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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푸름 Jul 21. 2021

보내지 못한 편지: 생일 축하해, 오늘은 네 기일이잖아

낸 골딘 <오렐의 담뱃불을 붙이는 루>

 잘 지내? 마음속에는 기일을 정해 놓았으면서 대뜸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참 못된 짓일 순 있겠다. 그렇지만 마음속 기일은 마음속 기일인 거고, 오늘은 너의 생일이잖아. 네가 나로부터 떠났다는 게, 네가 세상에 내려앉은 사건을 무를 수 있게 해주는 건 아니니까. 마음속 기일은 내가 제멋대로 정해버린 거지만, 너의 생일은 네가 제멋대로 정해버린 거잖아.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너의 생일을 축하할 수밖에 없는 거야.


낸 골딘(Nan Goldin), <아렐의 담뱃불을 붙이는 루 Lou lighting Aurele’s cigarette, Sag Harbour>, 2000


 한 번은 사람들의 생일마저도 내 멋대로 정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렇다면 나는 사람들의 생일을, 내 마음속 기일과 같은 날짜로 움직여버렸을 거야. 어차피 누구든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가게끔 되어 있고, 응, 너는 그저 조금 빨랐을 뿐인 거거든. 그런데 있잖아, 조금 빠른 것과 조금 느린 것은 사실 전부인 것 같아. 내 삶이 조금 빠르게 흘러갈지 조금 느리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생일 축하해. 갑작스럽게 네가 담배를 피우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 우리는 우리 손에 담배를 쥘 자격이 부여되는 시점보다 이르게 갈라서버렸잖아. 우리가 담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의미가 없는 주제였으니 나눌 필요는 없었겠지. 아마 담배 연기가 보일 때면, 내가 얼굴을 많이 찡그리는 걸 보고 네가 넘겨짚었던 것이 전부였을 거야. 그런데 나누었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었을 것 같아. ‘애들 너무 싫어’라고 말했던 친구는 교대에 갔고 ‘탈한국’을 외치던 친구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손에 쥘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지면 우리의 태도는 바뀌게 되는 것 같아. 아는 것과 감각할 수 있는 것 간의 괴리. 우리는 어떻게든 그걸 극복해야만 하잖아.


 결국에는 네가 시계를 돌리고 싶어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 그렇지만 도망쳤던 건 내가 아니라 너였잖아. 그래서 네가 나를 그릴 수 있는 방법은 담뱃불밖에 없었을 것이리라는 억측을 얹어보았어. 그래서 너는 담배에 손을 뻗고야 말았을 것이라고. 그럼 나는 너의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고야 말았을 것이라고. 그게 내가 너를 내 마음속에서 토해낸 방법이야. 내가 아는 것과 내가 맞닥뜨린 사이에 괴리가 생겼잖아.


 사람들의 생일은 내 멋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나도 피해 갈 수 없었어. 그래서 나는 그냥 사람들의 기일을 사람들의 생일 쪽으로 옮기며 살아가기로 했어. 그럼 결국 나는 사람들의 생일을 내 멋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거잖아.


 아무튼, 생일은 축하해 오늘은 너의 기일이잖아. 그런데 올해 나는 너에게 촛불이 아니라 담뱃불을 붙여주고 싶어. 마지막까지 제멋대로여서 미안해.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작품 정보

낸 골딘 Nan Goldin - <오렐의 담뱃불을 붙이는 루, 새그 항만에서 Lou lighting Aurele’s cigarette, Sag Harbour>, 2000,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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