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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푸름 Jul 20. 2021

가상여행기: 베니스에서 볕을 안아.

라울 뒤피 <베니스, 세관의 끝부분>

 하늘은 너무나도 맑은 나머지 태양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아니 애초에 태양은 보고 싶지 않았다. 태양은 모두가 아는 얼굴이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의 생김새를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지만. 물론 그마저도 나의 도시 서울에서는 겹겹이 쌓인 날카롭고 시뿌연 먼지에 가려져 더욱 추상적으로 보이곤 한다. 이러나저러나, 이곳에서까지 태양에 매달리는 것은 시간 낭비인 것만 같았다.


라울 뒤피 Raul Dufy, <베니스, 세관의 끝부분 La pointe de la douane, Venise>


 그래서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볕이다. 혹자는 태양과 볕이 무엇이 다르냐고 물을 수 있지만 둘은 분명 분리되어 있다. 태양은 바라볼 수 없지만, 볕은 나에게로 와 따스히 안긴다. 물론 너무 오랫동안 그와 함께하려 한다면 따갑게 아파올 테지만. 그리고 볕에 비친 모든 것들은 나와 함께 숨을 쉰다.


 태양, 볕, 볕에 비친 모든 존재. 셋은 분리된 동시에 하나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그리스도교를 공부한 적이 있다. 신, 마리아, 예수. 나는 세 존재를 태양, 볕, 그리고 볕에 비친 모든 것들로 이해하였다. 태양은 지구 위 모든 것의 시작이지만, 그는 인간이 고개를 치켜들고 그의 얼굴을 노려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볕은 그를 입은 모든 것들이 존재할 수 있게끔 하였다. 그리고 볕에 비친 모든 것들은 나와 함께 숨을 쉬었다. 그들은 셋인 동시에 하나였다.


 때마침 지금 내 시야에 들어와 있는 것 역시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건물이라고 한다. 베네치아 공국을 흑사병으로부터 구원해준 성모 마리아에 바치며. 건물 이름도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이다. 발다사레 롱게나라는 건축가가 지금 나의 눈앞, 볕에 휩싸여 있는 이 건물을 설계했다고 한다. 무명이었던 그는 ‘성모 마리아를 위한 건축 공모전’에 설계도를 제출하였는데, 다른 유명 건축가들을 제치고 그의 설계도가 선정되었다.


 중학교 수업 시간에 지중해 지역의 날씨에 관하여 배운 적이 있다. 지중해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과는 다르다고 배웠다. 그곳의 여름은 ‘고온건조’함을 암기하였다. 습하지 않은 더움이라니,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 날씨가 나의 살결에 전달하는 것은,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에 코웃음을 치던 나였지만, 지중해의 고온건조는 나의 코웃음에 코웃음을 선물했다. 나는 나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깨끗한 뜨거움. 이대로 계속 볕을 쏘인다면 살갗이 다 타버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볕이 살결에 닿는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기에. 심지어 한국에서는 당연시되는, 여름의 쨍한 볕이 달갑지만은 않게 하는 습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에. 이런 여름이라면 일 년 내내 맞이하여도 좋을 것만 같다.


 볕에 비친 모든 것은 나와 함께 숨을 쉰다. 그래서 지금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이곳의 옥빛 바다이다. 강이라고 해야 하나.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서부터 강일까. ‘부터’라는 조사는 강에 어울리는 것일까 바다에 어울리는 것일까. 이곳에 강인 부분이 있기는 할까? 아무런 정보 없이 사진 한 장 보고 달려왔던 곳이기에, 나는 이 도시의 지리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바닷가에 살지 않는 한 대부분에게는 해수보다 담수가 더 친숙할 것이다. 애초에 바닷물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아니다. 그 물은 너무나도 짜디짠 나머지 인간의 신체에는 해롭기까지도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바닷물 없이는 인간의 신체에 필수적인 담수도 존재할 수 없다.


 바다는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보다도 훨씬 많은 탄소를 품고 있다. 아마존의 정화 작용도, 바다 앞에서는 초라한 것이 된다. 바다 없이는 지구 위에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사람들은 왜 쓸모없는 바다가 인간이 그 위에 살 수 있는 육지보다 훨씬 넓은 것이냐며 불평하곤 하지만, 바다가 지구에 누워있을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하면 부족했지, 과하지는 않았다. 나는 '부터'라는 조사를 바다가 아닌 강에 붙인 것에 안도감의 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생각에 잠기려던 차, 이번 여행의 목적은 생각을 비우기 위함에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만두자.' 나는 옥빛 바다를 눈에 담으며 햇살을 껴안았다. 배가 선착장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 발걸음은 따사로운 볕에 안겨 있는 저 성당으로 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작품 정보

라울 뒤피 Raul Dufy, <베니스, 세관의 끝부분 La pointe de la douane, Venise>, 1938, gouache o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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