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솔 Oct 02. 2022

동사무소에 들어온 47살 행정직 신규


 공무원 시험 응시생에 대한 나이 상한선 제한은 2009년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그 전까진 9급은 만32세가 넘으면 시험을 볼 수 없었다고 하니, 지금 공무원 조직의 연령비를 생각해보면 꼭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이제 겨우 13년이 지난 일인데도. 


 48살의 일반행정직 신규 분께서 내가 일하던 동사무소에 첫 발령을 받아 오신 적이 있었다. 편의상 이 분을 A라 칭하겠다. 응시연령 제한이 폐지되면서 30대 신규는 넘쳐나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40대부턴 찾아보기 힘들었고, 40대의 신규들도 대부분은 직렬이 사회복지직이었으니 인구 100만 명의 시에도 40대 후반이 행정직 신규로 들어온 건 꽤 놀랄 만한 일이었다. 솔직하게, 나를 비롯한 직원들은 A의 나이를 알게 되고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혹여나 A가 내가 본인보다 어리다고 4개월 선배(!)인 나를 선배 취급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따위의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걱정들은 다 기우였다. A는 동료들에게 나이로 위세를 부리는 일 따윈 하지 않았으며 일도 빨리 배웠다. 사회생활을 한 짬이 이런 데서 나타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엑셀과 컴퓨터를 나보다 훨씬 잘 다뤄 엑셀이라곤 SUM밖에 모르던 나는 A의 능력을 진심으로 존경했었다. 동시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내가 A에 대해 무엇보다 좋게 생각했던 점은 A는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A에게 시간이 많아서? 아니, A에겐 한창 손이 많이 갈 나이라는 초등학생 딸이 있었다. 나와 함께 일했던 당시 A는 '공무원이 왜 그걸 쳐?'싶은 어학시험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A가 말하길 할일이 없으면 축 늘어지고 게을러지는 게 싫어서란다. 와, 그 말을 듣고나니 A가 어떻게 시험에 붙었는지 알겠더라. 


 이건 A가 동네방네 퍼뜨리고 다닌 얘기는 아니고 나와 둘만 있을 때 해준 얘기인데(죄송합니다, A.) A는 앞서 말했듯 꾸준히 무언가를 공부하는 사람이었고 영어야 워낙에 자신있었으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데에도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한다. A를 보며 나는 진심으로 공부를 놓지 않는다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를 알게되었다. A의 존재 자체가 나에겐 신선하고 동기가 부여되는 자극이었다. 


 


  

 이렇게 A의 칭찬을 열심히 늘어놓았지만 사실 A와 나는 계속 친하게 지내다가 막판에 조금 관계가 틀어져 일을 그만둔 후, A와 끝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단 이유로 A에게 쌀쌀맞게 군 게 주된 이유인 것 같아 많이 후회가 된다. 연락을 취해보았으나 답이 없어 사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A에겐 내가 비록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을지라도, 나는 A를 진심으로 존경했고 지금도 존경하고 있다는 걸 꼭 얘기하고 싶다. 내 삶에 거창한 목표는 없고 그저 A처럼 꾸준히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A가 누군가에게 길을 제시해준 사람이란 것을, 내 욕심일지라도 A가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폭우가 내린 날에 짬뽕밥에 밥이 없다고 화내던 그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