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이라는 단어에 담긴 책임과 무게

by youth in


'영원'이라는 단어에 담긴 책임과 무게



나이가 들수록 '평생', '영원'이라는 말의 무게와 책임이 와닿는다. 나는 어릴 때에는 내가 영원히 살 수 있을 줄 알았고, 당연히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내 몸에 매일 붙어있던 매일 메던 책가방, 실내화, 양말부터 나와 늘 시간을 보내주던 엄마 아빠, 언니, 예삐, 모래까지. 하지만 늘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책가방은 학년이 지나면서 많은 책들을 담기 위래 점점 낡아졌고, 흰 실내화는 꼬질꼬질 회색으로 덧칠됐으며, 늘 짱짱한 고무줄을 자랑하던 흰 양말도 탄성을 잃어 흐물흐물해져갔다.


그리고 늘 영원할 것 같았던 가족과의 시간도 가끔은 유효기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문득문득 깨닫는다. 부모님의 점점 늘어나는 주름살과 흰 머리, 점점 철이 드는 것만 같은 언니의 모습, 그리고 점점 굽는 예삐의 등과 줄어드는 활동시간에 반비례해서 늘어난 예삐의 수면 시간, 그리고 이제는 희끗한 털이 나고, 예전에 비해 체력이 저하된게 느껴지는 모래까지. (특히 예삐는 최근에 병치레를 했어서 더 생각이 난다.)


작년 사진을 볼 때마다 다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영원이란 것은 없다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는 어릴 때만큼 쉽게 영원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대신 평생이라는 단어로 대체하고는 한다.) 주변을 둘러볼때마다 바뀌는 환경에 영원하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가. 나또한 유통기한처럼 끝이 정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도 은근히 ‘영원한 것’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영원이란 것은 없다고 깨달았을 당시에는 약간 길을 잃은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언젠가 사라질 것들을 늘 소중하게 대해야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실천 중이다. 언젠가는 그리워질 가족과의 식사의 순간, 주말 저녁에 다같이 TV를 보고 웃던 그 순간, 강아지들과 서로 체온을 느끼며 꼬옥 안고 자던 그 순간, 강아지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가족들 다같이 웃으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 그 순간. 유한하고 언젠가는 멈출 것을 알기에 그 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가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살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이제 '영원'이란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영원'이라는 그 말의 무게 덕분에 많은 것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근데 또 은근히 마음 한켠으로는 살면서 영원한 것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영원하지 않아서 오히려 소중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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