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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중 김범순 Feb 11. 2024

삽화

80. 3박 5일 4화

지평선에서 뜨는 해

산골짜기에서 자라 지평선이 로망이었다.

야자수 사이로 보는 일출 하나만으로도 태국에 온 보람이 있다.


아침 먹는데 아래위턱 맞물리는 곳이 어긋난 것처럼 아파서 음식을 씹을 수가 없다. 잠 못 잤는데 왜 턱이 아플까? 간신히 다 먹고 빈 그릇을 들고일어나니까 핑 ~! 세상이 한 바퀴 돌았다.

     

다들 커피 마시는 시간. 자리에 앉아 창밖을 눈과 마음에 깊이깊이 담았다. 박짱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사근사근 다정하게 마사지 잘 받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제보다 솜씨가 덜했다며 심상하게 대꾸했다.

      

짝꿍이 밖에서 사진 찍자고 불렀다. 둘을 멋지게 표현하고 싶은데 팔이 짧으니까 각이 안 잡혔다. 그 모습을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며 지켜보던 박짱 부군이 다가와 찍어주며 말했다.     

  “마사지받자고 해서 남자가 무슨 마사지냐고 죽어도 싫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까 아주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어제는 자리 없을까 봐 아침 먹고 바로 예약해 버렸지요. 아, 그런데 저녁때 박짱이 언니 마사지 못 받게 됐다며 자꾸 양보하자는 거예요.”   

   

그랬었구나!     


박짱은 한남대 미용장 준비과정 반에서 처음 만났다. 알고 지낸 지 어언 20년이 된 것이다. 기개와 배짱이 남자 못지않아 오랫동안 미용사회 대덕구 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그릇이 큰 인물이다. 소심하고 옹졸한 나는  그 깊은 배려와 사랑을 나만큼의 크기밖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박짱한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회의 결과 골고루 친해지기 위해 매일 파트너를 바꾸었다. 사흘째 날은 나, 손 교수님,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짓는 장짱과 모임에서 가장 젊고 예쁜 유짱이 같은 조였다. 나는 손석 미용장을 손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큰아들 대학 은사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라군 CC B코스 기다림도 만만치 않았다


쐐기? 

우리 딸 같으면 징그럽다고 경악할 것이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풀벌레조차 예쁘다.


이국 풍경을 감상하며 사진 찍고 준비 운동 하는 것도 잠시뿐 지루해서 몸이 비비 뒤틀렸다.  


열나절도 더 기다린 끝에 차례가 되었다. 전날 회장님 부군한테 지도를 받아서 그런지 한숨도 안 잤는데 헛손질도 덜하고 가끔은 멀리 가기도 했다. 공이 잘 맞으니까 36홀도 거뜬할 것 같다. 이날도 나와 장짱, 유짱은 손 교수님한테 티 꽂는 위치를 정확하게 배웠다.

   

나와 손 교수님 캐디는 열여덟 살이라고 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아주 서툴렀지만 성심성의를 다했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골프채 건넬 때마다 손을 떨었다. 손이 저 정도면 마음과 몸은 더 떨고 있을 것이다.


어린 캐디! 내가 태국에서 태어나 열여덟에 골프장에 근무한다면 꼭 저럴 것이었다. 팁을 많이 주고 싶었지만 올바른 처사가 아닌 것 같아 규정액만 건넸다. 보름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고액의 팁이 어린 캐디의 자신감을 상승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고. 

    

그늘집에 도착했는데 줄이 한없이 길다. 풀꽃에 휴대폰을 대고 사진 찍고 있는데 등 뒤에서 까르르 소리가 났다. 유짱이 장짱과 캐디 둘을 카트에 태우고 고속 후진을 반복하며 숨넘어가게 웃고 있었다. 젊음은 참 싱그럽고 좋은 것이다.



선명하고 강렬한 열대의 꽃

박꽃과 비슷하다.

보라색 풀꽃 역시 낯이 익다.


점심 먹으러 클럽하우스에 들렀다. 커다란 똥파리들이 반찬 통으로 목숨 걸고 덤벼들었다. 비위생적이라 께름하면서도 헛웃음이 났다. 어릴 때 자주 겪었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점심과 저녁에는 신선한 파인애플을 실컷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반찬이 있다. 첫날부터 나오던 겉절이였다. 유채와 열무 중간이라고 표현하면 맞으려나? 이태리 채소 루꼴라와 많이 닮았는데 루꼴라보다 줄기가 아주 많이 길었다. 사흘째 되는 날은 시큼하게 맛까지 들어 기가 막혔다.  

