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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Dec 15. 2022

상처를 치유하는 옷을 만들거야

광목옷에 담은 진심



옷으로 너의 상처를
감싸 안아 줄게.




2023년부터는 만 나이를 쓴다 하니 나의 자영업 경력도 만으로 해야겠다.

정책 변경으로 뜻하지 않게 마흔아홉 살을 두 번 살게 됐다.

2017년에 시작해, 올해가 2022년 막바지이니 

나는 자영업자 나이로는 만 5세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2023년.

내게 주어진 보너스 같은 한 해를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고만 있다.


얼마 전, 지인이 작업실엘 찾아와서

"대표님, 요즘 어떠세요? 저는 죽겠네요."

쿠팡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지인의 인사는

오늘을 사는 지친 자영업자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 같았다.

"저도 요즘 매출이 많이 줄었어요. 점점 쉽지 않네요."

함께 성장해도 모자랄 판에, 

여기저기 작년 대비 반토막이 났다는 말에 마음 졸이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사업을 하는 사업주들은 코비드가 한창일 때는

비교적 버틸 수 있었던 2년의 시간이었다.

비대면 사업의 장점이라 여기며,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에 안도하는 날들이었다.

그러나 코비드가 끝나고 이제 뭔가 조금은 나아지려나 생각하고 있을 때

세상의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고,

우리도 이제는 피해 갈 수 없는 힘든 시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이러다 정말

다 죽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가 무럭무럭 자란다.









처음 내가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의 남편 표정이 생각난다.

"나 진짜 해보고 싶은 아이템이 있어."

운전을 하던 남편에게 던진 나의 별 거 아닌듯한 말은

아마도 그에게 선전포고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을까?

남편은 알았을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말은

그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에서 나온다는 것을.

잠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우려와 걱정과 함께

저 여자를 어떻게 말리지? 말려야 할 텐데.라는 나와는 다른 의지가

그 눈빛에 담겨 있었다.


"그게 뭔데?"

보통 남편들은 그 말 끝에 이렇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 마, 그게 뭐든 넌 하지 마."

하지만 내 남편은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남편의 질문엔 성실하게 답을 해 줘야 한다.

대체적으로 느린 감성의 남편은

내가 던진 주제를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니까.


"광목 알아?"

"아니."


모를 줄 알았다. 남자들은 대부분 모른다.

남자들에게 옷은 그냥 옷일 뿐이다.

무슨 원단의 무슨 옷.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스타일링 등

카테고리를 잘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작된 나의 설명은 참으로 오랜 시간을 거슬러 갔다.


"자기야, 생각해봐. 조선시대에는 아토피라는 것이 없었지?"

"뭐....., 들어 본 것 같지는 않네."

여전히 심드렁하고 재미없다는 투의 무미건조한 말투.

남편과 살면서 내겐 조금의 인내라는 것이 생겼다.

느린 사람과 살면서, 기다리는 법을 배웠고

완전히 다른 인격체를 인정하며 사는 게 결혼이라 생각했다.

그 깨달음이 결혼을 통해 얻는 선물 중 하나다.

나의 설명은 그가 제대로 듣길 바라며 점차 길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현대에는 아토피가 이렇게 많을까?

그건 바로, 환경 때문에 생긴 병이기 때문이지.

자기야, 들어 봐.

우리 신혼여행 갔을 때  가이드가 그랬잖아.

아이들이 아토피가 있어서 사이판으로 이주를 했고

그곳에서 살면서 오염된 환경과 멀어졌더니

아이들의 아토피가 나았다고.

하지만 환경을 완전히 바꿔줄 수 없는 사람들은

병원과 약에 의존하고, 먹는 거, 입는 거, 사는 곳을 바꾸려고 해.

나는 말이야.

이 사람들에게 과거 우리가 아토피라는 근심이 없던 시대에 대한

자연과 함께 공존하며 순환하던 때의 철학이 담긴

광목옷을 만들어서 팔아 보려고 해.


