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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Jan 03. 2024

마흔 살, 드디어 학교에서 처음 부장을 달다1.

내가 학교에 근무한 지도 벌써 12년.


휴직 기간을 제외하면 매년 담임을 해왔는데 중학교, 고등학교를 넘나들며 중2, 중3, 고1, 고3 등 그동안 다양한 학년을 맡아왔다.


물론 연령대 별로 아이들 특성은 조금씩 달랐다.


 중2는 질풍노도의 시기라 할 만큼 정신없었고, 전달했던 말을 다음날 또 반복해야 되는 학년이었다면(10년 전 일이라 솔직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고1은 이제 첫 고등학생이 된 만큼 신입생 티도 많이 났고, 내신 경쟁 때문에 학기 초 아이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학년이었다.(물론 기말고사쯤 되면 어느 정도 성적 윤곽이 나와서 이런 긴장감은 많이 줄어든다.)


고3은 어떠했나? 흔히들 생각할 땐 수능 준비하랴, 내신 준비하랴, 수시 준비하랴 아이들이 정말 바쁘고 교실 내 긴장감도 많이 흐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선택도 쉽게 하는 만큼 포기하는 속도도 굉장히 빠른 편이다. 고2 말쯤 되면 아이들은 수시로 갈 것인지, 정시로 갈 것인지, 또 어느 대학 어느 학과로 갈 것인지 대충 윤곽을 잡고 과감히 버릴 건 버리고 하나에만 집중해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따라서 고3 교실엔 옛날 같은 긴장감이나 막연한 불안감들은 딱히 없다. 저마다 전자기기에 의지한 채 각개전투를 하는 아이들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학년 아이들의 담임 역할을 해왔음에도 학기말이 되어 아이들을 떠나보내면 내 마음속에는 일종의 허무함자리 잡을 뿐이었다.


이렇게 1년이 또 갔구나.

그래서 뭐? 대체 나는 무엇을 얻었나?

내가 성장하거나 발전한 건 무엇이지?

나이만 한 살 더 먹었지 달라진 게 무엇일까?


이런 마음속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기란 해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누군가는 그래도 아이들을 1년 동안 무사히 교육시켰고, 또 스승과 제자라는 뜻깊은 인연을 맺었으니 그것만으로 된 것이 아니냐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특히 맺고 끊는 게 분명한 요즘 아이, 요즘 학부모일수록 담임 기간이 끝나면 그걸로 끝인 거지 더 이상 따로 볼 사이는 아니었다. 스승과 제자라는 그 아름다운? 인연이 오래도록 지속되고 유지되기도 어려웠다.


내 개인적인 성장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 출결체크 하고, 생활지도 하느라 아이들 혼내고, 수업하고, 시험문제 출제하고, 생기부 입력에 공을 들이고, 1년 동안 그렇게 쉼 없이 달려왔건만 항상 그 마지막은 이제 끝났다는 마침표만 하나 있을 뿐 뭔가 뚜렷이 느낄만한 성취감이나 발전 따위는 없었다.


덤으로 나이만 한 살 더 먹게 되었고 3월이 되면 또 이 같은 쳇바퀴는 다시 또 반복될 뿐이었다. 또 공무원이자 독립적으로 근무하는 교사의 특성상 열심히 산다 해서 남들로부터 뭔가 인정을 받거나 큰 보상을 받기도 어려웠다. 그냥 교사는 교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봤다.


'이대로 또 이렇게 10년을 흘려보내면 어쩌지? 그땐 50대가 될 거고 이젠 학교에서도 고참 취급을 받을 텐데.... 근데 그때까지도 계속 이런 상태면?? 이젠 노땅 취급에 능력 없는 교사로 무시당할지도 몰라. 애들이나 학부모도 마찬가지 시선으로 날 바라볼 테고.'


난 불현듯 위기감을 느꼈다.


'그동안 잘 몰랐는데 너무 주어진 환경 틀에만 갇혀 있었던 것 같아. 타성에 젖어 나이와 시간만 떠나보내고 있었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 변화가 절실했다. 그렇다고 요즘 들불처럼 유행하는 의원면직(퇴사)을 하기엔 식구들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한 가장으로서 부담이 너무 컸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렇게 고민하던 상황 속에 나는 이번 업무분장 때 오래도록 해왔던 담임교사 대신 부장교사를 희망원에 써서 냈다.


그리고 며칠 후 학교로부터 나는 24년도 2학년 부장을 보직으로 덜컥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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