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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Feb 22. 2024

부음

-  덕수를 보내며 -

비오는 겨울 끝자락

여행에서 돌아올 식구를 기다리는 사이

오랜 옛 벗이 돌아가버렸다


부음 소리에

내리던 비 잠시 멈추는 듯

얼간이마냥 멍한 채로

어,어, 라는 헛소리만 더듬거리다


이제 못 보겠구나 너는...

먼저 출발했구나 미국에서...

찬송가 그리 불러쌓더니 참 서둘러도 갔다


언제쯤에나 난

너의 천국에 닿을 수 있을까

우리 또 만나기는 할까

너의 낯빛, 수수히 떠오르네


우루루 우박 쏟아진다

나이 예순도 못 채운 놈의 아린 혼이

놀라는 소리인지, 서러워하는 소리인지


이왕 갈 거라면

덕수야


파랑개며 설리포며

모래목 새밭금 몽돌밭이며

논아래 오가며

옷에 밴 갯내음도 다 가지고 가라


부뚜막 같던 학교 풍경이며

쫑알대던 잡담들이며

짓궂은 장난짓도 죄 넣어가고

사택에 놀러 다니던 추억들까지 꼭꼭 챙겨서 가라


둘만 있어도 좋았던

중학시절과 그토록 서로를 그리워하던 청년 시절의 기억, 산더미처럼 쌓여가던 편지들과 그 많던 사연...

어른 되어 와르르 다 무너졌어도

우리는...여전히... 친구지


열일곱 살의 남항 방파제와

스무 살의 부산 자갈치 시장이랑

스물세 살 먹은 해

포천군 일동면 어느 부대에서의

어긋난 면회 들이

우리가 친구임을 증명해 주는데...

아, 너는 벌써 돌아갔구나

레테의 강을 건너가 버렸구나


그래도 친구 하자

친구로 남기로 하자

머지 않아 내 돌아가는 날

거기서도 옛날처럼

친구로 지내자


그러고 보니

오늘은 네가

마지막 숨을 내쉬었을

발렌타인 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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