남편은 답이 없었지만,

안돼. 말려야 돼. 너를 말려야 할 텐데...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는 대신

남편은 며칠 동안 입을 닫아 버렸을 뿐이었다.

나의 야무진 이상향에 적응 중인 건가?

......






나는 출사표를 던진 것이었다.

나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선택했던 광목이라는 원단.

사람들이 고가의 돈을 들여 구매해야만 하는 오가닉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소재.

진정한 의미의 오가닉은 있을 수 없는 목화 재배의 현실 속에서

소비자를 속이지 않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진심을 담은 제품들.

착한 판매자, 착한 사업자라는 이상적이지만

누군가는 분명 배부른 소리라고 치부해 버릴 나만의 이상향.

그렇게 치부되어도 괜찮았다.

나는 진짜 소비자를 위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뜬구름이라고 해도 좋았다.

세상에 나와 같은 착한 사업자는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들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으며

나의 진심을 소비자는 알아줄 테니까.

나의 그런 믿음에 소비자는 배신하지 않을 걸 아니까.


소비자를 중심에 둔 옷을 만들어 판매해도

우리는 충분히 희망을 볼 것이고

그 빛을 따라가다보면 우리의 삶에도

빛이 들어올 것임을 믿으니까.






그 믿음으로 했던 지난 5년.

그 5년 동안 남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그렇게 하니까, 네가 돈을 못 버는 거야."


그래도 나는 자부한다. 지난 5년간 우리 세 식구

광목옷을 좋아해 주시는 소비자로 인해

빚도 갚고,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었지 않는가.

비록 부자는 되지 못했지만, 나와 케미가 맞는 소비자들과

같은 꿈을 꾸며 잘 지내왔음을 알고 있다.


아토피로 시작되었던 아이템의 물꼬.

그 속에서 찾은 광목이라는 소재는

단순한 아토피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의 삶이 왜 이토록 알지 못했던 병들로부터

고립되고 피폐해지며, 현재에 머물러 나아가지 못하는가.

무분별한 발전, 편리함에 대한 맹신

자극적인 감각에 대한 추구

지루함에 대한 극렬한 저항

배려가 없는 개인주의 팽배


이런것들은 내가 보기엔 모두 상처였다.

이런 상처 속에 사는 인간들에게 광목은 분명 치료제 중 하나로 보였다.

나는 광목이라는 소재가 보여주는 미래를 그렸던 것이고,

그 곳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지구와 공존하는 인간이 과연 어떤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까?

빠르기만 하고 자극적이기만 한 현재 사회의 생활속에서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인간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은 듯 보였다.

대물림 되듯 경쟁에 내몰리고, 경쟁속에서 살아남아야한다는 강박은

위태로운 곳으로 인간을 내몰았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입은 상처를

지구에게 되돌려주고 있었다.

인간도 지구도 상처 받은 마음이 치유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너의 옷으로 사람이 위안을 얻고

상처가 치유 될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물어본 적 없지만,

나는 나에게 그 질문을 던졌고, 나는 대답했다.


옷을 통해 인간은
분명히 위로를 받을 수 있어.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어.

나의 위로가 누군가에게로 가 닿았고

나는 광목으로 통해 위안과 위로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인간이 치유되어야 지구도 함께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자극적이지 않게 살아야

인간은 비로소 지구를 향해

상처입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옷에 그것을 담았다.






2023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말 2023년은 자영업자들의 무덤이 될 것인가?

미래를 점치는 모든 점쟁이들의 말이 맞다면

가서 물어보고 싶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진짜 미래를 알려달라고.


비록 나의 미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지구의 통곡은 계속될 것이고

인간은 그 통곡속에서 생존을 위협받으며

그동안 냈던 상처를 결국 급하게 봉합하려 한다는 것을.

나의 미래 만큼이나, 우리 모두의 미래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침체의 2023년이 아니더라도

암울하고 더 치열할 것이라는 걸.


두려움이 엄습하는 시간.

째깍째깍 시계는 자비도 없이

내년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두려움을 가득 안고

광목옷을 재단한다. 누군가에게 전할 위로의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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