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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Jul 03. 2023

갓3

- 동부여(동예)의 토박이 말 이름, 가시라 -

  유창균은 《문자 속에 숨겨진 민족의 연원》에서 한자의 뿌리가 되는 ‘갑골문자’는 동이족이 만들었으며, 동이족의 말소리(뜻을 적은 글자가 아니라)를 적었던 문자라고 주장한다. 이제껏 갑골문자가 말뜻을 적은 문자였다는 종래의 주장을 단박에 깨뜨린다. 그는 우리 민족의 근원이 ‘예(濊)’라는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한자 ‘예(濊)’가 ‘가시’라는 우리말의 소리를 적은 것임을 밝혀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강원도는 본래 예(濊)·맥(貊)의 땅이었으나, 뒤에 고구려와 신라의 소유가 되었다고 했고, 명주(溟洲)는 본래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으로서, 하슬라(何瑟羅)로 적기도 하는데, 뒤에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동국여지승람》에서는 강릉대도호부는 본래는 예국(濊國)으로 달리 철국(鐵國), 예국(蘂國)이라고도 하는데, 고구려에 들어와 하서량(河西良)·하슬라주(何瑟羅州)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서량(河西良)·하슬라(何瑟羅)는 같은 땅 이름을 다르게 적은 것으로, 예(濊)의 가장 이른 시기의 소리(초음)를 짐작하게 해준다. 하(河)와 하(何)는 다 같이 가(可)를 음부로 하는 글자이므로, 음부를 기준으로 그 소리를 ‘가ㄹ(gar)’로 유추할 수 있다. 서(西)와 슬(瑟)은 ‘서ㄹ(ser)’와 같은 등가음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고, 량(良)은 라(羅)와 함께 ‘라(la)’로 추정할 수 있는데, 땅(地)을 뜻하는 접미사다. 

  동부여의 도읍지로 알려진 가섭원(迦葉原) 역시 하서량(河西良)을 다르게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따르면 가섭원은 동해의 물가라 했으니 하서량과 가깝고, 《동환록》에서는 바로 하서량의 음전이라고 했다. 가(迦)는 ka로 추정되고, 섭(葉)의 초음이 서(西)나 슬(瑟)의 초음과 유사하며, 원(原)은 ‘버ㄹ(per)’이므로, 가섭원(迦葉原)은 곧 ‘가시벌’이 다. 가섭원은 동부여의 도읍지였고, ‘가시라’는 ‘예(濊)’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여기서 우리는 부여족과 예족이 동일 종족의 다른 이름인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지명에 강원(橿原)이란 곳이 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초대 신무왕이 즉위했다는 전설의 땅이다. 여기에서 강(橿)은 일본어 kasi, 원(原)은 para이니, 강원(橿原)은 일본말로 ‘가시바라’다. 일인들이 강(橿)을 ‘가시’라 한 것은 아마도 예(濊)의 ‘가사(gasar)’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한다. 여러 사전에 이르기를 강(橿)은 곧 단(檀)이니, 신무왕(전설의 왕) 역시 예족의 신성한 혈통을 높이 사서 자신도 단군(檀君)의 후예임을 표명하고자 ‘가시바라’에서 즉위했다고 하지 않았을까? 

  아사달(阿斯達)의 阿는 현대음이 ‘아’지만, 음부가 가(可)이므로, 초음을 감안해서 ‘아사달’이 아니라 ‘가사달(gasardal)’로 읽어야 옳다. 따라서 阿斯는 당연히 아침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예(濊)를 나타낸 것이 된다. 달(達)은 산(山)이니, 阿斯達(가사달)은 곧 예산(濊山)을 가리킨다. 

  거서간(居西干)은 예왕(濊王)이란 뜻이다. 거서(居西)는 가사(gasar)로 재구되고, 간(干)은 왕(王)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 거서간(居西干)은 거슬한(居瑟邯)으로도 썼는데, 거슬(居瑟)은 거서(居西)에 대응되고, 한(邯)은 간(干)에 대응되니, 거슬한(居瑟邯) 또한 예왕(濊王)이란 뜻이다. 《삼국사기》는 거서간(居西干)이 혁거세를 가리키는 왕호라고 적고 있으나, 《삼국유사》에는 제2대 남해 차차웅도 남해 거서간이라고 한 점을 미루어, 신라 왕족은 예족의 혈통 의식을 지니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濊) 겨레를 나타낸 글자 중에 예로 소리 나는 글자만 뽑아보면 獩, 濊, 穢, 薉 정도이다. 음부는 모두 세(歲)로 당대의 소리는 ‘가사(gasar)’로 같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뜻을 나타내는 부수에 따라서 해당하는 겨레의 특징을 달리 드러낼 뿐이다. 문헌에 나타난 것을 바탕으로 시대순으로 나열해보면 獩 > 濊 > 穢 > 薉 과 같다.

  獩는 견(犬)자를 부수를 취하니 개와 함께 사냥을 했거나 개와 같은 가축을 기르며 북방에서 살았던 겨레다. 북적(北狄)이란 말에서도 이는 잘 증명된다. 濊는 강이나 바다를 근거로 생활하면서 물을 다룰 줄 아는 민족이었을 것이다. 고려 시대로 치면 명주로서 강릉과 삼척은 물론 포항에 이르기까지 남하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穢는 화(禾) 부수가 말해주듯이 농업 문명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薉는 초(草) 부수가 지닌 의미가 화(禾)와 비슷하니 穢와 같은 겨레를 가리키나, 이민족들이 穢를 낮추어 보려고 붙인 이름인 듯하다. 이 글자들의 뜻이 하나같이 ‘더럽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개, 물, 벼, 풀이 어떻게 더러움과 필연적인 연관이 있겠는가? 이는 필시 중국 사람들이 제 힘으로 겨루기에 힘겨웠던 ‘가시 겨레’를 얕잡아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 쓴 글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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