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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Mar 08. 2024

글씨체 하나 바꾸는 일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대로는 괜찮지 않아서

요즘 글씨체를 바꾸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

어릴 때부터 왜 그렇게 글씨를 못 썼는지, 매번 맘에 들지 않았지만

글씨체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였지만 글씨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유가 뭐였을까?


아마도 그저 그런대로 만족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딱히 잘 되지도 않는 일에 시간을 쓸 여유도 없거니와, 글을 쓸 때는 보통 컴퓨터로 쓰게 되니 글씨체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날이 더 많아서이기도 했을 거라 짐작한다.


그런데 그런 날들을 뒤로하고, 나는 결국 글씨체를 다시 한번 바꿔봐야 할 커다란 이유를 만나게 되었다.


"아들의 악필"


그것이 내가 글씨체를 바꿀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다.

나를 닮아 그런지 어찌나 글씨를 못 쓰는지,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글씨도 많은 것이

이대로 시험을 본다면 맞게 답을 적어도 틀리다고 할 판이었다.

이 녀석, 아무리 또박또박 쓰라고 해도 노력은 한다 하는데 내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글씨는 다시 엉망이 되고 말았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내가 보여주마!! 너에게 잔소리만 하는 엄마는 되지 않겠다 다짐하고 살고 있으니 이번에도 내가 먼저 하겠다. 마음먹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것이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몇 십 년을 대충 쓰던 글씨인데, 이제와 바르게 쓰려고 하니 당최 좀이 쑤셔 오고 손에 힘은 또 왜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건지, 연습을 하고 나서는 손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처음 글씨를 배우고 그리는 아이처럼 획을 하나 긋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게

내가 그간 글씨체를 바꾸지 못한 이유는 의지박약과 노력의 부재였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 짧은 획을 긋는데도 똑바르고 반듯하게 그어지지 않는 것이 보며

나는 참, 세상을 쉽게 살려고 했다보다..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바른 글씨를 쓰기 위해 바른 자세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바르게 쓰기 위해 서두르려는 마음을 없애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글씨체를 바꾸는 데 필요한 것은 이것이면 되었다.
바른 자세, 바른 마음, 꾸준함.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연습을 하며 나는 관성의 법칙을 잘 따르는 나의 뇌를 온갖 에너지를 불어넣어가며 깨우고 또 깨우고 있다.

가만히 있으려는 뇌가 각성해서 새로운 걸 인정하는 뇌가 되기 위해서는 실로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몸이고 뇌고 일하기 싫은 건 마찬가지. 그러니 에너지는 늘 쓰던 양의 두세배가 들기 마련이다.


아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해내야 아들이 해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엄마는 하지 않는 공부를 아들에게 시킬 수 없어,

내가 해야 할 공부를 찾아 하고 있고

엄마는 게으르면서 아들에게 부지런해져라 할 수 없어, 시간을 잘 쪼개 쓰려고 노력도 하고 있다.

보여줘야 할 것이라는 걸 믿기에 그리고 직접 실천해야 아들이 절대 엄마를 무시하지 못할 걸 알기에

아들의 노력만큼, 나도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글씨체는 이제 제법 많이 바뀌었다.

손 편지를 쓰는 일도 생기고, 그 편지를 보며 감동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수첩을 언뜻 보며 글씨체 칭찬하는 경우도 생기다 보니 더 힘이 나기도 한다.


여전히 같은 필체를 유지하기 어려워 속도를 내지 못하고 필기를 하고 있지만

이 반복이 내게 큰 성취감을 가져올 것이기에 오늘도 나는 배우는 내용들을 쓰고 또 쓴다.


원하는 글씨체를 완성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만,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결국 해내는 엄마가 될 거라는 걸.


아들아, 기다려. 엄마가 보여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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