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나는 시험 문제는 어렵게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 글에도 썼듯이 그렇게 해야만이 아이들이 내 수업과 과목을 만만히 보지 않을 것이고, 그만큼 변별력이 확보되어 공정한 시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시험 난이도를 높이니 부작용도 많았다.
우선 중위권 아이들의 좌절감이 심했다. 이 아이들은 평소 올바른 수업태도와 적극적인 수업 참여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공부하는 능력이나 문제푸는 요령이 상위권에 비해 부족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다보니 실제 시험에서는 노력 대비하여 성적이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작품의 처음과 중간이 난해해도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극적이거나 긍정적이면 기본적으로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연극의 경우 마지막에 모든 배우들이 나와서 같이 박수치고 웃으면서 "어때요 즐거우셨나요?" 하며 스스로 자축하는 것도 관객들에게 그런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그런 면에서 과목 수업의 클라이막스라 볼 수 있는 시험이 어렵거나 난해하면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내 수업에 어떤 인상을 갖게 될 것인가? 결국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낸다는 건 소수의 아이들에게만 자신감과 혜택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는 이제는 아이들이 수능이나 정시를 대비하는 경우가 극히 줄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내야 한다는 명분으로 소위 '수능대비' 라는 것이 있었다. 즉 평소 학교 시험을 어렵게 접해야만이 수능대비도 그만큼 수월하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요즘의 수능은 어떤가? 대한민국 전국이 '의대열풍'에 휩싸이고 또 정부는 의대정원을 더 늘릴거라고 예고하다보니 이제는 상위권 학생이나 상위대학을 나왔던 사람들 모두가 수능 시험을 다시 본다고 준비하는 상황이다.
'의사=높은 페이와 우대받는 직업=신분상승' 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보니 더욱더 그런 풍조가 거세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 즉 최대 상위 2-5%를 위한 그들만의 리그이자 경쟁일 뿐 실제 대다수 아이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못한다.
오히려 의사라는 신분상승을 꿈꾸는 과거시험 준비생들이 많아질수록 현역들의 수능 포기는 더욱 심해져서 요즘 일반계 학교는 정시로 대학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현실적으로 좋은 내신 성적을 바탕으로 학종을 노리거나 수능 최저만 맞추는게 요즘 현역들의 전략인데, 이렇게 수능에 관심 없어진 현역들에게 '수능 대비 !, 수능 난이도 !'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 아이들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가 될 뿐이었다.
반면 시험 문제가 쉬워지면 아이들은 그만큼 나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또 그 성취감을 바탕으로 학습에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특히 불규칙적인 도파민 분비로 인해 청소년들은 마치 조울증 걸린 사람처럼 하루에도 기분이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많다. 뭔가 흥미가 있거나 성취감이 느껴지면 금방 동기 부여가 되어 놀랄만한 성장을 보이다가도, 금새 포기모드에 무기력하고 우울한 상태가 되는게 요즘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에게 흥을 북돋아주고 학업에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전략을 쓰는게 올바른 전략이겠는가?
그런 면에서 나는 올해시험을 쉽게 내기로 했다. 물론 너무 성적이 인플레되어 등급 컷이 안나오거나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공정치 못한 시험은 안되도록 최소한의 조치는 할 것이다.
하지만 누이좋고 매부좋고 라는 말처럼 수업이 재미있고 시험에서 문제 맞히는 횟수가 늘어나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껴 그 과목에 친밀감과 좋은 인상을 가질 때 더욱더 학업을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겠는가?
한국에 그런 아이들이 늘어나기를 바래본다. 싫고 힘든 공부가 아니라 배우는 것이 재미있고 도파민 분비가 많이 될 수 있는, 그런 공부를 할 수 있는 아이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