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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권리

20. 롤러코스터

by 글마중 김범순

2019년 11월 23일 촬영


K가 학교에 근무하는 10년 동안 저축한 돈으로 너희는 번듯한 내 집 마련이 코앞에 있었다.


그때부터 K의 형은

너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다.


변한 사람은 또 있었다.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가 은근히 너를 구슬렸다.

“야이, 니가 해주는 밥 먹다 죽고 잡다. 시골에 있는 논밭 전부 줄 텡께 나도 느덜하고 같이 살자!”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시어머니를 잘 아는 너였다.

누구보다 K의 형과 형수를 잘 아는 너였다.

시집온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 K의 형수는 이를 윽물며 말했다.

서방님 몫은 논 서 마지기 있으니까

어머니 재산은 전부 우리 거야!


시어머니가 같이 살자고 한 지 한 달 만에 K가 쓰러졌다.


시어머니 간청을 듣지 않아 벌을 받았나?

너는 고개를 저었다.

더 큰 벌을 받는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니었다.


K는 퇴원 후 석 달 만에 걸었다.


K의 형수가 낮에 아기를 돌봐주는 연말까지 너는 무조건 K의 회복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K는 너와 같이 계단을 내려가 택시를 타고 대학병원과 한의원을 오갔다.


마비된 왼발은 잔뜩 오그라들며 뒤집혀 K의 걸음은 지켜보기 민망할 정도로 절룩거리고 느렸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다른 사람 같으면 병난 날 죽었어. 기적을 일으킨 사나이라 이렇게 걸어서 병원에 가는 거야. K 참 대단해. 혹시 당신 불사신 아니야?”


낙망하고 비관해서

너는 칭찬에 약한 K를 계속 부추겼다.


K는 뇌출혈 당시 솟구친 피가 시신경을 덮어

시각 장애 2급이었다. 각 장애 중 시야 장애는 눈앞이 흐리고 군데군데 안 보여 퍼즐 맞추듯 한동안 눈동자를 굴려야 사물을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이나 자동차는 전혀 몰라본다.


인체의 생리는 위기에 닥치면 생명 살리기에 집중한다고 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K의 인체도 피부 면역력까지 생명 살리기에 동원되었다. 그래서 피부 면역력이 없다. K는 평생토록 피부 방어기제가 없어 병균이 침투할 때마다 고생해야 한다. 상처가 잘 낫지 않고 검버섯과 기미와 물사마귀와 잡티가 온몸에 돋아났다. 가장 두드러지고 심각한 부위는 두피였다. 약을 보름만 안 바르면 바짝 가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며 피가 나고 진피층까지 팥시루떡 켜처럼 들고일어났다.


심각한 후유증을 보니 K가 살아난 게 기적이라는 의사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절감했다.


시어머니는 텃밭에 심은 부추를 베어 다른 찬거리와 함께 목이 꺾일 정도로 이고 왔다.


“정구지는 금방 물릉께 거실에다 신문지 깔고 넓고 얇게 펴 널어라!”


시어머니는 부추를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저녁 숟가락을 놓자마자 실컷 자고 밤중에 일어나 너에게 밤새워 부추를 뒤집으라고 종용했다.


부추!

부추!

끝없이 뒤집어야 하는 부추!


그것으로 모자라 K 관절 운동을 해주면 몸서리를 치며 뜯어말렸다.


“야가 야가 시방 뭔 지랄이랴. 즈 서방 팔다리를 마디마디 비틀어 몽땅 잡아 빼놓고 자빠졌네. 니가 가만히 놔뒀으먼 걸음걸이가 반듯했을 거 아녀?”


시어머니는 이틀에 번씩 와서 장독을 열어보고 잔소리하며 어김없이 부추 다발을 꺼냈다.


너는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

고소공포증 환자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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