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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푸름 May 16. 2021

판타지, 미래, 예술, 기술

SF2021: 판타지 오디세이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SF2021: 판타지 오디세이


SF2021: 판타지 오디세이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SF(Science Fiction)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SF2021: 판타지 오디세이]가 진행 중입니다! 열네 명의 국내외 작가가 참여하였으며, 2021년 5월 30일까지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회화, 문학, 영상, 조각, 설치, 음성 그리고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작품들이 전시실을 가득 채웁니다. 특히 호흡이 긴 영상 작품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모든 작품을 제대로 한 번씩 감상하자면 총 관람 시간은 4~5시간 정도가 되는 것 같네요.


 뛰어난 작가들의 미래에 대한 통찰 그리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한 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2021년 최고의 전시 중 하나로 남지 않을까 싶네요. 적어도 올해 현재까지 다녀온 11개의 전시 중에서는 최고의 전시였습니다.


 지금부터는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위주로 여러분께 간단한 해설을 진행해드리려 합니다. 개인적인 해석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글에 포함되지 않은 훌륭한 작품들 역시 전시실에서 감상할 수 있으니, 전시가 끝나기 전까지 꼭 한 번 시간 내어 방문해 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글과 그림이 얽히여 – 김보영&구현성 작가


 SF 소설 좋아하시나요? 그렇다면 이미 이번 전시에 방문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부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거쳐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까지, 반가운 제목들을 마주하실 수 있을 겁니다.


 본 전시의 새로운 점은 이처럼 반가운 텍스트와 그 텍스트를 재해석한 그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이번 도슨트에서는 김보영 작가의 텍스트와 구현성 작가의 재해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판타지 오디세이 온라인 전시실


 김보영 작가는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기념비적 SF 텍스트 25개를 추출하여 여섯 개의 주제로 구체화했습니다. 그 여섯 개의 주제는 바로 ‘장밋빛 전망’, ‘경고’, ‘사회비판’, ‘소외된 자들’, ‘모험’, ‘새로운 세상’이지요.


 오프라인 전시실에서는 25개의 텍스트 중 6개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텍스트는 판타지 오디세이 온라인 전시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시실에 전시된 6개의 텍스트는 구현성 작가가 텍스트를 '만화'로 재구성하기 위해 선택한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김보영 <세계를 바꾸는 문장들> 중 '모험', 구현성 [Co(s)mic Narration]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보면 확인해 볼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일반적인 만화의 모양새를 하고 있진 않습니다. 구현성 작가는 기존 만화의 규칙 즉 ‘칸과 홈통’, ‘만화적 장르’, ‘페이지의 개념’, ‘상징성’, ‘말풍선’, ‘읽는 방식’에 변화를 주며 ‘실험만화’라는 신선한 장르를 선보입니다. 더 쉬운 이해를 위하여 구체적인 작품을 함께 살펴봅시다.


김보영 <세계를 바꾸는 문장들> 중 '장밋빛 전망' & 구현성 [Living F(r,l)ame]


 김보영 작가는 ‘장밋빛 전망’ 주제의 텍스트 중 하나로 『해저 2만리』를 선정합니다. 그는 작중 “끊임없이 눈앞에 전개되는 광경에 싫증이 나기는 어려울 겁니다. 나는 새로운 해저 세계일주를 시작하려는 참입니다. 일찍이 어떤 인간도 – 물론 나와 내 부하들은 빼고 – 본 적이 없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구는 내 노력을 통해서 그 마지막 비밀을 드러낼 겁니다.” 부분을 인용하지요.


