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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Nov 17. 2023

수능은 고3을 위한 시험이 아니다.

 갈수록 수능이 어려워지고 있다. 평가원에서는 이번 시험부터는 소위 킬러문항을 배재한다고 발표하였지만, 그만큼 준킬러문항은 많았고 수험생들의 체감 난이도는 상당했던 듯 하다.


 그런데 수능이 어려워지면 재수생보다는 재학생들이 더 힘들어진다. 재학생은 경험이나 짧은 준비기간의 핸디캡 때문에 재수생 대비 중하위권에 위치할 확률이 높은데 중하위권일수록 시험 난이도에 따라 점수 변동폭이 크기 때문이다. 즉 난이도가 너무 올라가면 소위 멘붕(멘탈 붕괴)상태에 빠져 머리가 하얘지거나 제 시간 안에 시험 문제를 다 못푸는 등 자기 실력 발휘를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특히 이번 시험의 경우는 난이도가 올라갈 것이다 이미 예상되고 있었다. '의대열풍' 시대에 정부에서 킬러문항을 없앤다고 발표하니 서울권 대학생들은 '그럼 나도 시험 쳐볼까' 생각하게 되었고 실제 올해는 역대급으로 재수생들 비율이 많았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작년대비 수능응시 재학생 졸업생 비교표


아마 이런 현상은 내년, 내후년도에는 더 심해질 것이다. 정부에서 당분간 의대생을 증원할 것이다 이미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올해 같이 서울권 대학생들의 반수, 재수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고 이들이야말로 소위 '수능대박, 인생역전' 을 기대하는 입장일 것이다.


반대로 수능에서 이렇게 재수생들 비율이 계속 증가하게 되면 고3 현역 아이들의 설 자리는 그만큼 사라지게 된다. 실제 수능을 치르고 온 다음날 우리 학교 아이들의 표정들을 보니 하나 같이 좋지 않았다. 가채점 결과 전교에서 수능 최저를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들 비율은 손에 꼽았고 기대했던 대부분 아이들은 학교를 아예 안 나오거나 수능최저를 하나도 못 맞춰서 대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이고 있었다.


지금같이 의대열풍이 심한 현실에서 소위 상위권 변별을 위해서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내야만 하는 평가원의 입장도 물론 이해는 간다.


하지만 "적어도 고등학교 공교육 과정에 충실하게 접근해 수능 시험문제를 냈다" 는 자화자찬식 발표는 안했으면 좋겠다. 이 말대로라면 수능 시험을 못 본 90% 이상의 고3 현역들은 공교육 과정에 충실하지 않은 소위 낙제생이라는 말이 되니까 말이다.


믿지 못하겠으면 실제 시험문제를 풀어봐라. 20-30년 전에 비해 지문의 길이나 문해력, 문제에 대한 사고의 깊이 등, 언어나 영어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간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요즘은 수능 신청을 해놓고도 그냥 결시하는 아이들 비율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하위권 애들은 빠져 비율상 20-30년 전 대비 1-2등급 받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아는 눈치 빠른 고3 현역들은 아예 수능을 포기하고 수능 최저가 없는 수시전형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 때문에 이번에는 고3 현역들의 수시 면접전형이나 학종이 과열되고 점수가 높아지는 등 소위 풍선효과까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해마다 수능 시험에서 재수생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재수생이 현역에 비해 훨씬 유리하니까 늘어나는 것이다. 좀 더 상위권 대입을 위해, 또 연봉 높은 곳 취업을 위해 재수는 필수가 되어가고 있는 시대. 이게 과연 올바른 교육 현상일까?


정부에서는 학령을 낮춰서라도 어떻게든 사회 진출하는 나이를 낮추려고 하고 있는데 지금 같은 현실은 초중고 12년+@(재수,삼수....)로 학령 기간이 더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나 교육당국은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28년 대입개편안에서 수능에 대한 틀(그냥 선택과목 이전의 수능으로 반동하는 느낌이었다.)은 그대로 유지하겠다 고수하고 있고 아마 향후 적어도 5년 간은 불수능 난이도는 여전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해마다 수능을 앞두고 고3 수험생들에게 "수험생 여러분 수고했습니다. 잘될거에요 수능대박! 화이팅!" 식의 현수막을 학교 앞에 내걸곤 한다. 그런데 그들의 이런 말들은 표심을 기대하는 영혼 없는 문구일 뿐이고 진심으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나 고3 수험생을 생각하는 모습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수능이라는 시험이 탄생한지도 벌써 30년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수능은 갈수록 재수생이나 소수의 최상위권 수험생들을 위한, 즉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으며 고3 현역들의 미응시나 결시비율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차라리 현실이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고3들을 생각한다면, 수능 등급을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이원화시켜 분리 평가하여 대입에 반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니면 정시에서 고3 현역 쿼터제를 실시하여 조금이라도 고3 현역들을 위한 시험이 될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한다.

  

과연 수능은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적어도 지금 수능의 모습은 고3을 위한 시험은 결코 아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변화나 개선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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