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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아람 Apr 12. 2024

후송 류의양의 [남해문견록] 풀이

- 제 30~32 장<조봉사집과 김가 아내> -

30

삼월에 교리(校理) 유언호(兪彦鎬: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하여 남해로 유배됨)가 귀양 오니 이웃하여 든든히 지내거니와 집에 칠십팔 세 노친을 두고 천 리 밖에 와 기에 밤낮으로 마음이 쓰여 침식을 불안해하니 보기에 불쌍하기가 다른 유배객보다 더하더라.


31

섬 속에 달포를 있다 보니 자연히 들리니, 서울 사람이나 개성(송도) 사람이나 먼 데 사람들이 장사(상고)로 오거나 다른 일로 오거나 이 섬에 와서 관비나 시골 여인을 얻어 (사는 것에) 빠져(혹하여) 있어 칠팔 년이나 혹 십 년이라도 돌아가지 아니하고 혹 늙은 어버이 있어도 아니 간다고 하니 들으니 절통하고, 이런 풍속이 과연 금함 직하더라. 이런 일은 제주의 풍속과 같아 내 이전에 들은 일이 있는지라. 이전에 서울 있을 때 동네에 조봉사집이라 하는 여인이 있었는데, 길쌈을 잘하는지라. 내 집에서 아이 계집종들에게 길쌈을 가르치는데, 그 여인이 길쌈 스승으로 왕래하기에 그 인물이 극히 어질고 착하여 짐짓 여염집 가모 노릇을 잘할 듯한지라. 그 홀로 있는 곡절을 물은즉 조봉사(奉事: 조선시대 관감에 딸린 종8품 벼슬아치)란 것이 제주 군관처럼 갔다가 양식 없어 못 나오니 들어갈 때 두 살 먹은 자식이 십오 세가 되었다고 하기에 마음에 불쌍히 여겼더니, 우리 외숙이 제주 어사로 들어가 목사를 하시게 되었기에 길을 떠날 때 청하기를, 조봉사라 하는 것을 찾아 대접하고 양식을 주어 내보내소서 하였더니, 제주로 임하신 후 섬에 서울 사람이나 개성 사람이나 들어가 부모 처자식 버리고 계집에게 빠져 십 년 수십 년 나오지 않은 것을 남김 없이 모조리 중형을 내려, 쫓아 내보내니 조봉사란 것도 매 맞고 돌아와 집을 찾아 가니 십오 세 된 자기 딸이 보고 놀라 이상한 사람이 온다고 하고 숨더라고 하니, 귀양에서 풀려났음을 알게 되었더라. 외숙이 제주에서 갈려온 후 내 여쭙기를 그 조가를 대접하여 보내도록 조용히 부탁드렸더니 중형으로 다스리고 보내었으니 무슨 까닭이십니까 하니, 외숙이 웃어 말하기를 제주도의 백성들이 부모 처자식을 잊어버리고 행실이 효를 어그러뜨린 것들도 한꺼번에 모조리 고치려 하는데, 하물며 서울 사람이란 것들이 행동거지와 몸가짐이 그러한데 어찌 아니 다스리겠는가 하신 것이니, 이제 이 섬 풍속을 보니 외숙의 정치 과연 지당하신지라. 조봉사집이 십육 년 만에 자식 하나를 다시 낳으니 우리가 늘 목사의 은혜라 일컬었더라. 이 말을 이야기 삼아 일컬으니 섬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남해 섬에 그렇게 쫓아 내보내게 되면 나갈 것이 무수하리라 하더라.


32

하루에 어떤 여인이 뜰에 와서 말하기를, 서울에서 귀양 온 사람일 테니 양식을 얻고 싶다고 하거늘, 혹시 불효 불충(凶逆)의 연좌 죄인이라 여겨 사람을 시켜 급히 내보내라 하니, 주인이 이르기를,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사복(司僕) 서리(胥吏: 조선시대 지방관아의 하급 관리. 아전)의 아내로 귀양 와 불쌍한 이라 하거늘 내 자세히 물으니 여인이 대답하기를 사복 서리 김가의 정처로 아들 낳고 살다가 지아비 딴 계집을 얻어 빠져 살기에 시앗 샘(싀앗 새옴: 남편의 첩을 미워함)하다가 지아비가 죄를 몹시 얽어 귀양 와서 십 년이 되어 이리 서럽게 되어 빌어먹고 지낸다고 하거늘 내가 말하기를 여자의 치우친 성품이나 투기가 혹 이상하지는 않거니와 어찌 대단히 괴상하고 얄궂은 짓(駭擧)을 하여 그리 되었는가 하니 제 말에 이어서 지아비의 흉을 일컬으며 말소리와 낯빛이 심히 독기가 올라 화평한 몸짓이 전혀 없으니 군자 절교하여도 사나운 말을 내지 않는다고 하니 이런 도리를 아랫사람에게 책망할 바가 아니거니와 김가 서리로 말한다면, 자식 있는 정처를 고작 투기한 일로 귀양 보내어 십 년을 버려두니 그 지아비에 그 지어미라 할 수 있겠구나(有是夫有是妻). 주인 집 기둥에 부화부순(夫和婦順: 부부 사이가 화목함)이라 입춘을 써 붙였거늘 주인에게 가르치며 너희는 이처럼 하라고 하니 크게 웃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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