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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May 01. 2024

날마다 죽 쑤는 여자

햇수로 이 년째 요양 3등급을 받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섬기고 있다.

할머니께서 삼 개월 간격으로 통증 주사 맞으며  겨우 집안에서 기본적인 생활만 하신다.

할아버지는 걷는데 아무 지장 없지만 노인성 우울증을 앓고 계신다. 

식탁에서 할머님과 함께 식사하셨는데

작년 초겨울부터 방 안에서 혼자 드신다.

전혀 바깥출입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침대에서 T.V이 채널만 돌리시며 지내신다.

육신은 할머니께서 더 불편하셔도 할아버지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사신다.

점점 드시는 음식 가짓수가 줄어들수록  애간장이 타신다.

그래서 입맛 없는 할아버지 위  매일 죽을  있다.




고등학교 겨울방학 때였다.

아버지께서 심한 감기에  걸리셨다.

하필 같이 사시던 작은 어머님께서 서울  출타 중이셨는데 아버지께서 앓아 누우 신 것이다.  어차피 대결자도 없으니 당연히 내가 뽑다.  아버지랑 생활하는 게 불편해서 까이 살고 있는 육촌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와중에 아버지께서 독한 감기가 찾아온 것이다. 매끼 부실한 반찬으로 상을 차리자 당숙모님께서 흑임자 죽을 끓여 오셨다.

아버지는 혀에 착 감기듯 꼬숩고  맛있는  흑임자 죽도 잘 드시지 않았다.

우리는 옳다구나 하고 상에서 그대로 물러나온 흑임자 죽을 폭풍 흡입으로 먹어 치웠다. 철이 없었다.

 잠시 후에 안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께서  먹어치운 흑임자죽을 이때서야 찾는 게 아닌가?

발등에 불이 떨어이리저리 뛰며 겨우 참깨를 찾았다.

반은 수돗물에 흘러 보내고 겨우 조리로 건진 깨를 확독에 붓고 폿로 갈기 시작했다.

곱게 갈린 깨를 얼개미에 붓자 꼬내를 풍기며 베이지 색 액체가 쏟아졌다.

전기밥솥붓고  주걱으로 젓기 시작했만 아무리 끓여도 죽이 되지 않고 멀건 국물만 떠 다녔다.

왜 그럴까? 한 숟갈씩 떠서 맛만 보다가

결국 죽이 되지 않았다.

우리들 퍼고 깨죽을 다시 끓인 것을 알아차린 아버지께서 기다리셨나 보다.

시간이 지나도 죽이 대령을 하지 않으니

안방문을 열고  한마디 하셨다.

 " 니기들 쌀 넣어서  죽 끓이고 있냐"?

쌀이 들어가야 서로 어우러져 죽이 되는데 처음 도전했던 깨죽은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그 경험으로 깨죽도 후에는 잘 끓이게 되었으니  아버지 교육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어머니는 열일곱 살 되던 해  종갓집

큰 며느리로  시집오셔서 손 끝이 마를새 없이 일만 하고 사셨다.

아버지는 같이 살지  않았어도 가끔 바쁜 농사철에 과수원과 논을  둘러보러 오셨다.

그때마다 농번기철에도 부엌에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 아버지께서 버릇 가르치려고 작은엄마만 출타하시면 나를 불렀다.

 없이 밥상 차려오면 미역국 한번 끓여보라고 주문하셨다.

지금은 미역이 가공되어 잘 나오지만 그때는 몇 번이고 바드득 바드득 씻어서 염기와 함께 미 끈덕거리는 것도 빼내야 했다.

그런데 잘 못 씻어서 미역국 끓였더니 국이 아니라 죽이 되었다.

겨울철  동치미를  옆에 사시는 이웃사촌 이모님이 곱게 채를 쳐 주셔도 기어이 나에게  썰어 보라고 하셨다.

장작개비보다 좀 작게 썰어놓은 동치미를

아무 말없이  집어 드셨다.

그때부터 채 썰기에 도전해서 칼질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시집가기 전까지 될 수 있는 한 딸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시집가면 죽을 때까지 해야 될 일이라고



 

그 대신  할머니께서 칭찬과 격려로 자잘한 일을 학이 되면 시키셨다. 

여름에는 팥이나 콩을 할머니께서 미리  삶아 두었다. 도장방에서 큼지막한 양푼에 밀가루를  가득 퍼서 담고 한마디 하셨다. 나중에 일은 안 해도 할 줄 알아야 남도 부릴 줄 안다. 그러고는 밀가루 반죽을 시키셨다.

손에 송글 송글 묻은 밀가루 반죽을  물에 적셔 조물거리다 보면 매끈매끈한  덩어리가 되었다. 치댈수록 감촉도 좋고 하고 난 뒤 성취감이 좋았다.

