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 시절 나폴레옹이 전쟁에 참가했다. 풀밭을 지날 때 발 밑에 있는 네 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얼른 허리를 굽혀 땄다. 나폴레옹이 허리 굽힌 사이 적의 총탄이 지나가 네 잎 클로버가 생명은 구한 것이다. 그 후 네 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서쪽 하늘에 걸린 달
강아지와 집 앞에서 만난 아침 일곱 시의 달
아침 일곱 시 삼 분
수업 시작은 멀었는데 학교에 불이 환하다.
세상 어는 곳이나
교사는 부지런히 가르치고
청소년은 열심히 배워야 하니까
어느 집 현관 돌 사이에 핀 꽃
아, 또 꽃 검색을 잊었다.
아주 작은 꽃
아침 여덟 시 이십 분의 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 해가 떴다.
식탁 위의 네 잎 클로버
작은손녀한테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이라는 거 아느냐니까 말없이 책갈피를 뒤지더니 코팅한 네 잎클로버를 꺼내 보여주며 웃는다. 나는 얼른 컵에서 꺼내 물기를 닦아 손녀에게 건넸다.
"이 행운도 너한테 선물할게."
손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식탁에 두고 가족 모두에게 행운이 오길 바라는 게 더 났잖아요."
칠십 셋 먹은 나보다 열다섯 살짜리 생각이 훨씬 깊어 감동했다.
점심 식사 후 사위가 같이 산책을 하자고 했다. 언젠가 한 번 와봤는데 내가 무척 좋아할 것 같더란다.
미루나무 길
미루나무를 보자 옛 정취가 물씬 풍겨 표현하기 어려운 아련함에 도취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아무개 ㅇㅇ가 걸려있네 ~♪♬
80년대 전국의 어린이가 동요를 개사한 이 노래를 부를 정도로 미루나무가 많았는데 요즘은 보기 드물다. 얼핏 듣기로는 목재가 단단하지 못해 다 베었다나 어쨌다나.
측면에서 본 미루나무 길
추억의 나무가 끝 간 데 없이 이어져 똘똘 뭉쳐있던 그리움이 스르르 풀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길
미루나무 길을 벗어나 들판으로 접어들며 또한 번 넋을 잃었다. 내가 또 볼 경관은 아니기에 심호흡을 하며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좁아터진 산골짜기에서 등잔불을 켜고 자랐다.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오면 북쪽 하늘만 환해 신기루처럼 환상적이었다. 산 넘어 넘어 또 산 너머 도시에 켜진 불빛이었다.
나는 하루빨리 이 좁아터진 골짜기를 벗어나 도회지로 나가는 게 꿈이었다. 그러했기에 넓은 벌판만 보면 그야말로 환장을 한다.
풀밭의 백조
백조 두 마리가 열심히 풀을 뜯고 있다.
백조는 정말 풀밭과 어울리지 않는다.
들판 한가운데 강아지
배변 봉투 함이 부착된 쓰레기통
네덜란드는 강아지 키우는 집이 많아서 군데군데 쓰레기통이 있다. 하지만 배변 봉투 함이 부착된 쓰레기통은 처음 보았다. 아니 있었어도 몰랐을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지 이렇게 관리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개똥이 있어 눈살을 찌푸릴 때가 꽤 있다. 그럴 때마다 당혹스러웠던 경우를 떠올리며 어떤 이도 나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 이해하기로 했다.
어느 날 배변 봉투 한 개를 챙겨 들고 딸네 강아지와 산책에 나섰다. 항상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풀밭에 똥을 누는데 그날은 몇 걸음 걷더니 또 누는 것이었다. 이걸 어쩐단 말이냐.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냥 가버리자니 한국인 이미지를 손상시킬 것 같아 용납이 안 되었다. 그때 저 멀리 길가에 희끗한 것이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한달음에 쫓아갔다. 버려진 요리용 고무장갑이었다.
그다음부터는 꼭 두 장씩 챙겼다. 하지만 웬 걸? 세 번 누는 날도 있어 지금은 세 장씩 챙긴다.
아까 봤던 백조 한 쌍
역시 백조는 물에 떠있어야 우아함이 돋보인다.
파노라마로 찍은 사진
이럴 수가?
동!서! 남! 북!
360도가 지평선이다.
가슴이 뻥 뚫렸다.
내가 원하고 원하던 벌판이었다.
대전 근처에서 가장 넓은 곳은 논산시 채운면 들판이다. 남편과 가끔 그 들판을 지나 강경나루 금강을 보러 간다. 그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지평선을 찾지만 아쉽게도 없다. 한쪽은 계룡산 자락 또 한쪽은 대둔산 자락이라 서남쪽은 훤히 트여 있지만 먼 동산과 함께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