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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U Nov 14. 2022

나의 유년시절에게

유년시절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유년의 나는 또래에 비해 자신감이 부족했던 아이로 기억한다.


칭찬을 받아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누군가 꾸중을 하면 의중을 곡해하며 자책했다. 항상 겸손하고 착하고 의젓한 아이로 보이고 싶었기에 더욱 타인의 반응에 민감하게 굴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1년에 한 번, 전체 학년에서 단 한 명에게만 수여되는 상이 있었다. 어느 정도의 성적과 어느 정도의 성품과 어느 정도의 성실함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선생님들의 편애가 골고루 갖춰져야 받을 수 있는 상이었다. 전교생 앞에서 그 상을 받았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빨리 집에 가서 자랑할 생각에 신이 났다. 친구들의 부러움이 섞인 칭찬을 한껏 받으며 하교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모님께 상장의 의미를 땀나게 설명했다.


"공부 잘하는 사람한테 주는 상은 아닌 거네? 그래도 잘했다." 심드렁한 말을 듣는 순간 '그래도 잘했다'라는 뒷문장은 증발했다. 한동안 머릿속엔 앞의 문장만이 맴돌았다. 착하고 성실한 어린이보다는 공부 잘하는 어린이가 더 칭찬받는 건가 생각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친구들과 전국대회에 출전해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전교생이 인정해줄 만큼 명예 있는 상장이었다. 하지만 집에 이 소식을 전했을 때는 "지금 수능이 코앞인데 대회라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젠가부터 더 이상 맥 빠지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좋은 소식이 있어도 입을 꾹 닫게 되었다.


물론 언제나 칭찬받을 일만 가지고 갔던 사람은 아니었다. 좌절과 실패도 무수히 겪었다. 입시에 낙방하고 몇 번의 취업 실패를 겪고 어느 날은 불쑥 퇴사를 결정했다. 좋은 일도 힘든 일도 혼자서 오롯이 삭히고 견뎌야 하는 것 같아 사무치게 외로울 때도 있었다. 칭찬과 위로에 인색한 우리 가족이 미울 때도 많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한 번은 처음으로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부모님은 내가 자라는 동안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줄 수 없었냐고. 그래서 내가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으로 자란 것 같다며 격렬히 의분을 토했다. 이렇게까지 희로애락을 나 혼자 겪어내야 했어?


"그래서 네가 혼자서도 잘 해내는 사람으로 자란 거 아닐까."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말이다. 분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이후 며칠간 가만히 내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꾸준하게 인생의 궤적을 그려나갔다.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모든  아카이빙 해둔 노트북 폴더에는 지금껏 치열하게 도전하고 시도해왔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소란스럽지 않게 자기  일을 꾸준히  개척해 나가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혼자서도 나의 감정들을 다스릴  있고 혼자서도 나의 인생이 담긴 공간을 하루하루 운영해 나갈  있으며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길 줄도 안다. 어렸을 적부터 타지의 기숙사에서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서울로 상경해 8년간 혼자 집을 지켰다. 홀로 있는 집에서 공부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고 결국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다음 스텝을 계획하고 있다. 나는 독립적이다.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만 하면 비로소 자신 넘치는 사람이   있었다.


생각을 정립한 이후로부터 부모님을 더 이상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최근 술 취한 아버지로부터 밤늦게 전화가 왔다. 후회스럽다고. 조금 더 나를 돌봐줄걸 조금 더 나에게 표현해주고 사랑을 쏟아줄걸. 술기운에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후로도 아버지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전화를 해 내 안부를 물어보신다. 최근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땐 진심으로 아버지의 위로가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이렇게 세월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배워가며 과거를 치유하고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기대할 수 있어서 충만한 요즘이다. 아직 뛰어넘어야 허들도 있고 아물지 않은 상처들도 있지만 유년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완성된 것 같아 모든 순간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지금의 나는 자신감이 있다. 거창한 자신감은 아니어도 나 자신을 믿고 주변 사람을 믿는 자신감. 이 모든 영광을 유년시절의 나 자신에게 바친다.








키워드

위 글은 '유년시절'이라는 키워드로부터 출발한 논픽션 형식의 글입니다.


글 연재 패턴

1주차 - 신문 기사나 사설 등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 현안에 대해 글을 씁니다.

2주차 - 하나의 키워드를 설정하여 자유롭게 에세이 형식의 논픽션 글을 씁니다. (본문 글은 여기에 해당)

3주차 - 하나의 상황을 설정하여 자유롭게 소설 형식의 픽션 글을 씁니다.

4주차 - 콘텐츠 (영화, 드라마, 도서, 영상 콘텐츠 등) 를 보고 느낀 감상을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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