지금 생각하니 칼국수 장사를 했으면 잘했을 것 같다.  

할머니 칭찬에 힘입어 팥죽, 호박죽, 흰 죽, 콩죽, 수제비 등 어느덧 장금이는 못돼도

잘 끓이게 되었다.




지금 옛날에 배웠던 실력으로 요양보호사로 보람 있게 일하고 있다. 출근하자마자 앞치마를 두르고 오늘 할 일을 먼저 할머님께 묻는다. 죽 드시기 시작한 날 깨죽을 먼저  끓여 드렸다. 볶은 깨가 오래되어서 다시 한번 프라이팬에 살짝 볶았다. 한 컵 정도 미리 불려준 쌀 믹서기에 곱게 갈고 난 후 깨도 갈았다. 항상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눈대중으로 대충 하는 편. 정확하게 물 몇 리터 쌀, 깨 몇 컵 소금 얼마 메모한 후 끓여야지 하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어느 요리프로에 김수미 씨가 엄마들이 요리자격증 따서 식구들 밥 멕였나?

다들 눈대중으로 해서 멕였지 하는 소리에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름 주부 경력 사십 년 차 가까이 되다 보니 대충 눈대중이 맞다.

깨죽 끓이면서 조금 되직하면 물을 조금씩 보충해서 끓이다가 주걱이 들어가는 느낌이 손끝에서 잡힌다. 그때 소금 간하고 몇 번 저어주면 맛있는 깨죽이 된다.

첫 번째 깨죽 끓이고 나서 나름 뿌듯한 마음으로 메추리알로 만든  장조림과 함께 드렸다.  그런데 의외로 맛있게 드시지 않고 남겨서 나왔다. 으쓱했던 어깨가 조금 내려 앉잤다.




다음날 마침 단 호박이 있어서 호박죽을 끓이기로 했다. 미리 한 컵 분량의 찹쌀을 물에 불러두고 단 호박을 삶았다. 중간중간 젓가락으로 어느 정도 익었는지 나름 진단을 했다. 약간 설익은 듯할 때 꺼내서 껍질을 벗기면 훨씬 일이 수월하다. 껍질 벗긴 호박을 네 덩어리로 소분해서 나머지 세 개는 냉동 보관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 끓일 량만 다시 푹 끓인 다음 믹서기에 갈아놓은 찹쌀을 넣었다. 물을 부어주면서 농도를 맞추고 계속 눌지 않도록 저어 주면 된다.

 연세가 드실수록 달고 짭짤한 것을 좋아하는데 의외로 할아버지는 달거나 짠 것은 싫어하셨다.

달지 않게 최대한 호박 자체  단맛이 나도록 설탕은 적게 넣고 굵은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다. 호박죽이 개나리 꽃처럼 노랗게  색깔곱고 이쁘다 그 속에 찹쌀 옹심이가 하얀 꽃으로 고명처럼 올려져 있다. 

할아버지! 새로 끓인 호박죽이에요.

다 드셔야 해요 식사 때마다 귀가 안 들린  할아버지께 소리 지른다.

드릴 때마다 대체적으로 호박죽은 남김없이 다 드다. 그때마다 내가 먹은 것처럼 배가 부르고 뿌듯했다.

녹두죽, 콩죽, 팥죽도 끓여 드렸지만 호박죽을 제일 잘 드다.

그래서 호박죽이 단골 메뉴가 되었다.




옛날에는 단 호박보다 늙은 호박으로 죽을 많이 끓여서 먹었다.

노랗게 익은 늙은 호박을 몇 등분으로 갈라서 한 조각씩 떼어서 딱딱한 껍질을 벗겨냈다.

요즘 들어 먹거리가 흔해서 찹쌀로 죽을 끓이지만 옛날에는 밀가루를 넣어서 끓였다.

밀가루에 대충 물을 부어서 버물 버물 해두면 새알시미처럼 만들어졌다.

미리 넣어서 끓인 호박, 동부와 팥도 어우러져 무쇠 솥에서 펄 펄 끓고 있었다. 이때 버물 버물 해둔 밀가루 반죽을 넣어서 끓이면 되직하니 죽이 되었다. 옛날에는 설탕이 귀하던 시절이라 사카린과 소금을 넣어서 간을 맞추었다.

무쇠 솥으로 한 솥을 끓여도 육촌 까지 한 울타리에서 살다보니 소드방 뚜껑이 불이 난 것처럼 시끄러웠다.




할아버지 죽 끓이면서 추억도 같이 넣어서 끓인다. 오늘도 남김없이 잘 드셔야  할머니 한숨이  사라질 텐데~


# 호박 죽 # 흑임자 죽 #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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