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여행 중의 산책
공항에서 나온 후, 작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시간은 30분 정도 걸렸다. 차창을 스쳤던 수많은 장면들 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수많은 모랫빛 건물들과 그래서 더욱 빨갛게 내려앉던 석양의 장면이다. 이마저도 흐릿한 인상으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 모랫빛의 강렬한 빨간 색깔만큼은 계속해서 짙어지는 것만 같다. 숙소의 문은 커다란 나무 문이었는데, 낯설게 느껴져 그것을 여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동 숙소는 총 다섯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총 열 명의 사람들이 지내는 곳이었다. 어떤 이들과 함께 지내게 될까. 기대와는 달리 설렘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 느껴졌다. 늘 혼자 있을 수 있으며 익숙했던 나의 작은 방으로 돌아가 하염없이 자고 싶었다. 장시간의 비행에 지쳐있었고 신경은 곤두세워져 있었다.
20대 초반의 시선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기에는 뭉툭했다. 나를 설명해 내어 날카로운 문장으로 규정해 낼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니. 사람에 대한 이해가 얕았던 그때,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저 뭉뚱그려진 하나의 모호한 집단으로서만 다가왔다. 2021년 여름은 코로나로 인한 국가 간의 물리적인 벽이 조금은 약해지긴 하였으나 심리적인 장벽은 여전히 굳건하던 때였다. 경유지였던 로마 국제공항과 몰타 국제공항에서 나는 동양인을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동양인에 대한 실체 없던 혐오감이 마치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유튜브에서 가끔 봤던 동양인 폭행 영상, 그 아래 댓글창을 통해 조금씩 퍼져가던 혐오가 그날, 오로지 나를 향하는 듯했다. 그냥 넘길 수 있을 법한 시선들은 상상 속에서 더욱 예리해져 찌르는 듯 날카로웠다.
아주 약간의 시선과 상상 속의 수많은 시선들, 입국 심사관의 거친 말투와, 끝없이 펼쳐지는 새로운 길들, 닳아가는 핸드폰 배터리. 떠나지 않았더라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괴로움이 느껴졌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부터 살아보고자 떠났던 것만 같은데… 벌써부터 새로운 것에 싫증이 느껴졌다. 새로 만난 룸메이트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후, 새로운 방의 새로운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방은 쿰쿰한 낯선 향을 풍겼다. 낯선 촉감의 이불을 뒤집어쓰며 생각했다. 수없이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들, 걸을수록 새로워질 이곳의 거리들. 이 섬은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곳이었다. 조금은 아늑함을 느낄만한 나의 일상을 만들어나가야 했다.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어떠한 제약도 없이 스스로 만들어낼 나의 일상은 나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그마한 단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전에, 나는 일단 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