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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중 김범순 May 26. 2024

삽화

99. 추정리의 봄

사진 출처 : 청주시 2021.09.09. 추정리의 가을 


 ·  · 장!


자뻑 3인방이 또 뭉쳤다. 이번 소풍지는 낭성면 추정리 축제장. 핸드폰 내비게이션만 믿고 길을 나섰다. 셋의 이야기꽃이 차 안에 가득했다.


한 시간가량 달렸을까? 동네 골목으로 들어가란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가을에 메밀꽃 축제를 여러 번 했으니 분명히 안내판도 있고 번듯한 진입로가 있을 것이었다.  지나쳤더니 내비게이션 파란 선은 직진 후 우회전을 가리켰다.


이럴 수가? 골목이어도 그리로 갔어야 했다. 


좁아터진 자갈길을 뒤뚱거리며 올라가는 데 동네 주민이 뭔가를 밀며 내려오고 있었다. 속도를 늦추고 길가로 바짝 붙어 공손하게 지나쳤다. 장이 말했다.


  “저 할머니가 잔뜩 인상을 쓰며 우리한테 욕하는 것 같아요.”


오르막 끝에는 황토색 밭둑이 나타났다.  널따란 내리막 밭을 지나니까 시골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한껏 들떴던 기분에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갈수록 담벼락 사잇길은 점점 더 좁아졌고 기어이 앞이 막혔다


장이 차에서 내려 살펴보더니 좌회전하라고 했다. 좁아서 직각 담장을 꺾는 좌회전은 불가능했다. 오른쪽은 잡풀이 우거져 막다른 길 같았지만 되돌아갈 수 없었으므로 접어들었다양쪽 담장을 삐져나온 나뭇가지가 드드드 차를 긁어 멈추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보험사에 요청한다 해도 동네 속에 처박힌 이 차를 무슨 수로 꺼내느냔 말이다.


잠시 후 장이 도움을 청해 함께 온 동네 아저씨가 강경하게 말했다.

  이쪽으로 나가면 절대 안 돼요. 빨리 후진하세요!

  후진 못해요. 길이 막힌 거예요?”

  막힌 게 아니라 주민들이 허락하지 않는다고요!


막히지 않았다고? 야호! 쾌재를 부르며 아저씨 말을 어기고 앞으로 갔다. 목 끝에 다다르니 넓은 공터가 나왔다. 장은 정자에 있는 할머니들한테 굽실거리며 사과하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 그렇게 됐는데 그 좁고 긴 길을 후진해서 나가라니? 축제 지로 선정되었으면 그만한 각오는 하고 있어야지! 텃세가 지나친 것 같아 몹시 아니꼬웠다.


아저씨가 축제장 가는 길을 알려주며 말했다.

  전국에서 몰려온 차들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벼 주민들이 마음 놓고 대문밖을 나설 수 없는 형편이거든요.”


좁고 꼬불꼬불한 오르막 비포장도로는 갈래길이 많아 여간 고역스러운 게 아니았다. 겨우겨우 한참 올라가 목적지인 추정리 된내기골 주차장에 도착했다. 축제 전이라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늑하고 예쁜 오솔길이 우리를 맞이했다. 불안, 초조, 아니꼽던 앙금이 눈녹 듯 사라졌다.

여기를 보라! 

어렵사리 찾아온 보람이 있잖은가?


그날은 5월 24일이었고 29일부터 축제라 그런지 꽃이 덜 핀 것 같았다.

사근사근한 장이 지나가는 아기 아빠한테 부탁해 찍은 기념사진


꽃은 덜 핀 게 아니었다. 꽃 진 자리마다 가녀린 씨앗 꼬투리가 수없이 달려 있었다. 말하자면 끝물. 지구 온난화로 꽃이 일찍 피어 축제일과 어긋난 것이다.


원두막으로 올라가는데 어떤 생명체가 총알처럼 숲을 가로질렀다. 

뭐야? 뭐야? 


볼주머니가 볼록한 아기 다람쥐 

우리는 뜻밖의 선물에 감탄했다.

다람쥐는 한동안 저 자리에 앉아 졸다 깨다 했다.


원두막에서 본 풍경


벌이 많아 꽃 사잇길을 포기하고 원두막을 선택했다. 상상 속의 유채꽃 골짜기가 한눈에 펼쳐졌다.


예술적인 떡 접시


손녀 어릴 때 자주 갔던 문의면에 있는 식당 '마중'에서 근사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성이 흔쾌히 계산했다.


심장이 쫄깃했던

그래서 더 똘똘 뭉칠 수 있었던

노란 희망이 망울망울 피어나던

추정리 봄소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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