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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솔 Dec 11. 2022

지방직 공무원 의원면직 1년 후의 일상



 몇 달 동안 브런치를 방치했네요. 그간 몸이 아팠다거나,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거나 하는 사정이 있던 것은 다행히도 전혀 아닙니다. ㅎㅎ


 그렇다면 왜 글을 올리지 않았느냐. 표면적인 이유는 소재가 떨어져서이지만(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글을 쓰기가 부담스럽더라구요.) 근본적인 이유는 제가 아무리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해도 '정년보장'이라는 가치를 이길 수 있는 장점은 없다는 오지랖을 들을까봐 두려워서였던 것 같아요. 저는 정말 만족스러워서 만족스럽다고 하는 건데, 누군가에겐 저의 행복이 정신 승리로 비칠 수 있을 테니까요.


 이게 아무 건덕지도 없는데 혼자서 피해망상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실제로 저의 의원면직이 처리되기 하루 전, 부푼 마음으로 미래계획을 이것저것 늘어놓던 제게 같은 과의 8급 주사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딜 가든) 다 똑같다."


 이후로 저는 지금의 회사생활이 정말 만족스러워도 마음 깊숙한 곳에선 위의 말이 자동 재생되어 스스로를 수천번 수만번 검열해왔습니다.


 정말 다 똑같나? 다 똑같은데 내가 다른 사람에게 초라해보이기 싫어 무리를 하는 건가?


 도합 수만번 자문자답을 해온 결과, 지금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고통의 총량은 똑같을지 몰라도 고통의 종류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요. 그리고 저는 지금 공무원이어서 얻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그 자체에 만족한다고요.





1. 공무원보다는 많이 벌자!


 제 브런치에 구구절절 털어놓은 얘기여서 더 말을 얹진 않겠지만, 제가 공무원을 그만둘 때 각각의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가스라이팅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결심했습니다. '내가 공무원보다는 돈을 더 많이 벌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목표는 이루었습니다. (사실 서울에 위치한 사기업의 직장인이 9급 공무원보다 못 벌기가 어렵겠지만요. ^^;;;) 엄청 잘 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무원일 때보단 잘 벌고, 워라밸은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언젠가는 연봉을 당당히 밝힐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버는 날도 오리라 믿으며!

 

 그렇지만 저는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고 평생 소득을 보면 공무원이 회사원보다 낫다는 등의 논리에 저는 또 다시 의기소침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능력을 키워서 내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게 정말 행복합니다.



2. 비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돌이켜보면 저는 공무원으로 일했을 때 저의 외모와 학벌에 대해 아주 큰 스트레스를 받았었습니다. 20대 초반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들에 20대 후반이 되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참 우습고 철이 없어 보이지만, 그곳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좀 잊을 만하면 나의 외모와 학벌을 후려치는(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과 맞닥뜨렸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제가 바꿀 수 없는 거잖아요. 물론 20대 후반인 지금 다시 수능을 봐서 대학을 갈 수도 있겠고, 몇천을 들여 얼굴을 뒤엎을 수도 있겠지만 학벌을 세탁하고 성형수술을 하면 나는 행복해졌을까요?


 그렇지 않겠죠. 그럼에도 환경이란 게, 참 그랬습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을 싫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닙니다. 물론 흔한 대한민국 여자로서 외모나 학벌 콤플렉스가 아예 없지는 않죠. 그렇지만 경력을 쌓고 연봉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이럴 시간에 영어공부나 한 자 더 하자!' 모드로 금세 회귀하게 됩니다.  



3. 아버지와 사이가 좋아졌다.


 이 문장을 쓰고나니 저에게 '너 공무원 그만두면 이제 엄마아빠 얼굴 어떻게 볼래?'라고 묻던 분이 떠오르네요.


 이 이야기는 핵심이 아니니 자세히 풀진 않겠고 또 그럴 생각도 없지만, 저는 어린시절에 아버지 때문에 불행했고 외로웠습니다. 제가 공무원을 그만두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저에게 그릇을 던지시더라고요. (어떤 아버지였는지 다들 아시겠죠?)


 아무튼 저는 굴하지 않고 면직을 했고 평생을 착하게 살아온 딸의 생애 첫 반항에 아버지는 느낀 점이 많으셨는지 이제는 저에게 죄책감을 갖게 하는 언행들을 일절 하지 않으십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네요.


 공무원 그만두니까 엄마아빠 얼굴 더 잘 보는 저 같은 집도 있습니다. 적으면 적을수록 더더욱, 저는 공무원이라면 응당 지녀야하는 '정상성'과는 맞지 않던 사람이란 생각이 드네요.





 이 글을 쓰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공무원과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라는 고백은 제가 아무리 주의해봤자 공무원의 단점을 토로하는 논조로 진행될 테니까요. 저는 여전히 공무원이 유일무이한 장점을 지닌 좋은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저처럼 '모났는데 만만한 돌'은 민원인보다 동료들에게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저도 정말 어딜 가든 똑같을 줄 알았거든요. 어딜 가든 성취욕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주어진 일만, 초면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서로서로 다 까야하고, 동장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피해자인 제가 동장님 좋은 사람인데 방법이 조금 잘못됐을 뿐이라는 충고를 들어야 하는... (실화입니다.) 어딜 가든 이런 일을 피할 수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닌 곳이 있더라구요. 제가 산증인입니다.


 언젠가는 위와 같은 일을 다시 겪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의 세상이 끝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체감한 사람입니다. 이 경험은 앞으로의 제 삶에 아주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주리라는 걸 압니다.


 미래는 불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니고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나면, 동네를 한 바퀴 뛰고오려고 합니다. 여자는 체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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