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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애 Feb 06. 2022

20대의 우아한 슬픔

20대의 우아한 슬픔   

  

브런치는 나의 감정을 너무 솔직하게 만든다...

   

요즘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지나온 시절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그랬지.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생각하며 위로해주고 싶고, 토닥토닥 등 두들겨 주고 싶은 마음으로 댓글을 달기도 한다.   

   

나의 20대는 지금 생각하면 남들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그 안정감을 그때는 몰랐다. 운 좋게 공기업에 취업했고 당시 또래들보다 많은 월급과 보너스와 연차를 받으며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았다. 가끔은 한 달 월급만큼의 옷을 사거나 부츠를 사 신기도 했다. 통가죽 가방을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그 직장에 무덤을 팔 거라는 마음으로 가방 뒷면에 내 이름과 직장의 영문 이름을 새기면서까지 열정적으로 직장을 다녔다. 근데 가슴 한구석에는 알지 못하는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둠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체 슬픔을 끌어안고 살려고 했던 것 같다.     


안정된 직장이지만 사랑에도 미래에도 확실하지 않은 안갯속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가끔은 어스름이 내려앉는 시간에 가서 어둠이 짙게 깔린 칠흑 같은 밤까지 마산 앞바다에 슬픈 울음을 토해내기도 했다. 또 친구들과 함께 진동과 통영, 거제 바다 인근의 섬을 다니면서 우리의 슬픔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자랑하듯 읊기도 했다.     


그러다 26살부터 3년간 산에 미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산행할 때는 직장 동료의 권유로 시작했고 나중에는 내가 더 적극적으로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올랐다. 오르는 것 외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단순함이 너무 좋아 산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고 그로부터 결혼 신청을 받았지만 나는 철저하게 독신주의자였다. 그건 내 주위의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그에게 내가 좋아했던 책에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라는 글과 함께 보내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사실 원래도 혼자였다. 그때부터 산에 올랐다. 2년 후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았고 나는 축의금을 보냈다. 사랑했던 사람의 결혼 신청을 거절하고 혼자 아파하며 산을 다녔다.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 사랑이 그날로 끝이 난다 해도 사랑하는 마음을 전했어야 했다.   

   


‘1년 후 나도 결혼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 때 순수함의 끝판왕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고종사촌언니와 함께 그는 나의 남사친과 함께 우리는 종로에서 만나 바로 맥주집으로 갔다. 나는 그에게 “산속에 계시다 나오셨나요?”라고 질문할 만큼 영혼이 맑은 사람으로 보였고 우리는 만남을 이어갔다. 사람은 순수했고 배움도 깊었고 신문에 실렸던 철학적 깊이의 글도 좋았다.      


좋은 사람인 것과 함께할 사람인 것은 다르다. 만날수록 나와는 인연이 아님을 알고 몇 번이나 헤어지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을 다 내팽개치고 나의 직장 현관 로비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몇 날 며칠을 기다리며 내 마음을 돌리려고 했다. 서울에서 마산까지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는데 그는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마산을 내려왔다. 그의 어머니는 진중한 아들이 여자한테 홀렸다고 아들 몰래 나한테 전화했다. 나는 그분에게 아들 좀 말려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나왔다. “결혼할게요.” 그 말을 하고 후회했다. 친정 식구들 모두 반대한 결혼이었다. 내 마음도 반대했지만, 동정심이 더 컸던 결혼식을 강행했다.      


20대의 우아한 슬픔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때 내 감정에 충실하고 나를 더 사랑했다면 그 결혼은 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과 다른 인생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의 선택과 20대의 슬픔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큰 원동력이 되었다. 지나온 나의 삶 어떤 것도 헛된 것이 없고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되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죄를 짓지 않고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선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에게도 그 말을 하며 20대의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그때 나는 조심스러웠고, 남의눈을 더 의식했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속에 있는 말을 삼키려고만 했고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지금의 내가 20대인 나를 바라보면 안타까워 눈시울이 붉어진다.    

  

30을 갓 넘긴 나의 큰 딸과 20대 초반인 두 아이는 슬픔이든지 기쁨이든지 사랑이든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낌없이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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