 화장품이 막내인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화장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천국 가시기 전 우리 집에서 사 년 동안 함께 살았다.

아침마다 로션 바르시며 나는 시집와서 구루므 한번 제대로 못 발랐다.

니그 상할매가 부엌에서 음식 만진 예펜네들이  사향 냄새를 풍기면 음식 맛 배린다고 못 바르게 했다.

날마다 녹음기 틀어놓듯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엄마는 자기 얼굴 가꾸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는지 필자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화장품을 사주셨다. 1980년대만 해도 집집마다 다니시며 방문판매하던 화장품 외판원이 있었다. 항상 우리 집을 오시던 분에게 아모레 화장품 한 세트를 월부로 사 주신 게 생각났다. 엄마가 시집올 때 가져온  화장품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몇 십 년 보관했던 것은 그래도 미련이 있었을 텐데 ~~거울 보는 것이 부끄러운 엄마는 화장품 바르는 것도 어색해서 아침마다 괜찮다는 동의를 구하듯 말씀하셨다. 맞장구라도 쳐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무심한 딸이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겨울이 되자 주간 보호 센터에서 꼭 모자를 착용하라는 안내문 받았다.

몇 칠 동안 모자를 쓰지 않고 다니시자 차량 도우미 요양 선생님께서 꼭 모자 씌워서 보내시라고 당부하셨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모자 쓰는 것이 큰 보약이라고 한다. 모자 쓰는 것이 '밥 솥뚜껑' 과도 같아  건강관리에 유용하다는 정보를 접하자 더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남편이 퇴근길에 털실로 된 브라운, 옅은 주황색 모자를 사 왔다. 선물로 받은 밍크 모자까지 세 개나 되었다.

그런데 엄마는 모자 쓰는 게 어색해서 아침마다 우리랑 실랑이가 일어났다.




마침 부산 사시는 오빠가 올라오셨다.

엄마가 부끄러워서 모자를 쓰지 않으려는 것을 아는  터라 아침 드시고 센터 가시는 길 배웅하러 나가셨다.

엄마! 바람도 불고 눈도 희끗 희끗 내리고 엄청 춥네 하면서 모자를 같이 쓰고 나갔다.

어머니! 저도 나이가 드니 머리가 추우면 어쩔 땐 머리도 띵하니 아프고 그래요.

모자 쓰니 좋드만요 저도 태린이 에미도 다 같이 모자 쓰고 다닙니다.

어머니도 겨울에는 모자 쓰시는 게 좋아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 이 모자 이쁘네 하고 얼른 씌어드렸다. 역시 아들 말이 최고다! 괜찮다고 사양하시더니 모자 쓰니 참 예쁘고 어울리요 오빠가 칭찬해 드렸다. 새끼들이 봉께 이쁘제 늙은 사람들이 뭣이 그렇게 이쁘다냐 하셨다. 그래도 엄마는 그때부터 모자를 잘 쓰고 다니셨다.

때로는 이 색깔보다 저 색깔이 안 곱냐? 하시며 바꾸기도 하셨다.

  



니그 아부지는 멋쟁이어서 모자도 잘 쓰고 다니드라만은 나는 부끄러서 핑생 못썼다

근디 니그 집 와서 산 게 모자도 쓰고 좋다 하셨다.

변화하고 싶은 마음은 컸어도 종갓집 며느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줄도 알고 사셨던 분이셨다.

로션 한번 마음 놓고 바르지 못했던 17살 어린 소녀가 백세가 다 되어서야 겨우 자유롭게 로션 바르고 모자도 쓰셨다.




나도 엄마처럼 틀에 갇혀서 변화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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