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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유 Feb 17. 2021

칼질이 좋아서 요리사가 됐다


누군가에게 왜 요리사가 됐냐고 물었더니, 칼질할 때 그 느낌이 좋아서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적잖이 충격받았다. 칼질이라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그 일을 선택하다니. 좀 더 그럴듯하고 멋있는 이유는 없었을까. 


그런데 나도 책상에 앉아 맥북을 두들기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디자인 일을 하게 된 것도 맥북이라는 멋진 도구로 무언가를 뚝딱뚝딱할 수 있다는 경험이 너무 좋아서 하게 된 것이고... 뭐 엄청난 비전이나 철학 같은 건 솔직히 아직은 없다. 그저 깨끗한 맥북을 가지런히 책상에 놓고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릴 때, 나도 그 순간이 정말 좋다. 장소가 어디든 상관은 없다. 집이든, 카페든, 사무실이든, 주변이 정리되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몰입하는 순간. 옆에 향이 진한 커피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맥주면 더 좋고...



인생을 마감할 때쯤 돌이켜본다면, 내 인생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이 8할이겠지만 별로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매우 정적으로 보이는 활동이지만 그 안에서 치열한 두뇌 싸움과 고민으로 가득 찬 시간일 것이기에... (라고 자위하는 건 결코 아니다.)


언제까지 디자인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온전한 정신이 있을 때까지는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키보드워리어로서의 하루를 잘 보냈다.

오늘도 뻘소리 끗.




전 왜 이 일을 하는지 자문을 하죠. 사랑하니까 하는 거예요. 전 아름다운 물건을 만질 때, 내 시간을 정말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대 세트의 수명이 짧다는 건 잘 알죠. 영원한 건 없죠. 사라질 줄 알면서도 만드는 거예요. 일주일 만에 사라질 수도, 4일 만에 사라질 수도, 4년 만에 사라질 수도 있죠. 결국엔 전부 사람들 기억 속에만 존재할 거예요. —무대 디자이너 에즈 데블린 



 seonyu.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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