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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긴긴 하루

by 글마중 김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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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태도 아름다운 자뻑 3인방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구절초꽃 같은 여인이 찍어 준 사진


2025년 11월 7일 금요일. 아침 식사가 끝남과 동시에 남편 얼굴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씻기고 약을 주고 옷을 입혔다. 11월 3일 양쪽 귀 안에 있는 종양을 수술해서 소독받으러 병원에 가기 위해서다. 급하게 세수하고 화장하는데 남편이 자꾸 아이고. 아이고 비명을 지르며 불렀다.


엄살인 줄 훤히 알면서도 정말 무슨 일 있나 싶어 달려갔다.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소변 통을 들고 한참 있어도 감감무소식!


“오줌 안 마렵지?”

“응!”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다.


“빨리 준비해야 하니까 이제 나 부르지 마!”


뛰어 와 다시 거울 앞에 앉았다. 10시부터 엘리베이터를 점검한다. 휠체어로 이동하는 우리는 엘리베이터 아니면 밖으로 나가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더 바빴다. 남편이 또 불렀다.


들은 척도 안 하고 서둘러 외출 채비를 마쳤다.


아들이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보조기를 신겼다. 9시 50분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휴우- 안도의 숨이 내쉬어졌다.


“어머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웃음과 신경질이 동시에 났다. 파운데이션을 바르다 말아 얼룩덜룩하고 눈썹도 짝짝이였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김밥을 샀다. 우적우적 김밥을 집어먹으며 김밥, 우유, 귤, 바나나로 남편 점심을 준비했다.


“천천히 많이 먹어. 나 연습장 갔다가 장 봐 올게.”


장편소설 출판 지원 응모 준비로 연습장을 계속 결석했다. 운동 부족으로 또 허리 디스크가 오지 않을까 염려돼서 연습장을 결석하면 몹시 불안했다. 운동은 50분만 하고 차를 몰아 농협 마트로 갔다. 달걀 할인하는 날이라 놓칠 수 없었다.


집에 와 보니 남편은 점심을 많이 먹었다. 칭찬하며 장 본 걸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에 넣고 저녁상을 차렸다.


“이따가 저녁도 많이 먹어.”
“어디 간다고 했지?”


며칠 전부터 귀에 못이 박일만큼 말했어도 남편은 기억하지 못한다.


“자뻑 3인방 모임이 있고 협회도 가야 해. 붕대에 손대지 말고 저녁 맛있게 먹어. 갔다 올게!”


오후 3시 30분. 자뻑 3인방은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났다. 6월 중순쯤 만났으니 거의 다섯 달 만이다. 7월에 출간한 책을 이제야 선물했다. 성과 장은 진심으로 축하했다.


목적지는 탑정호 생태공원이었다.


청둥오리가 가끔 떠 있는 호수를 보며 갈대숲길을 걸었다. 취향이 비슷해서 더 좋은 우리는 여유롭고 지극히 행복했다. 며칠 쌀쌀했던 날씨마저 맑고 푸근해서 산책하기 그만이었다.


물 위에 놓인 나무다리 길을 걷는데 해가 마주 보여 주변 풍경 감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둘레 길을 따라 걷다 생태공원 북쪽으로 이동했다. 남편과 자주 왔던 곳이라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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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물멍!


우리는 물멍을 선택했다.


잔잔한 수면 위에 황혼이 잠겨있다. 먼 윤슬이 우리 셋과 같이 설레며 반짝였다.


5시 45분 한기가 느껴져 벤치에서 일어났다.


저녁은 대전에 있는 성의 단골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탑정호에서 돌아오는 길가에 내가 좋아하는 막국수 집이 있었지만, 날씨가 쌀쌀해서 추천하지 않았다.


손두부와 해물전골이 기가 막혔다. 반찬도 얼마나 맛있는지 더 달래서 싹싹 비웠다. 두부 먹으러 문우들과 또 와야겠다. 성과 장이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건 산고 끝의 출산과 마찬가지잖아요. 축하드려요!”


문우들끼리 수없이 책을 그냥 주고받았던 터라 놀랍고, 어줍고, 부담 줬나 미안하고, 기쁘기도 하고 어쩔 줄 모르겠다.


산뜻하고 살뜰하고 즐겁고 맛있었던 만추의 만남이 8시 4분에 끝났다.


부지런히 차를 몰아 협회 사무실로 갔다. 전전날 밤 10시에 긴급회의가 있으니 오후 7시까지 오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약이 있어 8시 넘어 참석한다고는 했지만,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중앙시장에 행사가 있어 타워 주차장 진입을 막았다. 언젠가처럼 안경 가게 주차장을 또 이용하기로 했다.


10시 30분에 회의가 끝났다. 서둘러 안경 가게 주차장으로 갔다.


헉 이럴 수가!


기다란 철주 차단기가 내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전철을 탔다. 자뻑 3인방한테 카톡으로 하소연하며 징징거렸다.


전철역을 나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문드문 낙엽이 쌓인 공원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었다. 생각보다 낭만적이었다.


집이 가까워진다. 남편은 지금쯤 오줌을 싸서 이중깔개와 침대 커버를 흠뻑 적셔 놨을 것이다.


“여보 나왔어!”


남편은 귀에 감겨있는 붕대도 손대지 않았고 깊은 잠에 빠져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


오줌도 싸지 않아 뽀송뽀송했다.


긴긴 하루

해피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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