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겨울 끝자락
여행에서 돌아올 식구를 기다리는 사이
오랜 옛 벗이 돌아가버렸다
부음 소리에
내리던 비 잠시 멈추는 듯
얼간이마냥 멍한 채로
어,어, 라는 헛소리만 더듬거리다
이제 못 보겠구나 너는...
먼저 출발했구나 미국에서...
찬송가 그리 불러쌓더니 참 서둘러도 갔다
언제쯤에나 난
너의 천국에 닿을 수 있을까
우리 또 만나기는 할까
너의 낯빛, 수수히 떠오르네
우루루 우박 쏟아진다
나이 예순도 못 채운 놈의 아린 혼이
놀라는 소리인지, 서러워하는 소리인지
이왕 갈 거라면
덕수야
파랑개며 설리포며
모래목 새밭금 몽돌밭이며
논아래 오가며
옷에 밴 갯내음도 다 가지고 가라
부뚜막 같던 학교 풍경이며
쫑알대던 잡담들이며
짓궂은 장난짓도 죄 넣어가고
사택에 놀러 다니던 추억들까지 꼭꼭 챙겨서 가라
둘만 있어도 좋았던
중학시절과 그토록 서로를 그리워하던 청년 시절의 기억, 산더미처럼 쌓여가던 편지들과 그 많던 사연...
어른 되어 와르르 다 무너졌어도
우리는...여전히... 친구지
열일곱 살의 남항 방파제와
스무 살의 부산 자갈치 시장이랑
스물세 살 먹은 해
포천군 일동면 어느 부대에서의
어긋난 면회 들이
우리가 친구임을 증명해 주는데...
아, 너는 벌써 돌아갔구나
레테의 강을 건너가 버렸구나
그래도 친구 하자
친구로 남기로 하자
머지 않아 내 돌아가는 날
거기서도 옛날처럼
친구로 지내자
그러고 보니
오늘은 네가
마지막 숨을 내쉬었을
발렌타인 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