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스스로 '나는 올드한 MZ 세대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느끼는 봐를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요즘 어린 친구들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젠가부터 젊은 세대들은 꿈(보통 직업을 이야기함)에 대해 진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보기 그럴듯한 꿈이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90~00년대에는 이 말에 이이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제기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사회는 이상하게 쳐다보았기 때문도 있다)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 위인전에 나오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중학교 때는 알고 있는 직업 중에 멋있어 보이는 것을 골랐으며, 생각이 생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적당히 절충된 꿈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새로운 젊은 세대가 등장하면서부터 점점 이이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 이상 사회가 부모가 바라는 꿈을 꾸지 않을 것이다'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나는(아직) 꿈이 없다'까지 다양해졌다.
여기서 왜 꿈이 없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나 같은 꼰대 만렙의 사람들은 '꿈이 필요한 3가지 이유'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그럼 그 열변을 한번 들어 보자!
첫 번째, 대다수의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살아가는 동기부여가 된다.
세 번째, 돈을 벌 수 있게 한다.
가장 현실적인 부분은 세 번째 경제적인 이유이고,
삶의 중요한 부분은 두 번째 자아실현의 이유이지 않을까 한다.
그냥 그렇다.
'꿈이 필요한 3가지 이유'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학창시절의 꿈만으로는 새롭고 복잡한 미래를 온전히 감당하기 버겁다.
그냥 사회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현재 가장 가능한 꿈을 찾고 이루는 것 즉, 꿈에도 가성비가 중요해졌다.
보통 내 나이 정도 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TV나 영화에서 여러 고난을 넘어 꿈을 찾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하고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한다.
하지만 또 그렇게 씁쓸하게만 생각할 것도 없다. 꿈의 방향성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직업적 꿈을 꾸기보다는, 정말 하고 싶은 목표의 꿈을 꾸게 된다.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집 스스로 짓기'
'부모님 모시고 해외 여행 하기'
'일본어 공부 해서 현지 맛집 탐방하기'
'나만의 홈카페/목공소 만들기' 등등
이중 나의 아버지의 꿈도 있다.
본인만의 목공소를 만들겠다고 얼마 전에 가족들 앞에서 발표를 하셨다. 어머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목공용품 택배가 오는 것에 경악하셨지만, 아버지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할 뿐이다. 은퇴하셔야 할 시기에 이렇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시는 모습에 나는 응원만 할 뿐이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게 강요하지 말아요
이건 내 길이 아닌 걸...
무시 말아 줘요 하고 싶은 게 없는 걸
왜 그렇게 봐 난 죄지은 게 아닌데...'
이 부분이 이 노래의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일으킨 부분이기도 하다.
<응답하다 1988>에서 덕선(이혜리)이가 꿈이 없다고 울고 있을 때,
아버지(성동일)가 딸을 위로하며 했던 말,
'꿈은 앞으로 가지면 된다. 나도 네 나이 땐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너만 그런 것 아니다 괜찮다'
그래 학창 시절에 꼭 꿈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때 꿈을 가져도 된다. 어쩌면 그것이 더 꿈을 이루는데 확실한 방법 일 수 있다. 꿈은 나이와 상관없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