 사진 속에 보이는 강렬한 그림은 구현성 작가가 그 텍스트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림 속 하얀 글씨가 보이시나요? 그것을 읽어보면 김보영 작가가 가져온 위의 문장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그림은 텍스트를 텍스트와 그림이 함께 있는 것인 ‘만화’로 재구성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을 ‘만화’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한 점이 있습니다. 보통 만화는 ‘칸’ 안에 그림과 대사가 들어 있고 칸 밖의 여백인 ‘홈통’은 그 칸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만화’는 그러한 ‘칸과 홈통’의 규칙이 지켜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림의 왼쪽 위를 바라봐 주세요. 정사각형 모양의 ‘칸’이 보이시나요? 다음, 그 칸보다 약간 오른쪽 아래에 있는 칸으로 시선을 돌려 보면, 칸에 불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다음, 그림의 중앙에 있는 위아래로 길쭉한 칸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네요. 캔버스 오른쪽 아래에 있는 그다음 칸은 다 타버린 부분은 재가 되어 칸에서 떨어져 나갔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원래는 칸에 갇혀 있어야 할 그림과 대사들이, 작가가 불을 붙였기에 타버린 칸에서 생긴 틈으로 탈출하여 원래 그들의 자리가 아니었던 여백까지 그들의 자리로 차지해버린 것입니다. 마치 쥘 베른의 SF소설 텍스트에서 인간이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며, 인간의 자리가 아니었던 ‘해저 2만리’까지 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김보영 <세계를 바꾸는 문장들> 중 '소외된 자들' & 구현성 [Just(ice) Blood]


 이처럼 텍스트 자체의 서사, 그림의 서사, 그리고 만화적 규칙을 파괴함으로써 생성된 제3의 서사가 한 데에 어우러집니다. 김보영 작가의 텍스트와 구현성 작가의 재해석이 공존하는 여섯 작품 모두에서 이처럼 신선한 구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암세포가 되시겠습니까, 갑각류가 되시겠습니까? – 장서영 작가


 저에게 [SF2021: 판타지 오디세이]는 정말 인상 깊었던 전시였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딱 하나만 꼽아 보라고 한다면 저는 장서영 작가의 ‘세계의 껍질 우주의 뼈’였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장서영 <세계의 껍질 우주의 뼈>


 장서영 작가의 ‘세계의 껍질 우주의 뼈’는 15분 정도 길이의 영상 예술 작품입니다. 영상에는 세 주인공이 등장하는데요, 하나는 암세포, 하나는 인간 마젤란, 하나는 갑각류입니다.


 암세포는 유한한 신체 속에서 무한히 분열하려 합니다. 마젤란은 인류 최초로 지구일주를 지휘하며, 비록 그 자신은 일주의 마무리를 보지 못하였지만, 지구가 유한한 공간이라는 것을 인류에 각인시켜준 사람이었죠. 갑각류 역시 유한한 껍질 속에서 살점의 크기를 불리며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암세포, 인간, 갑각류 모두 성장하기 위하여 그들의 개체 수를, 그들의 영역을, 그들의 몸집을 끊임없이 늘려나갑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성장은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 ‘아포칼립스’를 가져옵니다.


 영상 속에는 ‘암세포 입장에서는 자기가 세계의 종말을 초래했다는 자각이 있을까요?’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러게요. 암세포는 무한히 성장하려 합니다. 자기 자신부터가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데, 그 자신이 살고 있는 ‘신체’라는 세계가 유한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라도 있을까요? 세계도 ‘당연히’ 무한할 것이라고 여기며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들의 무한한 성장이 결국엔 그들 세계의 멸망을 가져온다는 것을, 그래서 결국에는 자신들의 절멸 역시 부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무한히 성장하려 할까요? 여기에 대하여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암세포가 아니니까요.


 갑각류의 껍질 속 살점 입장에서는 그의 성장이 그가 안전히 살 수 있는 공간을 ‘살지 못할 만한 곳’이 되게끔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을까요? 역시 우리는 갑각류의 세포가 아니기에 대답할 수 없죠. 그러나 갑각류는 그의 공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정도로 성장하면 ‘탈피’를 합니다. 그들의 약한 살점을 이끌고 더는 살 수 없게 되어버린 ‘옛 껍데기’로부터 벗어나지요. 비록 탈피 직후에는 아주 취약한 존재가 되지만,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성장을 감당해낼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것을 보면 그들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성장만을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장서영 <세계의 껍질 우주의 뼈>