 

오후 라운딩은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러 끝마쳤다. 손 교수가 초고속으로 카트를 몰았다.


상쾌! 장쾌! 통쾌해서 크게 소리쳤다.

오빠, 달려~!


숙소에 와보니 짝꿍은 돌아갈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언제 씻고 언제 머리 말리고 짐 정리하고 화장하나? 손이 느려서 일을 빨리 못 추는 나는 마음이 몹시 바빴다. 나이 많은 나 때문에 비행기 놓치는 일이 발생하면 절대 안 된다.


짝꿍이 반바지만 입어서 새까맣게 탄 내 다리에 물집 생기면 안 된다고 팩 붙이게 누우라고 했다. 그럴 여유가 없다고 거절했다. 짐 챙기는 걸 돕겠다는데도 말 걸지 말고 가만 내버려 둬 달라고 했다. 

  "골프가방 엘리베이터 홀에 가져다 놓고 올 테니까 천천히 준비하세요."

후다다닥! 나름 번개같이 준비를 마치고 보니 어디 갔는지 짝꿍이 없다. 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오니 복도에 서서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라군 CC 골프텔  


공항에 도착했다.  클럽 하우스와 골프텔이 천국이었음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복잡하고 기다림 또한 끝이 없다.


수속을 끝내고 마주한 첫 광경

불교 분위기가 물씬 풍겨 인상 깊다.




라군 CC 직원 중에 유머가 뛰어난 이가 있었다. 외모에도 익살끼가 넘쳤다. 그가 우리 일행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바짝 다가서며 짝꿍과 유짱이 몰던 카트에서 불이나 하마터면 타 죽을 뻔했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그 말을 듣자 직원은 얼굴을 묘하게 일그러트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 아깝다. 소리 없이 둘씩이나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기상천외, 천만 뜻밖의 반응에 가장 아끼는 짝꿍과 유짱을 한꺼번에 잃을 뻔했다는데도 사과 한마디 얻어내지 못하고 일행과 함께 큰소리로 웃어넘기고 말았다. 이토록 헐렁한 게 바로 나다.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누가 말하면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멀티형 미용장들은 화장하며 전화 걸고 요리도 하고 계산하고 손님 배웅하고 한꺼번에 여러 일을 다 하는데 말이다. 둘째 날 저녁일 것이다. 짝꿍이 달러 많이 남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니까 태국돈이 많이 남아서 그런다며 내일 라운딩 비용을 같이 계산하자고 다. 클럽하우스에서 달러로 바꾸면 되는데 왜 저러나 싶어 복잡한 것은 질색이라 싫다고 딱 잘랐다. 


나는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 


거절하기 전에 자세히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클럽하우스에서 달러는 태국돈 바트로 무한정 바꿔주지만 바트는 달러로 바꿔주지 않을 수도 있잖겠는가. 


내가 롤모델이라며 무작정 따르고 응원해 주는 귀한 짝꿍이다. 라운딩 비용 그냥 내줘도 되는데 왜 그렇게 모질게 대했는지 발등을 찍고 싶다. 




비행기 안은 추울 것이므로 골프텔에서 아예 기모 바지와 겨울 티셔츠를 입고 출발했다. 옷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별수 없이 겨울 외투와 면세점에서 산 건망고가 들어있는 가방에 휴대폰도 넣었다. 그걸 들고 움직이니까 땀이 줄줄 흘렀다. 일행들은 내 모습이 안쓰러워 서로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언제 사진 찍을 일이 생길지 몰라 맡길 수가 없었다.


이 모습 또한 젊은 일행들에게는 짐에 목숨 거는 노인의 아집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예상대로 기내는 썰렁했다. 얼른 외투를 꺼내 입었다.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녕 태국!


허리가 아파 비행기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다. 피곤이 겹쳐 집에 가면 며칠 퍼져 있을 것이다. 


여행 내내 서로 아끼며 돕던 일행 모두는 주말이라 다음날부터 샵으로 출근해 점심도 거르며 근무할 것이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철의 미용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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