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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Mar 08. 2024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아줌마'란 이름

이대로는 괜찮지 않아서

엄마, 이제 아줌마야?

제 작년, 아직 아이가 초딩일 때 아이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줌마는 50살부터라고 말해주고 우리 집에서 아줌마란 단어를 금지시켰다.

아줌마가 되기 싫어서 그런 건지, 진짜 아줌마는 50살부터인 건지 명확하지 않은 결단 어린 선택이었다.


그리고... 2년이 흘러... 나는 드디어... 

윤석열 나이로도 피할 수 없는 만 50살. 꽉 찬 50살의 아줌마가 되었다.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은 어찌 그 말을 다시 하는지, "엄마 이제 아줌마 됐네." 라며 무심하게 툭 던지고 제 방으로 가버렸다. 아들을 째려볼 사이도 없이 아들은 정말 작은 돌 던지듯이 그 말을 던져놓고 떠난 것이다. 나의 주변에 일렁이는 파장은 단지 나의 몫이겠지... 이런, 된장!

'이제, 아줌마 됐네.'


아줌마... 대체 그게 뭐길래 나는 이토록 본능적으로 그 단어를 피하는 것일까?


아줌마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기로 했다.

아줌마 :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

아주머니 :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뭐... 별 거 없다. 사전적 의미로는 그저 높여 부르는 말인데.. 대체 아줌마는 어째서 그렇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가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아줌마의 이미지. 그것이 문제였다.

과거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 내가 느끼는 아줌마란 아이들 학교 보내고 둘레둘레 모여 앉아 남편 험담이나 하고 아이들 학원 정보나 나누다 줏대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무리를 만드는 부류들.

삶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다닐지만 고민하는데, 그 고민도 온전히 자기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의견에 휩쓸려 무조건 옳다 믿고, 오전부터 점심 나절까지 카페며 식당을 전전하고 다니는 무리들.

내겐 그런 모습이 아줌마의 이미지로 뇌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이유로 동네 엄마들과 몰려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겠지만, 나는 그 대화가 과연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는지 또는 어떤 도움을 주는지 알 수 없기만 했다.

초등학생 학부형이라면 더욱 견고하게 응집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왜 그렇게 시간이 아까운 건지 나는 절대 그러지 않기로 작정하며 초등학교 6년을 독고다이로 때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며 잘 살아왔다. 

내가 부정하는 아줌마가 아닌 채로.




그러다 진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50살이 되는 2024년 1월 1일.

나는 이유를 모른 채 더럭 겁이 났다.

"나 이대로 괜찮나?"


갑자기 내 뇌에 들어있던 신념이, 삶에 대한 자세가, 살아가야 하는 방향성이 모두 상실되어 버린

아니, 그보다 소진되어 버린 느낌적인 느낌.

내가 만들어 온 세상에 대한 고집은 그저 49년이 유통기한이었나 싶게, 급작스럽게 덜컹하며 마음이 움찔했다. 그리고 나를 돌아봤다.

나의 현재를. 지금을. 이 순간을.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독야청청, 독고다이로 살아도 잘 살 것이라 믿었던 나는 정작 왜 이렇게 헐렁한 마음인 건지. 50년이나 살고도 삶의 이력서에 딱히 쓸만한 문구 하나 제대로 만들어 놓지 못하고선 쓸데없는 고집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앉았었다. 그것이 진짜 내가 절대로 갖고 싶지 않았던 '아줌마'의 부정적 모습, 그것이었다. 아줌마보다 더 싫은 '꼰대' 그것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아줌마의 무리들 속에 끼지 못했던 것이 이유가 아니라, 내 안에 담겨 있던 지식이 철학이 소진되어 버린 것이었다. 세상은 변하고 아이는 자라고 나는 원치 않는 싱글맘이 되어버렸고, 온전히 모든 것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이 상황에 대한 대처가 삐걱거리면서 나는 더욱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안이 이제 비어 가는 것이구나...

나는 그것을 알았다.

꽉 차서 삶을 향한 발걸음에 확신이 넘쳐나던 나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살얼음판 걷듯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내가 되어, 삶을 불안요소로 보고 있구나... 그런 나를 알게 되었다.


"나는 다시 나를 채우기로 했다."


어떻게?라고 물으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럴 땐 도움이 좀 필요한 것이다.



책을 읽기로 했다. 나처럼 흔들리는 사람들을 다시 흔들리지 않게 하는 이야기를 읽기로 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 읽고 배우고 느끼는 것.


이대로 괜찮지 않은 50대로 살 수는 없었다. 썩 괜찮은 50살 아줌마.

나는 2024년 그것을 목표로 그게 뭐라도 상관없으니 나를 다시 만들기로 했다.


퇴근 후 집에 와,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면 공부를 시작한다.

내가 배워야 할 문구가 있으면 필기하고, 50년 숙원사업이던 글씨체 바꾸기도 한다.

힘들고 지루한 일을 해 내기로 마음먹고 노트에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가다 보니 마음도 다시 다잡아지고 있다.


"하기 싫은 것을 매일 하라."


어느 성공자의 말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것을 하기로 한 것이다. 잘 되지 않던 글씨체를 바꾸는 일로 나의 마음이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매일 쓰고 영상을 보고, 책을 조금이라도 읽는 일을 반복하면서 다시 내가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다.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던 내가 되어, 인생의 후반전은 부디 더 옳은 방향을 걷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50살 아줌마.

그 말이 괜찮아지려면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불안은 자신감이 없는 데서 오고, 지금 내가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나를 부정하는 사람으로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제 멋진 아줌마로 변하는 나를 기록하기로 했다.

나를 채찍질하고, 나를 달래주고, 나를 응원해 주며 인생의 후반전을 괜찮게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젠 더 이상 흔들려도 괜찮은 청춘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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