 제가 다음으로 건네드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여러분도 대답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대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의 책임이 묶여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그의 개체 수가 늘어난 것이, 그의 영역이 늘어난 것이, 그의 몸집이 커진 것이, 즉 그의 성장이 적어도 아직은 그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지구’를, ‘살지 못할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현재 인류는 그들의 ‘성장 위주 사고’가 야기한 큰 재앙인 ‘기후 위기’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암세포는 자신의 성장이 초래한 자신의 우주의 종말로부터 달아나지 못합니다. 갑각류는 어느 정도의 성장이 이루어지면 탈피하여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냅니다. 인간은 그의 성장이 만들어 낸 재앙과 함께 멸망을 맞이하는 암세포가 될까요, 재앙으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이 성장하는 갑각류가 될까요. 혹은 욕심을 버리고 성장의 속도를 늦추게 될까요. 인류가 새로운 껍질, 새로운 삶의 공간을 찾을 수 있게 될 때까지요.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우리는 인류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놓아야만 하는 시대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장서영 <세계의 껍질 우주의 뼈>, <탈피>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영상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의 모양 역시 독특했다는 것입니다.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소리와 함께 영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과 연결된 내용을 가진 ‘탈피’라는 작품과도 감상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요.




1:1 맞춤 실시간 참여 작품 – 최윤 작가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매력점은 작품의 패러다임 자체가 다른 작품을 감상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는데요, 바로 최윤의 ‘둠즈데이 오디오’가 그것입니다. 작품의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작품의 전달 매체는 ‘오디오’입니다. 작품이 ‘음성’으로 진행된다는 것까지는 그리 새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 ‘음성’이 ‘전화’의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최윤 <둠즈데이 오디오>


 전시실을 지나치다 보면 조금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비장한 글씨체로 쓰인 ‘둠즈데이 오디오’ 간판이 보입니다. 그 간판의 왼쪽 아래에는 ‘선언/만남/경보/환청/항해/상담원/음성사서함’이라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는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네요. 오른쪽 아래에는 한 번 더 뜬금없이 전화번호가 쓰여 있습니다. 이곳에 전화를 걺과 함께, 작품 진행이 시작됩니다.



 전화를 걸면 자동응답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목소리는 당신에게 항해를 떠나겠냐고 물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1부터 0까지 모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지요.



 그렇게 저는 자동응답기의 요구대로 1, 2, 3, 4, 5, 0번을 모두 체험해 보았습니다. 구체적인 전화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막기 위하여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을 체험하는 내내 작품의 새로운 전달 방식에, 작가가 작품에 담고자 한 내용에, 그리고 중간중간 발랄한 목소리로 튀어 나왔던 “그리고 사기꾼을 조심하세요!”와 같은 말에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1:1로 진행되는 작품도,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작품도,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작품도 모두 체험해 보았지만, 세 특성이 모두 한데 어우러진 작품은 이 ‘둠즈데이 오디오’가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전화를 걸면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인 만큼, 전시장에 있지 않아도 전화번호만 알고 있다면 작품을 체험하실 순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꼭 한 번 전시실에 방문하셔서 미술관의 분위기와 함께 작품과 소통해보시길 바랍니다. 또 동일 작가의 영상 위주 작품인 ‘둠즈데이 비디오’ 역시 전시실에서 접해보실 수 있으니까요!


루시 매크래 <고립 연구소> 중


 지금까지 [SF2021: 판타지 오디세이]에서 꼭 소개해드리고 싶었던 작가와 작품을 해설해드렸습니다. 이와 같이 흥미로운 작품들이 전시실의 시작부터 끝까지 줄지어 있는 전시이니, 여러분도 직접 방문하여 작품을 감상해보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특히 루시 매크래(Lucy McRae) 작가의 두 영상 작품은 꼭 시간을 투자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5월 30일까지, 예약이 필요하지만. 당일 예약도 가능합니다. 입장료도 무료이니 놓치지 말고 꼭 방문해 보세요! 지금까지 [도슨트 by 푸름], 푸름이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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